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기도의 훈련에 대해서 말하는 성도들과 영적 인도자들은, 기도는 또한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점을 우리에게 되새겨 줍니다. 우리 혼자 힘으로는 진실한 기도를 할 수 없으며 우리 안에서 기도하시는 분은 바로 하나님의 영이라고 그들은 말합니다. 바울은 이 점을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표현했습니다.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 12:3). 우리는 하나님을 어떤 관계 안으로 밀어넣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스스로 먼저 우리에게 오시는 것이지 어떤 훈련이나 노력이나 고행이 하나님을 오시게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신비가들이 하나같이 입을 모아 강조하는 것처럼 기도는 '은총' 즉 하나님이 값없이 주시는 선물이며 우리는 거기에 감사할 수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주저하지 않고 이 고귀한 선물이 실로 우리가 손을 뻗어 잡을 수 있는 범위 안에 있다는 점을 덧붙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가장 친밀한 방식으로 우리 삶으로 들어오셨고 이로써 우리는 성령을 통해 그분의 삶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도의 역설이란, 기도는 오로지 선물로 받을 수 있는 것이면서도 진지한 수고를 요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계획하거나 조직하거나 조작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신중한 훈련이 없이는 하나님을 모셔들일 수도 없습니다. 이러한 기도의 역설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 유한한 존재의 한계 너머를 바라보게 합니다.
꿈을 우상으로 만드는 것
낮 동안 자신이 작은 어린아이처럼 느껴질 때, 좌절한 우리의 마음은 꿈속에서 자신을 거대한 영웅으로 만들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꿈에서 우리는, 현실에서는 우리를 대단치 않게 여기는 사람들이 모두 우러러보는 대단한 영웅이 되거나, 살아 있을 때는 우리를 비난했던 사람들로부터 나중에 그 진가를 인정받게 되는 비극적인 영웅이 됩니다. 꿈 속에서는, 애굽에 온 형들을 아량 있게 용서하는 첫 번째 요셉이 될 수도 있고, 핍박받는 아들 예수를 데리고 애굽으로 조심스레 피하는 두 번째 요셉이 될 수도 있습니다. 꿈 속에서라면 우리는 자신의 순교를 기리는 동상을 세울 수도 있고 자신의 상처받은 자아를 위해 향을 피울 수도 있습니다. 채워지지 않은 욕망을 채우는 수단이 되기도 하는 이런 영상들을 통해 우리는 자신이 얼마나 재빨리 우상들을 갈아치우는지를 깨닫습니다. 하루 24시간 내내 환상을 벗어 버리고 지내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입니다.
꿈의 내용을 직접 바꾸려 하거나 밤 동안 나타나는 예기치 않은 영상들에 대해서 걱정하는 것은 현명한 일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꿈 속의 우상은 우리를 겸손하게 만들어 주는 표지들로서 우리가 하나님을 만날 준비를 갖추기까지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점을 가르쳐 줍니다. 이 하나님은 우리의 손이나 지성으로 만든 하나님이 아니라 스스로 계신 분이며 자신의 사랑의 손으로 우리를 만드신 분입니다.
기도
기도의 훈련에 대해서 말하는 성도들과 영적 인도자들은, 기도는 또한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점을 우리에게 되새겨 줍니다. 우리 혼자 힘으로는 진실한 기도를 할 수 없으며 우리 안에서 기도하시는 분은 바로 하나님의 영이라고 그들은 말합니다. 바울은 이 점을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표현했습니다.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 12:3). 우리는 하나님을 어떤 관계 안으로 밀어넣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스스로 먼저 우리에게 오시는 것이지 어떤 훈련이나 노력이나 고행이 하나님을 오시게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신비가들이 하나같이 입을 모아 강조하는 것처럼 기도는 '은총' 즉 하나님이 값없이 주시는 선물이며 우리는 거기에 감사할 수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주저하지 않고 이 고귀한 선물이 실로 우리가 손을 뻗어 잡을 수 있는 범위 안에 있다는 점을 덧붙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가장 친밀한 방식으로 우리 삶으로 들어오셨고 이로써 우리는 성령을 통해 그분의 삶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도의 역설이란, 기도는 오로지 선물로 받을 수 있는 것이면서도 진지한 수고를 요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계획하거나 조직하거나 조작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신중한 훈련이 없이는 하나님을 모셔들일 수도 없습니다. 이러한 기도의 역설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 유한한 존재의 한계 너머를 바라보게 합니다.
꿈을 우상으로 만드는 것
낮 동안 자신이 작은 어린아이처럼 느껴질 때, 좌절한 우리의 마음은 꿈속에서 자신을 거대한 영웅으로 만들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꿈에서 우리는, 현실에서는 우리를 대단치 않게 여기는 사람들이 모두 우러러보는 대단한 영웅이 되거나, 살아 있을 때는 우리를 비난했던 사람들로부터 나중에 그 진가를 인정받게 되는 비극적인 영웅이 됩니다. 꿈 속에서는, 애굽에 온 형들을 아량 있게 용서하는 첫 번째 요셉이 될 수도 있고, 핍박받는 아들 예수를 데리고 애굽으로 조심스레 피하는 두 번째 요셉이 될 수도 있습니다. 꿈 속에서라면 우리는 자신의 순교를 기리는 동상을 세울 수도 있고 자신의 상처받은 자아를 위해 향을 피울 수도 있습니다. 채워지지 않은 욕망을 채우는 수단이 되기도 하는 이런 영상들을 통해 우리는 자신이 얼마나 재빨리 우상들을 갈아치우는지를 깨닫습니다. 하루 24시간 내내 환상을 벗어 버리고 지내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입니다.
꿈의 내용을 직접 바꾸려 하거나 밤 동안 나타나는 예기치 않은 영상들에 대해서 걱정하는 것은 현명한 일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꿈 속의 우상은 우리를 겸손하게 만들어 주는 표지들로서 우리가 하나님을 만날 준비를 갖추기까지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점을 가르쳐 줍니다. 이 하나님은 우리의 손이나 지성으로 만든 하나님이 아니라 스스로 계신 분이며 자신의 사랑의 손으로 우리를 만드신 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