'하긴 태어나자마자 엄마보고 비명을 질러댄 녀석은 아마 저 녀석밖에 없을걸요?'
'윽, 그 얘기가 지금 여기서 왜 나와요?'
'1년도 안 된 녀석이 날겠다고 하질 않나, 100살도 안 된 주제에 마법을 배우겠다질 않나'
'마법을 못 배우게 하니까 해츨링인 주제에 검술을 배우겠다고 검을 휘두르고 다니다가 들키기도 하고'
할아버지와 엄마는 옛생각이 난 듯 키득키득 웃었다.
---284-289 p.
시선을 따라 고개를 위로 들어 그 누군가를 바라보는 순간 난 뒤로 발라당 넘어갔다. 그 누군가는 내가 뒤로 넘어져야만 바라볼 수 있는 높이에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를 본 순간 나는 멍해졌다. 그리고.....
'끼에에~엑!'
난 발딱 일어서서 달려나갔다...가 아니라 달려가려고 하다가 발라당 앞으로 꼬꾸라졌다. 그리고 위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나원 참, 어미를 보고 도망가는 해츨링이라니.....'
--- p.26
'너의 소원은 말야. 이 세상에는 드래곤이 없잖아. 그리고 설사 있다고 해도 내가 너를 드래곤으로 만들어서 마력까지 주지는 못해. 그러니까 다른 차원의 드래곤으로 만들어 줄게.'
'어떻게?'
그러자 그는 뿌듯하다는 표정으로 자신있게 말했다.
'난 영혼을 다루는 능력이 있어. 그러니까 네 영혼을 가지고 드래곤이 존재하는 다른 차원에 가서 드래곤의 영혼과 네 영혼을 바꿔치기 하는 거야. 물론 성인 드래곤은 안되고 알에서 부화하지 않은 새끼 드래곤이어야 가능하지만.'
'그게 가능해?'
--- p.18
내 앞에서, 아니 내 머리 높이 위에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던 것은 드.래.곤.이었다. 붉은 빛 비늘로 감싸인 얼굴에는 붉은빛으로 타오르는 커다란 두 눈동자와 그 밑에 위치한 거대한 입이 있었고, 그 입 사이사이로 꼬마 악마의 송곳니와는 비교도 안 되는 커다랗고 날카로워 보이는 송곳니가 언뜻언뜻 보였다. 머리에는 커다란 뿔이 솟은, 내가 예전에 판타지 소설에서나 읽어봤던 그 드.래.곤.이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순간 꼬마 악마의 말이 떠올랐다.
성인 드래곤이라면 불가능하지만 알에서 부화하지 않은 새끼 드래곤이라면 가능해. 난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 앉아서 내가 있던 자리를 내려다보았다. 내 주위에는 무슨 알 조각 같은 것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그러니까 나를 움직이지 못하게 했던 게 '알'이란 말야? 그리고 난 방금 '알.에.서. 깨.어.난'거고……?
--- p.26
나는 다시 그 드래곤을 올려다보았다. 노려보는 것 같진 않았다. 당연하겠지. 난 해츨링인걸. 소설이 맞다면 드래곤은 어떤 일에서든 해츨링이 제일 우선이라고 했다. 그리고 더구나 내 짐작이 맞다면 이분은 나의 '엄마'시니까. 나는 그분(?)을 계속 말똥말똥 쳐다보았다. 그런데 보고만 있으려니까 왠지 어색해서 씩~ 웃어보였다.
--- p.28
결국 발의 힘을 빼서 앉은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디라다 또 다른 방법을 찾았다. 사람의 아기도 걷기 시작할 때는 무언가를 잡고 일어서듯이 나도 무언가를 잡고 서면 일어설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내 주위에는 잡을 만한 게 없었다. 생각다 못한 나는 벽을 짚고 일어서기를 시도하기로 했다. 그러자 또 하나의 문제가 생겼다. 벽이 있는 곳까지 어떻게 가느냐 하는 것이었다.
'에휴~ 산 너머 산이로구만.'
결국 생각해 낸 게 기어가기였다. 나는 다시 몸을 엎어뜨려서 최대한 손과 다리를 열심히 움직여 앞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하지만 내 몸의 무게가 정말 무거워서 나는 몸을 들어올려 기어가는 게 아니라 몸을 땅에 대고 끌고 갔다. 그래서 벽이 내가 앉아 있던 곳과 가까웠음에도 불구하고 벽까지 가는 동안 나는 5번이나 가다 쉬다, 가다 쉬다를 반복했다.
'헥헥헥, 도대체 해츨링은 몸무게가 얼마인 거야? 내 몸이긴 하지만 인간적으로, 아니, 드래곤적인가? 하여튼 너무 무겁다. 기어오지 말고 차라리 몸을 굴릴 걸 그랬어.'
겨우겨우 벽에 손을 터치한 나는 몸을 다시 뒤집어 일으켜 앉았다. 그리고 벽에 몸을 지탱하고 다리에 힘을 주어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우이차아아~'
몸을 일으키는 게 얼마나 힘들었던지 겨우겨우 일어서기는 했지만 다리가 후들거려서 꼼짝도 못 했다. 까딱 잘못하다간 힘들여 일어섰는데 다시 주저앉을 것 같았다. 하지만 몸 하나 일으키기 위해 쏟은 나의 땀과 힘이 너무나 아까워 이를 악물고 버텼다.
'드디어 섰다. 하지만 너무 힘들다. 몸 하나 일으키는 것이 이렇게 힘들어서야 어디 걸을 수나 있겠어?'
앞으로 걸을 일이 남아 있다는 생각을 하자 온몸에 힘이 쫙 빠지면서 나는 다시 주저앉고 말았다. 하지만 너무 힘들어서 도저히 다시 일어날 엄두가 나질 않았다. 그래서 일어나길 포기하고 그 자리에 엎어졌다. 땅에서 차가운 기운이 올라와 너무나 시원했다.
그렇게 있으려니까 졸리웠다. 오늘은 정말 너무 힘든 하루였다. 곁눈질로 옆을 바라보자 마른풀이 폭신하게 깔린 내 자리가 보였지만 거기까지 갈 엄두가 나질 않았고, 지금은 움직인다는 것 자체도 귀찮았다. 그래서 그냥 그 자리에서 눈을 감고 자버렸다. 위에서 엄마가 황당하다는 듯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그렇게 내가 태어난 첫날이 지나갔다.
--- pp.36-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