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S.엘리어트는 인간은 어느 정도 이상의 진실은 감당하지 못한다고 했다. 있는 그대로의 사랑과 장식되지 않은 아름다움을 우리는 감당할 수 없는 것이다. 비너스의 탄생을 보는 우리는 가슴 깊은 곳에서 어떤 도전을 받는 것을 느낀다. 보티첼리는 우리가 그 도전에 직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 p.57
이런 숨막힐 것 같은 공간에서, 반 고흐는 자신이 '고요함과 휴식'을 느끼고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실제로 그가 표현한 것은 커다란 불안과 좌절, 억압적이고 불안한 긴장이었다. 이런 가슴아픈 대조때문에 우리는 그에게 가까이 가고 있다고 느낀다. 우리 세대는 불안하고 신경질적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불안한 화가에게서 더욱 따뜻함을 느끼는지도 모른다. 자신의 정신적인 혼란을 차분하게 진정시키기 위해 그토록 애를 썼던 화가에게 말이다. ---이에 대해 푸생은 상상력이나 영감은 부분적인 것이 아니라고 대답하고 있다. 그것은 마음도 머리도 아닌 한 인간 전체에서 생성되는 것이다. 자기 자신과 영광과 다른 사람에 대한 어떤 의도를 완전히 망각하는 것. 화가도 마찬가지겠지만, 한 명의 시인을 만드는 것은 바로 이런 완성에서이다. 이 작품을 보고 있으면 그런 완성감을 함께 나누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니콜라 푸생의 <시인의 영감>)
--- p.187
이 작품이 나를 가장 감동시킨 베르니니의 작품이다. 힘이 넘치는 격정과 심오한 의미의 작품. 베르니니가 요즘 사람이었다면, 그는 분명 영화감독이 되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정적인 것에는 관심이 없고, 사물이 움직이거나 어떤 일이 생기는 순간, 가장 강렬한 감정의 순간에 흥미를 가지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아폴로와 다프네의 신화는 무언가에 대한 열망이 강했던 그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었던 것같다(그의 자화상을 보면 마르고 신경질적인 얼굴에, 불거져 나온 눈에는 긴장이 가득하다).
그리스 신화는 시공을 추월해 중요한 것으로 여겨지는 문제들을 다루기 때문에 아직까지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이 신화는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하지 않는 사람, 즉 거절하는 사람에 관한 것이다. 태양의 신인 아폴로는 물의 님프인 다프네를 열렬히 사랑하게 된다. 하지만, 그녀는 달아나고 그는 쫓아가는데, 이 작품에서는 막 그녀를 잡을 찰나에 있는 그를 보여준다. 다프네가 자신을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는 아폴로는 한 손으로 그녀를 잡고 있다. 반면에 고통스런 다프네는 자신을 도와줄 아버지, 강의 신을 소리쳐 부른다. 자신의 기도에 대한 응답이 없다고 생각하는지 그녀의 표정은 심하게 일그러져 있다. 하지만, 그녀가 기도하기 전에 그녀의 아버지는 이미 그녀를 월계수 나무로 변신시켜주었다. 벌써 그 변신이 시작되었는데, 가는 손가락들이 잎으로 변하고, 아폴로로부터 그녀를 지키기 위해 그녀의 몸에 나무껍질이 형성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광경을 보고 있는 아폴로의 잘생긴 얼굴에는 자신의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게 되었다는 안타까움이 떠오르고 있다.
---p.72
이 그림은 커다란 미술관에서는 지나치기 쉬운 유형의 작품이다. 엘 그레코의 걸작으로 평가되고 있지도 않을 뿐더러, 큰 미술관에는 성인들을 그린 작품들이 많기 때문에, 자칫하면 작가 이름만 확인하고 지나치기 십상이다. 하지만 이 작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화가의 관심은 베드로나 바울의 '성자다움'이 아닌 다른데 있음을 알 수 있다. 그의 관심은 좀더 복잡하고 급박한 것이다.
--- p.144
우리가 몸을 '가졌다'고 말하는 것은 육체를 도구로 파악하는 태도 때문이다 우리의 정신이 우리의 일부인 것처럼,우리의 '몸'도 우리 자신의 일부이다 나는 사람들이 대상을 볼 수 있게 하는 인간 돋보기 같은 도구가 되었으면 한다.
--- p.13
벨라스케스는 아주 수수께끼 같은 사람인데, 그에 대한 별다른 행적을 알 수 없기 때문에 그가 어떠한 사람이었는지 알아내기란 쉽지 않다. 그는 본질적으로 비밀에 싸인 사람으로, 다른 사람에게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으면서 자신은 항상 훌륭한 테크닉 뒤로 숨어버린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점이 우리로부터 그를 멀어지게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이 벨라스케스의 작품을 보는 이들을 끊임없이 매혹시키는 이유 중의 하나이다.
<시녀들>은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작품들 가운데 하나로 여겨졌으며, 사람들은 이 그림 앞에 서면 위압감을 느낀다. 나는 그 이유를 이해할 수 있지만, 이 작품의 위대함을 말로 표현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인 것 같다. 분명 이 작품이 주는 느낌, 어딘가 다른 곳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 하나의 이유인지도 모른다. 햇빛이 드는 아침, 화가의 작업실. 화가는 왕과 왕비를 그리고 있고, 시녀들은 어린 공주와 그녀의 시종들, 난쟁이와 개를 데려오고 있다. 늘 그렇듯이 벨라스케스는 이 대상들 모두를 편견 없이 바라보고 있는데, 땅딸한 난쟁이 여인과 잘생긴 개에게도 가운데 있는 빛나는 공주와 동일한 비중을 두고 있다.
