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는 우리 나라 작가들도 그런 경우가 많지만, 미국에는 일종의 자료 조사에 각별히 공을 들이는 작가들이 예전부터 무척 많았다. 예컨대 우리 나라 소설이라면 대충 명동 어디에서 술 한 잔 했다고 할 것을, 미국 소설은 뉴욕 몇 번 가에 있는 어떤 카페, 어떤 자리라고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많다. 실제로 그 거리를 찾아가 보면, 카페 주변과 안 모습이 소설 속 묘사와 정확하게 일치하곤 한다.
소설이 한 사회와 시대의 거울이기도 하고 보면, 소설가가 묘사하는 동시대의 구체적인 장소, 도시, 거리, 건물 풍경은 세월이 흐르면 귀중한 빚 바랜 사진첩 역할을 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나도향의 <환희>에서 우리는 1920년대 종로 거리와 만날 수 있다. '양국인(洋國人)이 세운 남산 밑에 우뚝 서 있는 천주교당이 아주 신성한 땅 위에 천당이나 같아 보였다. ...... 종로 네거리 순사 주재소가 있고, 재판소 앞 대서소 많이 있는 골목을 꿰뚫어 청진동으로 들어간다.'
<문학 속 우리도시기행>은 바로 그런 귀중한 사진첩이다. 한국 근현대 건축사학의 권위자인 김정동 교수는 이 책에서, 이광수, 나도향, 염상섭, 현진건, 최서해, 유진오, 심훈, 이상, 박태원, 김유정, 채만식, 이효석, 김동인, 이미륵 등 모두 24명의 작가가 소설 속에서 그려 낸 도시 풍경을 전해준다. 물론 이 책이 정말로 사진첩은 아니지만, 사실상 사진첩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귀중한 사진 자료를 풍부하게 갖추고 있다. 경성의 기생집 안내 팜플렛, 영변의 약산 모습, 1930년대 충무로 입구, 1920년대 유성 온천 거리, 1925년 경성역(서울역) 1, 2등 대합실, 1935년의 노량진 신작로, 수표교 앞 청계천에서 빨래하는 여인들......실로 이 책이 아니면 접할 기회가 드문 사진들이 가득하다.
그러나 이 책의 보다 큰 미덕은 글의 전개 방식에 있다. 부제목이 '김정동 교수의 문학동선'인데, 동선(動線)이라는 말대로 저자는 소설 속 등장인물들의 발자취를 따라 걷는다. 예를 들어 박완서의 1970년작 <나목>을 통해 김정동 교수는, 1951년 겨울부터 1953년 초까지 6.25 전쟁이 휩쓸고 있는 서울 거리를 걷는다. 신세계 백화점을 중심으로 명동, 회현동, 을지로, 화신, 계동, 연지동으로 퍼져 나가는 문학동선을 밟고 있는 것이다. 참고로 작가 박완서는 6.25 당시 20세였다. 소설 <나목>에서 작가가 그 주변과 내부를 자세히 묘사하고 있는 미군 PX 건물은 현재의 신세계 백화점이다. 김정동 교수의 설명을 들어보자.
현재의 신세계 백화점은 일제 강점기에 미쓰코시 백화점 경성 지점이었고, 해방 후 동화백화점으로 개칭되었다가, 미 군정 당국이 주둔군의 메인 PX 시설로 징발해 사용했다고 한다. 이후 6.25 전쟁 중에도 미 8군의 메인 PX로 사용되었으며, 휴전 협정 체결 이후 민영화되었고, 신세계 백화점으로 개칭된 것은 1963년부터라고 한다. 화가 박수근이 초상화부원 4명 중 하나로 그림을 그려 호구지책을 삼던 미군 PX가 바로 그곳이기도 하다.
저자의 말대로 우리 근현대사를 설명할 실물 자료는 이제 거의 없는 실정이다. 예컨대 근현대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서울의 화신백화점은 사라진 지 오래고, 조선총독부 건물도 이제는 볼 수 없다. 그러나 다행히도 소설에서는 그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저자는 그 흔적을 실마리 삼아, 입수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종류의 관련 문헌 및 사진 자료를 수집, 정리하는 노고를 아끼지 않았다. 이처럼 보기 드문 저자의 박학과 고증의 정신 덕분에, 이 책은 한국문학사에 관심을 지닌 독자들에게도 각별히 다가오기 충분하다.
한편 우리 문학과 도시라는 주제에 관심을 지닌 독자라면, 얼마 전에 출간된 <서울문학기행> (장태동 지음, 중앙M&B,)을 읽어볼 만 하다. 한국 근현대 문학을 대표하는 27인의 삶을 살펴보면서 서울에 남겨져 있는 그들의 삶의 자취를 답사한 책이다. 그리고 '문학기행'이라는 말을 일종의 보편 명사로 만드는 데 기여한 김훈과 박래부의 <문학기행>(전 2권, 한국문원, 1997)도 추천할 만 하다. 외국 문학이라면 독일 고전주의와 괴테의 도시인 바이마르 문학 기행이라 할 수 있는, <바이마르에서 온 편지> (전영애, 문학과 지성사, 1999)를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