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로에서 그렇듯 많이 충그리고 길이 터지고 했어도, 회장에 당도했을 때는 부민관 꼭대기의 큰 시계가 열두 시밖에는 더 되지 않았습니다. 입장권을 사기 전에 윤 직원 영감과 춘심이 사이에는 또 한바탕 상지가 생겼습니다.
윤 직원 영감은 춘심이더러, 네 형이 출연을 한다면서 무대 뒷문으로 제 형을 찾아 들어가 공짜로 구경을 하라고 시키던 것입니다. 그러나 춘심이는, 암만 그렇더라도 저도 윤 직원 영감을 따라왔고, 그래서 버젓한 손님이니까 버젓하게 표를 사 가지고 들어가야 말이지, 누가 치사하게 공구경을 하느냐고 우깁니다.
그래 한참이나 서로 고집을 세우고 양보를 않던 끝에, 윤 직원 영감은 슬며시 10전박이 두 푼을 꺼내서 춘심이 손에 주면서 살살 달랩니다.
“옜다. 이놈으루 군밤이나 사 먹구, 귀경은 공으루 들여 달라구 히여. 응? ……그렇게 허먼 너두 좋구 나두 좋구 허지?”
한여름에도 아이들한테 돈을 주려면 군밤 값이라는 게 윤 직원 영감의 보캐블러리입니다.
춘심이는 군밤 값 20전에 할 수 없이 매수가 되어 마침내 타협을 하고, 먼저 무대 뒤로 해서 들어갔습니다. 윤 직원 영감은 넌지시 50전을 내고 하등표를 달라고 해서 홍권을 한 장 샀습니다. 그래 가지고는 아래층 맨 앞자리의 맨 앞줄에 가서 처억 앉으니까, 미상불 아무도 아직 들어오지 않았고, 갈데없이 첫쨉니다.
--- pp. 42~43
그 다음, 윤 직원 영갑이 집안 문벌을 닦는 데 또 한 가지의 방책은 무어냐 하면, 양반 혼인이라는 좀더 빛나는 사업이었습니다.
외아들(서자 하나가 있기는 하니까 외아들이랄 수는 없지만 아무튼) 창식은 나이 근 세요, 벌써 옛날에 시골서 아전집과 혼인을 했던 터이라 치지도외하고, 딸은 서울 어느 양반집으로 시집을 보냈습니다. 오막살이에 가랑이가 찢어지게 가난한 집인데, 그나마 방정맞게시리 혼인한 지 일 년 만에 사위가 전차에 치여 죽고, 딸은 새파란 과부가 되어 지금은 친정살이를 하지만, 아무려나 양반 혼인은 양반 혼인이었습니다.
또 맏손자며느리는 충청도의 박 씨네 문중에서 얻어 왔습니다. 역시 친정이 가난은 해도 패를 찬 양반의 씹니다. 둘째 손자며느리는 서울 태생인데, 시구문 밖 조 씨네 집안이나, 그렇다고 배추 장수네 딸은 아니고, 파계94를 따지면 조 대비와 서른일곱 촌인지 아홉 촌인지 된다고 합니다. 이렇게 해서 버젓하게 양반 사돈을 세 집이나 두게 된 것은 윤 직원 영감으로 가히 한바탕 큰기침을 할 만도 합니다.
그 다음 마지막 또 한 가지가 무엇이냐 하면, 이게 가장 요긴하고 값나가는 품목입니다.
집안에서 정말 권세있고 실속있는 양반을 내놓자는 것입니다.
군수 하나와 경찰서장 하나…….
게다가 마침맞게 손자가 둘이지요.
하기야 군수보다는 도장관이 좋겠고, 경찰서장보다는 경찰부장이 좋기는 하겠지만, 그건 너무 첫술에 배불러지라는 욕심이라 해서, 알맞게 우선 군수와 경찰서장을 양성하던 것입니다.
--- pp.75~76
“사회주의라니? 으응? 으으……?”
윤 직원 영감은 사뭇 사람을 아무나 하나 잡아먹을 듯, 집이 떠나게 큰 소리로 포효를 합니다.
“……으응? 그놈이 사회주의를 허다니! 으응? 그게, 참말이냐? 참말이여?”
“허긴 그놈이 작년 여름 방학에 나왔을 때버틈 그런 기미가 좀 뵈긴 했어요!”
“그러머넌 참말이구나! 그러머넌 참말이여, 으응!”
윤 직원 영감은 이마로 얼굴이 땀이 방울방울 배어 오릅니다.
“……그런 쳐죽일 놈이, 깎어 죽여두 아깝잖을 놈이! 그놈이 경찰서장 허라닝개루, 생판 사회주의허다가 뎁다 경찰서에 잽혀? 으응? ……오사 육시를 헐 놈이, 그놈이 그게 어디 당헌 것이라구 지가 사회주의를 히여? 부자 놈의 자식이 무엇이 대껴서 부랑당패에 들어……?”
아무도 숨도 크게 쉬지 못하고, 고개를 떨어뜨리고 섰기 아니면 앉았을 뿐, 윤 직원 영감이 잠깐 말을 그치자 방 안은 물을 친 듯이 조용합니다.
“……오죽이나 좋은 세상이여? 오죽이나…….”
윤 직원 영감은 팔을 부르걷은 주먹으로 방바닥을 땅 치면서 성난 황소가 영각을 하듯 고함을 지릅니다.
“화적패가 있너냐아? 부랑당 같은 수령들이 있너냐? ……재산이 있대야 도적놈의 것이요, 목숨은 파리 목숨 같던 말세넌 다 지내가고오…… 자 부아라, 거리거리 순사요, 골골마다 공명헌 정사, 오죽이나 좋은 세상이여…… 남은 수십만 명 동병을 하여서, 우리 조선 놈 보호히여 주니, 오죽이나 고마운 세상이여? 으응? ……제 것 지니고 앉아서 편안허게 살 태평 세상, 이걸 태평 천하라구 허는 것이여 태평 천하! ……그런디 이런 태평 천하에 태어난 부자 놈의 자식이, 더군다나 왜 지가 떵떵거리구 편안허게 살 것이지, 어찌서 지가 세상 망쳐 놀 부랑당패에 참섭을 헌담 말이여, 으응?”
땅 방바닥을 치면서 벌떡 일어섭니다. 그 몸짓이 어떻게도 요란스럽고 괄괄한지, 방금 발광이 되는가 싶습니다.
--- pp.279~2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