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처음부터 능숙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잘하고 못하고는 그에게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누구보다 하루를 일찍 시작하면서 하고 싶은 일을 할 뿐이었습니다. 일찍 시작된 하루가 그에게 준 자그마한 자유였으므로, 그저 즐기면 그만이었습니다. 스기모토 씨에게 중요한 것은 ‘매일 첫차로 출근한다’는 단 하나의 약속뿐이었습니다.(중략)
커다란 목표를 달성하기란 참 어렵습니다. 작은 목표와 일상을 관리하는 것마저, 무엇 하나 쉬운 게 없습니다. 그래서 인생을 바꾸기란 너무 힘듭니다. 그러나 인생을 바꾸기보다는 하루를 바꾸기가 쉽고, 하루를 바꾸기보다는 한두 시간을 바꾸기가 쉽습니다. 그렇게 가능한 만큼 바꾸는 노력을 꾸준히 이어갈 때 변화는 시작됩니다.
“모두가 세상을 변화시키려 들지만, 정작 스스로 변하고자 하는 사람은 드물다.”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가 한 말입니다.
작지만 소중한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큰 변화의 시작입니다. 그리고 그런 한 사람의 변화가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됩니다.
남과 다른 습관 하나가 남과 다른 나를 만듭니다. (26p~29p, 〈첫차를 타는 당신에게〉에서)
디지털 장의사는 고인이 가입했던 온라인 사이트에 들어가 탈퇴 처리를 하고, 고인의 생전 인터넷 계정, 접속 사이트 기록, 댓글 등을 모두 삭제합니다. 의도치 않게 다른 곳으로 퍼진 사진이나 동영상도 처리합니다. 죽은 사람의 흔적이 더 이상 인터넷상에 남아 있지 않도록 하는 작업입니다. 그래서 이 일은 ‘디지털 장례식’, 또는‘사이버 장례식’이라 불립니다. 소위 말하는 인터넷상의 ‘잊힐 권리’입니다. (중략)
두 번의 장례식을 치르는 사람이 늘고 있는 세상에서 우리는 한 가지 명심해야 합니다. 사람은 자신이 한 말을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키보드를 두드리는 일은 비석에 글자를 새기는 것과 같다는 점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67p~70p, 〈또 하나의 장례식〉에서)
사람들은 ‘1등’에 환호합니다. ‘최초’에 의미를 부여하고, ‘최고’가 되기를 원합니다. 산을 오르는 데 있어서까지 경쟁과 기록에 집착하는 것도 그런 까닭입니다. 때문에 최초의 에베레스트 정복자가 될 수 있는 기회를 마다하고 힐러리를 기다린 텐징을, 어떤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정말로 힐러리가 먼저 정상에 섰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노르가이는 그런 논란에 대해 별다른 말이 없었습니다. 히말라야의 품속에서 살았던 그에게 산이란 정복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최초도 최고도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셰르파 족에게는 ‘정상’을 뜻하는 말이 없다고 밝힌 그는 사랑하는 어머니의 무릎에 오르는 아이의 마음으로 산을 찾는다고 이야기해, 힐러리를 비롯한 많은 산악인들의 마음을 울렸습니다.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다고 세상을 다 보지는 못한다. 그저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를 알 뿐이다.”
역사상 가장 유명한 이 셰르파가 죽기 전 아들에게 남긴 유언입니다. 그의 말처럼 정상은 자신이 가장 높은 곳에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위치가 아니라, 자신이 볼 수 없는 세상이 더 많다는 사실을 깨닫는 자리입니다. 정상에 오른다고 세상이 다 보이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더 멀리 보일 뿐입니다. (131p~132p, 〈에베레스트의 황금사자〉에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은 그와 같은 명문대에 진학하고자 하고, 그가 그랬듯 빠른 출세를 동경합니다. 자신이 그렇게 하지 못한 경우에는 자식을 통해서라도 그 소원을 이루려 애씁니다. 학부모들이 자녀의 입시 교육에 열을 올리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무엇을 위해 그렇게 하는지 스스로에게 묻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그저 성공을 거머쥐는 것까지가 대부분의 목표입니다. 일단 사회적인 성공을 얻으면 그 이후의 생활은 당연히 행복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폭탄 테러범이 된 유나바머처럼 얼마든지 길을 잃을 수 도 있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래서 항상 가장 마지막에 도달해야 할 장소를 염두에 두고 걸어가야 하는 법입니다.
