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오 : 이세건, 오늘에야 비로소 알게 된 이름이다. 아침 일곱 시에 들어와 꼬박 다섯 시간을 디아블로에 매달렸는데도 그의 교복 깃 앞섶에는 공들여 다려진 흔적이 남아 있다. 학생용 넥타이도 흐트러짐이 없다. 그러나 표정만큼은 차림새 같지 못하다. 꺼칠해진 얼굴에는 우울이 더께처럼 덮여 있다. 아침에 들어설 때부터 이름표를 내어 달고 있었다는 걸 지금에야 의식한 게 아니라면 스스로 의도한 행동일 텐데, 만 원짜리를 내밀던 세건은 재킷 호주머니 밖으로 걸려 있던 이름표를 거칠게 떼어내 바지 주머니에 집어넣는다. 시선은 외면한 채이다. 거스름돈을 건네자 그의 시선이 내 손을 잠깐 건너다보는가 싶더니 싸늘하고 느린 동작으로 돌아선다. 다시 오죠. 돌아서다 말고 뇌까린 칼칼한 목소리는 분명히 그렇게 말한 것 같은데 그의 왼쪽 어깨에 몰아 멘 가방이 찬바람을 일으키며 사라진다. 카운터 모서리를 붙들고 있는 내 손가락들에 쥐가 나는 듯한 균열이 생겼다가 온몸 구석구석 여진처럼 퍼져나간다. 늘 단정한 차림새와 깊은 눈매에 갇혀 갈등하던 그의 이반이 마침내 폭발했다는 걸 오늘 아침 그 친구가 들어서던 순간, 가슴에 내걸고 있던 이름표 때문에 느꼈다.
오후 한 시 십 분 : 아저씨, 나 왔어요. 다람쥐처럼 기척 없이 뛰어들어온 녀석이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소리를 질렀다. 지난 주 금요일 저녁나절에 왔다가 갔던가. 다른 때보다 훨씬 이른 시각인데 녀석은 제가 잘 앉는 자리가 빈 것을 보고 달려가 아저씨 내 방석, 소리를 지르며 뛰어 올라앉는다. 녀석 의자에 포개줄 방석을 챙기며 녀석 어머니가 들어서기를 기다린다. 아직 모습이 보이진 않지만 열려 있는 출입문 바깥쪽으로 기침 소리가 울린다. 여자는 늘 녀석보다 일 분쯤 뒤에 들어서기 마련이었다. 안녕하세요. 오층을 걸어 올라와 숨이 가쁜 듯 여자는 생각을 삼킨 듯한 기침을 한차례 더 쏟더니 방석 두 장을 들고 선 나를 향해 엷게 웃는다. 미백색의 긴 내리닫이 치마에 연초록색의 짧은 카디건을 걸친, 제법 맵시를 낸 차림새인데 표정은 그다지 밝지 않다. 내가 녀석의 의자를 만들어주고 요구르트를 가져다주는 동안에도 여자는 카운터 앞에 서 있다가 내가 다가서자 시선을 피한 채 뇌까리듯 말했다.
--- pp. 409-410
인생이란 뜻하지 않는 곳에서 짓궂게 브레이크를 건다. 내 인생도 마찬가지다. 어느 날 그는 브레이크를 걸며 내 인생에 뛰어들었고, 계산기를 두드려봐도 뻔히 손해가 날 장사가 될 거라는 걸 알면서도 거래를 한다. 어쩌면 내가 받아 드는 건 결혼이라는 '약속어음' 한 장 뿐일 수도 있다. 그가 내게, 내가 그에게 살아가면서 지불할 행복이 어느 정도일지는 예측할 수는 없지만 함께 걸어가 볼 작정이다.
--- p.405-406
이제 저는 움직일 수 없는 사랑을 우리의 꿈이라고 여깁니다. 사랑을 지키는 힘은 사랑이라기보다 어떠면 용서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남편을 다시 받아들이는데는 2년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 2년 세월이 저는 저의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간이라고 여겼습니다. 저한테 일어날 수 없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여겼던 탓에 더욱 견디기 어려웠던 건 같았어요. 그 2년 동안 저는 얼마나 많이 남편이 죽어버리길 원했는지 모릅니다. 남편이 죽어버린다면 남편을 더는 미워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요.
사랑의 감정이 영원하지 않듯 미움의 감정 또한 영원하지 않다는 걸 전 남편이 제 곁을 떠나기 전에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남편이 떠난 뒤에 알게 된 것이 있다면 살아 있다는 것의 소중함이었습니다.
--- pp.136-137
외할아버지가 직접 파셨다는 정원의 연못은 말라 있었다. 한때는 알록달록한 금붕어들이 노닐고 근처 논에서 떠온 개구리밥이 파르스름하게 떠돌던 곳이었다. 나는 그 말라붙은 연못 바닥을 내려다 보며 외갓집의 쇠락을 예감했다.
--- p.
'기정아, 너 이런 생각 안 드니?'
'뭘?'
'극장에서 하룻밤 새우며 영화를 볼 수 있는 자유! 보통 아줌마들 같으면 어림없잖어?'
'맞아.'
구구한 여성학 이론보다 명쾌했다. 그래, 피할 수 없을 땐 즐기는 방법도 있다. 단순하게.
이론은 인간의 짐을 무겁게 하고, 도는 인간의 짐을 가볍게 한다던가. 둘은 둘의 길을 가고, 혼자는 혼자의 길을 가면 되는 것이다.
--- p.262
고모하고 고모부는 십오 년이 채 안 되게 같이 살았다. 그후 따로 산 세월은 오십 년이다. 순전히 타의에 의한 한 많은 이별이었지만 한을 푸는 것 못지않게 오십 년의 사생활 또한 중요하다.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 없는 이별이 아무리 부당한 것이라 해도 그후 새로 살아낸 자그만치 오십 년 세월까지 부당해지는 건 아니다. 오십년의 사생활을 보호할 것이냐 이별의 한을 풀 것이냐는 당사자가 결정할 문제다. 제삼자는 비켜나 있어야 한다.
--- p.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