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 누군가 조용히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이어 그 누군가가 태희의 손을 잡았다. “응? 진아니?” 태희는 옆에 있는 진아의 이름을 불렀지만 이름을 부르는 순간 진아의 손이 아닌 걸 깨달았다. 조용하긴 했지만 남자 아이 목소리였다. 태희는 놀라 얼음이 된 것처럼 딱딱하게 굳어 버렸다. 손은 태희보다 컸고, 부드럽진 않았지만 꽤 따뜻했다. 그래서 낯설지만 불쾌하지는 않았다. “나, 널 좋아해.” 수줍은 듯 속삭이는 목소리에 태희는 자신이 제대로 말을 들은 것인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그래서 태희 역시 망설이는 소리로 물었다. “저, 누구…….” 하지만 다음 대답은 들을 수가 없었다. --- p.14
- 좋아, 우리 사귀자^^ 카톡창에 활짝 웃는 이모티콘이 아주 커다랗게 보였다. 조마조마하게 가슴을 졸이고 있던 승우는 자기도 모르게 오예!하고 소리를 질렀다. 답장을 기다리는 몇 분이 백 년은 된 것 같았다. 실실 입꼬리가 올라간 승우도 냉큼 하트 이모티콘을 보냈다. 태희 눈에는 그 하트가 마치 두근두근 거리는 자신의 마음 같아 보였다. 태희는 자신에게도 남자 친구가 생겼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았다. ‘으악, 나도 커플이 되다니! 이제 뭘 어떻게 해야 되는 거지?’ --- p.31
“흠, 혹시 좋아하는 애가 있어서 그래?” 그 질문에 승우는 한동안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왜 대답을 못해? 좋아하는 애가 있는 거야, 없는 거야?” “내가 왜 그런 대답을 해야 돼?” 승우의 목소리는 이제 차분해져 있었다. 냉랭한 목소리에 태희는 정체가 들통 날 것 같아서 더 이상 대화를 이어갈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알았다며 서둘러 전화를 끊어 버렸다. “뭐야뭐야, 승우가 뭐래?” “좋아하는 애가 너라고 말해?” “아니.” 태희의 대답에 진아와 민지는 실망스러워했다. “걔 뭐냐?” “반에서는 커플이라고 다 알고 있는데 뭔 비밀이라고 그걸 말 안하냐? 이거 바람둥이 아니야?” --- p.52
“흠, 엄마는 내가 남자 친구 사귀는 게 싫어?” “싫다기보다는 아직은 좀 이른 거 같아. 솔직히 네 나이에 뭘 안다고 남자 친구를 사귀겠어. 공부하는데도 방해 돼서 못 써.” 엄마의 표정은 단호했다. 태희는 엄마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아서 슬쩍 딴지를 걸었다. “왜 엄마는 그렇게 생각해? 그렇지 않을 수도 있잖아.” “엄마 친구 딸 서연이라고 알지?” “중학교 다니는 서연이 언니?” “그래. 걔가 얼마나 공부 잘했니? 그런데 이번 시험에서 아주 죽을 쒔다더라. 얼마 전에 남자 친구가 생기더니 성적이 뚝 떨어졌다고 걔 엄마가 걱정이 말로 못해.” --- p.67
네 아이들은 각각 상장을 받아들었고 다들 입이 귀에 걸려 있었다. “얘들아, 수고 많았어.” 먼저 대회에 나가자고 했던 승우가 현수와 진아에게 말했다. “제일 고생한 건 승우지 뭐.” 현수가 팀장 역할을 했던 승우를 추켜세웠다. “맞아, 그리고 태희도 승우를 도와서 고생 많았어. 이번에 보니까 승우와 태희 너희는 환상의 커플이더라.” “그래, 그래. 우린 너희 커플 덕을 좀 본 거 같아. 환상의 커플 덕에 이렇게 상까지 받고. 히히.” 진아와 현수의 말에 태희는 가슴이 벅차올랐다. 부끄럽기도 했지만 환상의 커플이란 말은 정말 듣기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