여러분의 최종 목적지는 어디입니까
신념은 지키는 것보다 그것이 올바른지 살펴보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163p~164p, 〈천재 수학자의 인생〉에서)
무작정 뛰라고 강요하는 사회 안에서 우리는 ‘포기’라는 말에 너무 겁먹고 있는 것인지 모릅니다. 지금 포기하면 모든 게 끝날 것만 같은 마음 때문에 지도도 살피지 않은 채 무작정 길을 걷고 있는 것입니다. 고흐가 목사의 꿈을 놓지 않고, 간디가 변호사라는 직업을 그만두지 않았다면 인류 역사에 위대한 작품들과 위대한 정신을 남기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포기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마세요. 지금 바라보고 있는 꿈이 내가 잘해낼 수 있는 일, 정말 원하는 일인지 냉정하게 판단하고 그렇지 않다면 과감하게 떨쳐낼 필요가 있습니다.
두려워할 것 없습니다. ‘포기’가 곧 ‘끝’은 아니니까요. 포기는 또 다른 시작일 뿐입니다.
때로는 과감하고 빠른 포기가 필요합니다. 그만큼 새로운 시도로 넘어가는 단계도 빨라집니다. (210p~211p, 〈포기는 끝이 아니다〉에서)
살다 보면 복잡하게 얽힌 문제를 참 많이 맞닥뜨리게 됩니다. 어쩌면 엉킨 매듭을 풀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삶인지도 모릅니다. 가끔은 잘라내버리는 게 더 나은 매듭이 있기도 하겠지요. 그러나 매번 그럴 수도 없는 일입니다. 그렇게 하면 문제가 해결되는 것 같지만, 사실 그 매듭은 풀린 것이 아니라 조각난 것뿐이니까요. 단단한 매듭을 푸느라 힘겨워하는 당신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그것이 맞는 방법이고, 옳은 길이라고요.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어쩌면 아주 오래 걸리는 일일지라도 쉽게 포기하지 마세요. 분명 매듭은 조금씩 느슨해질 것입니다. (216p~217p, 〈엉킨 매듭을 푸는 법〉에서)
엑시구아와 그 숙주의 이야기는 오늘날 우리의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텔레비전과 신문, 인터넷 등 각종 매체는 막대한 양의 정보를 쉬지 않고 쏟아냅니다.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사람들의 머릿속에 주입하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집단들도 부지기수입니다.
우리는 점점 스스로 생각하는 법을 잊어버립니다.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내 의견인 것처럼, 주변에서 심어준 생각을 마치 내가 생각해낸 것처럼 말합니다. 심지어 그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정말로 그것이 자신의 생각이라 믿고 있는 것입니다. 모두의 생각은 비슷해지고, 그 생각들은 세상의 기준이 되어버립니다. 사회생활 몇 년차면 적어도 이런 자가용을 타는 게 정상이고, 혼수를 이만큼 하면 예물도 그만큼 받아야 하고, 큰 회사가 아니면 가지 않는 게 낫고, 베푸는 건 가진 사람들이나 하는 일이고, 남들이 하는 일은 이왕이면 다 해봐야 하고……. (중략)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머릿속 엑시구아의 존재를 알지 못합니다. ‘내 생각이 아닌 생각’을 가지고 오늘도 무심히 하루를 보낼 뿐입니다. 한번쯤 생각해볼 일입니다. 내가 믿는 것, 내가 원하는 것들이 정말로 내가 믿는 것이며 내가 원하는 것들인지, 나는 과연 진짜‘나’로 살고 있는지 말입니다. (249p~250p, 〈내 머릿속의 기생생물〉에서)
1963년, 볼보는 다른 회사에서도 3점식 안전벨트를 사용할 수 있도록 허가합니다. 3점식 안전벨트가 상용화되면서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률은 이전보다 훨씬 줄었고, 지금까지도 수많은 사람들이 안전벨트로 인해 생명을 지키고 있습니다. 이제 안전벨트 착용은 자동차 이용자의 의무이자 습관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자신들이 개발한 기술의 이용을 조건 없이 허가한 볼보의 결단이 아니었다면 그 과정은 조금 더 느리게 진행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기업가에게 있어 이윤을 남기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러나 볼보는 많은 연구 비용과 인력, 시간을 투자해 얻은 기술을 경쟁사들과 공유했습니다. 독점 생산으로 얻을 수 있는 수익보다 사람의 안전이 더욱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조치가 자동차 업계 전체의 발전을 가져올 것이라는 믿음도 있었습니다. 실제로 안전 기술이 발달하면서 자동차 산업 또한 호황을 맞았고, 볼보를 비롯한 많은 자동차 회사가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필요한 물건을 만드는 회사는 인기를 얻지만 공익을 위하는 회사는 존경을 받습니다. (319p, 〈볼보의 아름다운 선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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