--- p.24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중에서
'나는 이 작품에서 자식을 잃어버린 어머니의 고통보다 더 보편적인 무엇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여성의 팔에 안겨 죽은 예수와, 자신이 안고 있는 젊은 남자의 힘과 자비를 조용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여성은 인간 정신의 양면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절대적으로 남성이거나 절대적으로 여성인 사람은 없다. 우리는 우리 안에 이 양면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좌뇌와 우뇌, 이성으로 판단하는 부분과 직감적이고 본능적으로 받아들이는 부분. 사람들은 이 두 가지 특징을 전형적인 남성성과 여성성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지만, 진정한 인간은 이 두 부분이 뒤섞여 있는 하나의 전체이다. 온전한 인간의 양면이 함께 있는 모습을 이런 식으로 볼 수 있었던 것은 대단히 만족스러운 경험이었다. 여성성을 의미하는 마리아와 남성성을 의미하는 예수가 하나가 되어 있는 모습 말이다.
--- p.77
루브르 박물관은 구경하기에 편한 곳은 아닌데, 다행스럽게도 나는 미술관이 쉬는 날 혼자서 구경할 수 있는 특혜를 받았다. <모나리자>와 단둘이 있을 때는 왠지 오싹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일행 없이 그녀를 '보는' 것은 가능했지만, 어쨌든 진정으로 '보는' 것은 불가능했는데, 그건 아마도 그녀가 이미 우리에게 너무 친숙한 상징물이 되어버렸기 때문인 것 같다. 생각했던 대로 이 작품은 작고 어두웠으며, 현대인의 의식 속에서 자신만의 고귀한 삶을 영위하고 있었다. 수수께끼 같은 아름다움을 이보다 더 훌륭하게 표현한 작품은 아마 없을 것이다. 나는 이 작품에 대한 신화를 깨고 들어가, 레오나르도 옆에 앉아서 초상화의 모델이 되고 있는 한 이탈리아 여인을 보려고 애썼다. 하지만, 끝내 그녀는 나를 피해갔고, 나는 자괴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 p.175
로토는 초조해하고, 신경질적인, 비밀에 싸인 인물이었다. 그렇기 때문인지 그는 다른 사람들의 비밀을 다루는데 능숙했고 사람들의 비밀에 관심이 많았다. 표정이 아니라 그 표정뒤에 숨어 있는 바로 그 비밀 말이다. 부유한 집안의 청년이 책을 보고 있는 이 그림에서...
--- p.90
더불어 '미술 전도사'일을 하는 동업자의 입장에서 웬디 수녀에게 크게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그녀의 꼼꼼하고 세심한 그림읽기였다. 그림 속의 모티프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고 드러내줄 뿐만 아니라 보석을 닦듯이 그것들의 진가를 선명히 부각시키는 그녀의 재주는 타고난 것이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야 보배'라고, 인생과 종료, 예술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다시 그것들을 유기적으로 엮어나가는 그녀의 솜씨 또한 매우 존경스러운 것이었다. 그것은 잘 훈련된 사유력을 가진 사람만이 할 수 있는 특별한 재주라는 생각이 들었다.
--- p.17
나는 모든 사람들이 예술 여행을 떠나 세계 문화의 결실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고대한다. 예술을 감상하는 능력.예술가가 제공하는 실재에 대한 비전을 함께 열어보일 수 있는 능력은 우리들 모두 지니고 있다. 마네의 [발코니]는 너무 쉽게 내팽개쳐진 그런 가치들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든다. 고흐의 [예술가의 침실] 실제로 그가 표현한것은 터다란 불안과 좌절,억압적이고 불안한 긴장이였다. 이런 가슴아픈 대조때문에 우리는 그에게 가까이 가고있다고 느낀다. 우리 세대는 불안하고 신경질적인 세대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불안한 화가에게서 더욱 따뜻함을 느끼는지도 모른다. 자신의 정신적인 혼란을 차분하게 진정시키기 위해 그토록 애를 썼던 화가에게 말이다.
--- p.181-222 서문에서.
1.어린 그리스도와 아기요한 중 에서 : 아주 사랑스럽고 서정적인 그림이다. 하지만,진실을 말해주는 그림이라고는 할 수 없다. 비록 사랑스러운 점이 많긴 하지만,비현실성이 아름다움을 깍아 내리는 그림이라고 할 수 있다.---우리가 그림을 감상하면서 단순히 보는 것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어떻게 감상해야하는지를 자연스럽게 이야기 해 주신다.
2.피에타 중에서:미켈란젤로는 자신의 신성한 아들이 죽은것을 슬러한 성모의 모습을 의도했을 것이다. 하지만,그는 그런 일상적인 해석을 초월해버렸다.마리아는 눈이 아니라 그섬세한 손으로 우리에게 호소한다.그녀의 텅빈 손은.자신의 다른 모습이기도한.사랑하는 이가 없는 삶이 얼마나 공허한 것인가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그침묵의 호소는 충만한 인간이 되라는 엄숙한 권고이다.
---pp.32,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