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나 지금이나 우리는 여전히 죽음을 제대로 실감하지 못한다. 34분마다 한 명씩 삶을 포기하지만, 우리는 이 사실을 내 자신과 관계없는 남의 일로만 생각한다. 죽음의 세력이 우리의 세계를 파멸과 죽음으로 이끌어가는 현실을 보지만, 나 개인은 아무것도 할 수 없지 않느냐고 체념하면서 각자의 생활에 골몰하는 것이다. 그리고 당장 살아야 할 현실이 중요하지, 죽음은 그 후의 문제가 아니냐고 미루어버리고 만다. 그래서 우리는 죽음에 관한 진지한 이야기를 좀처럼 들어보기 어렵다. 사회 전체가 죽음의 문제를 외면하고 있다. 교회에서도 죽음의 문제에 관한 이야기를 듣기 어렵고, 대학에서도 죽음에 관한 강의를 발견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우리가 외면한다 하여 이 문제가 자동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 사태가 더 악화될 뿐이다. 급속도로 상승한 한국인의 자살률이 이를 단적으로 증명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문제를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 만연한 죽음의 현실을 정직하게 대면하고 그 해결의 길을 모색하는 것이다. 물론 이 책 한 권으로 시원한 해결책을 모두 찾을 수는 없겠지만, 이에 대한 관심이 조금이라도 커지기를 기대해본다.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si vis pacem, para belum)는 말이 있듯이, “삶을 원하거든 죽음을 준비하라”(si vis vitam, para mortem)는 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머리말」중에서
현대인들은 많은 사람이 자기 주변에 있음에도 고독을 느낀다. 그들은 기껏해야 특정한 수의 친구들과 교통을 가질 뿐이다. 가정은 점점 더 핵가족화되고 있으며, 성 개방 추세와 함께 독신자들의 수가 점증하고 있다. 전통적 부계 중심의 사회가 허물어지고, 아기를 낳아 홀로 기르는 독신녀들의 모계 중심적 가정과 모계 중심적 사회가 등장하고 있다. 사회의 이러한 발전 과정 속에서 한 사람의 죽음은 점점 더 개인적인 일, 사적인 일로 위축되고, 사회 공동체의 영역에서 개인의 사적 영역으로 배제된다. 고독을 이기지 못한 할머니, 할아버지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도, 그것을 자신과 무관한 일로 간주하고 조금도 관여하지 않는 사회, 철저히 개인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사회, 이웃의 죽음이 배제된 사회, 많은 사람이 죽고 있지만 “죽음이 없는 사회”가 오늘의 현대사회라 할 수 있다.
---「Ⅱ. 현대사회의 “죽음의 배제”」중에서
오늘날은 죽었다고 확정된 사람, 혹은 인위적으로 죽음의 상태에 도달하였다가 다시 깨어나는 일, 곧 “재활”(reanimation)이 옛날보다 훨씬 더 빈번해졌다. 그리하여 죽음에 대한 연구(thanatology)도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 특히 인간의 심장을 다시 움직이게 함으로써 죽음의 상태에 빠진 환자를 다시 살리는 방법이 크게 발전되었다. 여기서 발견된 사실은, 죽음은 한순간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과정과 함께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신체 모든 기관의 기능들이 일시에 한꺼번에 정지되는 것이 아니라 신체 부위에 따라 하나씩 하나씩 시간적 차이를 두고 정지되기 때문이다.
---「Ⅴ. 죽은 다음에는 어떻게 되는가?」중에서
하나님이 우리 인간에게 바라시는 영원한 생명은 단지 저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먼저 이 세상 안에 있다. 예수께서 주시고자 하는 영원한 생명은 단지 피안적인 것이 아니라 먼저 차안적인 것이다. 영원한 생명은 먼저 이 세상 속에서 죄와 죽음의 세력을 몰아내고, 영원한 생명의 현실로 세워져야 한다. 비정함 대신에 인정이 있고, 거짓과 불의 대신에 진실과 정의가 있고, 인간에 대한 억압과 착취 대신에 모든 인간의 평등과 나눔이 있으며, 불신앙 대신에 신앙이 있는 세계, 곧 영원한 생명의 세계가 먼저 이 땅 위에 이루어져야 한다. 교회는 영원한 생명을 경험할 수 있는 구체적 장소가 되어야 하며, 영원한 생명의 현실을 이 땅 위에 세우는 전위대가 되어야 한다. 이 세상이 죄와 죽음의 세계라면, 교회는 생명의 세계 곧 하나님 나라의 현실을 경험하는 곳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먼저 교회 안에 하나님의 의와 사랑과 진실이 경험되어야 하며, 이를 통해 교회는 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동시에 이 사회에 의와 사랑과 진실을 요구해야 할 것이다. 교회가 이러한 그의 사명을 깨닫고 이 사명에 충실할 때, 세상 사람들은 교회를 신뢰할 것이다.
---「Ⅵ. 영원한 생명을 기다리며」중에서
인간은 언젠가 모두 죽는다. 그러나 자신의 행위를 통하여 형성된 인간의 삶의 역사, 곧 그의 존재, 그의 자아는 죽음과 함께 없어지거나 폐기되지 않는다. 그것은 하나님의 기억 안에서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다. 죽음은 이미 일어난 삶의 역사를 없는 것처럼 만들거나 무로 되돌리지 않는다. 인간이 행한 모든 선한 행위와 악한 행위 거짓과 진실, 그의 모든 기쁨과 슬픔이 하나님의 영원 속에 영원히 보존될 것이다. 이러한 삶의 역사를 통하여 형성된 인간 존재를 가리켜 우리는 신약성서가 말하는 “몸”(soma), 곧 인간의 “존재 전체”라 말할 수 있다. 이 “몸”이 역사의 마지막에 부활하여 하나님의 재판을 받을 것이다. 인간의 한 부분으로서의 영혼이나, 썩어 없어진 손톱, 발톱, 머리카락, 내장, 세포가 역사의 종말에 부활하는 것이 아니다. 또 인간의 영혼만이 부활하는 것도 아니다. 사회적 관계와 교통을 통해 형성된 삶의 역사를 가진 인간의 자아, 그의 인격이 그가 행한 모든 선과 악, 진실과 거짓, 아름다움과 추함과 함께 부활할 것이다. 부활 이전의 인간과 부활 이후의 인간이 가지는 연속성, 그리고 정체성은 육체 없는 영혼이라는 한 부분에 있는 것도 아니고, 썩어 없어졌다가 다시 생기는 인간의 손톱이나 발톱, 그의 머리카락이나 세포에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자기 삶의 역사를 가진 그의 총체적 존재, 그의 자아에 있다. 따라서 부활이란 각 사람의 삶의 역사, 이웃과의 만남과 교통 속에서 형성된 그의 존재, 곧 그의 몸이 철저히 새로운 존재, 즉, “영적인 몸”, “영광의 몸”으로 변화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을 가리켜 우리는 부활에 대한 인격적·사회적 이해라고 할 수 있다.
---「Ⅵ. 영원한 생명을 기다리며」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