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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스 밴드를 기다리며

브라스 밴드를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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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01년 02월 28일
쪽수, 무게, 크기 328쪽 | 494g | 153*224*30mm
ISBN13 9788982813603
ISBN10 8982813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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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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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기 며칠 전, 삼십 년 만이라는 폭설이 내렸다. 눈을 좋아할 나이는 지났지만, 온종일 틈만 나면 창을 내다보았다. 저녁때는 차바퀴에 체인을 감고, 자유로엘 잠깐 나갔었는데 어떤 차 한 대가 거꾸로 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 차가 무슨 까닭으로 남들 다 앞으로 가는 길을 거꾸로 달려오고 있었는지 그 사연이야 알 길이 없다. 비상등을 켜고 거꾸로 달려오고 있는 그 차를 비켜가면서, 나는 잠깐 '어,어' 했다. 그 이상으로 표현할 방법을 알지 못할 사태였다. 그런데, 지금 이 글을 쓰면서 불현듯 그 차 생각이 난다. 나는 지금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일까?
--- p.326 작가후기 중에서
'너 심심하지. 사는 게 심심해 죽겠지. 너?'
나는 다시 남편을 흔들어 깨울 수가 없었다. 남편의 그런 식의 말은, 그날 하루 온종일 나를 달궈놓았던 흥분과 전율을 삽시간에 가라앉혀버리기에 충분했다. 사실이었다. 나는 심심했고, 내 삶은 너무나 무료했다. 그러나 그것과 방화범과는 같은 문제가 아니라고, 나는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그러나 말할 수가 없었다. 남편이 내게 심심한 까닭을 물어보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 p.263
나를 원하는 건 당신이지 내가 아니에요.
두번째 담배의 꽁초를 비벼끄는 그를 누운 자리에서 바라보다 말고 나는 소리쳐주고 싶었다. 적어도 그때까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관계에대한 소망은 그에게 있지 내게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이다.
- 너, 그런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아니? 너 콜라 다 마시고 그 콜라병에다 바람 불어넣어본 적 있어? 피리 소리 같은 게 나지? 그 소리가 뭐라고 하는 건지 아니? 외로워, 외로워... 심심해, 심심해 죽겠다구.. 그런단다.
윤숙의 표현에 의하면 그나 김이나 하나도 다를 바가 없는 빈 콜라병들이었다. 가정적으로 무슨 문제가 있거나, 혹은 아무 문제도 없는데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게 너무 심각해져버려서 갑자기 생이 공허해진 남자들. 탄산음료가 다 빠진 뒤의 콜라병 같은 사람들, 색소도 빠지고 단물도 빠지고 기포도 다 사라진 뒤의, 구멍만 남은 텅 빈 유리병 같은 존재들...
그들이 그 텅 빈 병에다 무엇을 채워넣고 싶어하는지, 그건 우리가 상관해야 할 바는 아니었다. 우리가 그들을 사랑하지 않는 한, 어쨌든 비굴한 건 그들 쪽이니까. 텅 빈 병이 채워지기를 원하는 건 어쨌든 그들 쪽이니까. 언젠가는 또다시 말끔히 비워질 병이기는 하겠지만, 그만큼 뒤끝이 깨끗한 관계가 또한 그런 거니까.
윤숙의 말은 분명히 옳았다. 그녀의 말이 틀리다고 생각해본 적이 별로 없었다. 그런데도 무엇이 뒤엉켜버린 것일까. 어쩌면 내게 가장 미숙했던 것은 이별의 방식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p. 81
나는 내다보지 않았지만 그 순간에도 거리는 쨍한 햇살로 밝을 것이고, 비는 내리지 않을 것이고, 어느 거리에선가는 네번째 택시와 다섯번째 택시 사이에서 브라스밴드가 힘찬 연주를 울리고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나... 네번째 택시와 다섯번째 택시 사이의 군중들 틈에 끼어 힘차게 박수를 치고 있는 나... 그 순간, 태어나서 처음으로 나는 나를 응시하고, 다른 사람이 아닌 나를 찍고 있는 것 같았다.
--- p.60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여전히 내가 돌아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나를 용서하지 않는 사람들의 비난과 분노가 훨씬 더 명확해지리라는 걸 잘 알면서도 나는 여전히 이 땅에 숨어 있었다. 나는 알고 있는 것이다. 그곳으로 돌아가는 순간, 내개 더 이상의 피신의 땅은 존재하지 않으리라는 걸 말이다. 그곳으로 돌아가는 순간부터 나는 다시는 잠시 잠깐도 잠을 잘 수 없게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 202001/03/17 (smkim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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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소설집의 인물들은 하나같이 나아가고 바라보고 말을 거는 대신에 움츠러들고 훔쳐보고 중얼거린다. 김인숙은 바로 이 중얼거림에 대해 천착해간다. 그리고 김인숙은 이 중얼거림이 세계 내적 위치의 확립이 불가능한 현대인의 실존적 조건이며 동시에 인간의 자존을 지키려는 마지막 안간힘이라는 것을 매우 심오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해낸다.
--- 류보선 (문학평론가, 군산대 교수)
삶이란 무엇인가. 죽음과 정반대가 아니겠는가. 삶이란 꿈이니까. 죽음을 물리칠 수 있는 것은 '삶'밖에 없다는「브라스밴드를 기다리며」의 이 사상은 애처로울 만큼 그럴 법하다.
--- 김윤식 (문학평론가, 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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