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사람에게서는 발견하기 어려운, 모든 것을 다 겪은 자만이 파란만장했던 세월에 대한 보상으로 마지막에야 훈장처럼 가질 수 있는 텅빈 솔직함. 그것은 내가 가장 바라는 것이었다.'-54P
'그 말은 확실히 옳았다. 모든 사람이 다 죽기는 하지만 모든 사람이 다 사는건 아니다. 숨을 쉰다고 해서 진짜로 살아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여행하는 것이 반드시 사는 것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었다. 평생동안 여행만 해도 아무리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이려고 안간힘을 써도, 끝이 보이지 않는 차가운 회색 바다 위로 떠노는 시체와 다름 없을 수 있다는 것을...'-6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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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이 깨어 방에서 나가보니 눈부신 햇살과 차가운 공기의 상쾌한 아침이다. 어젯밤 자정이 넘어 여관에 도착해서 어둠을 더듬어 내방까지 올라온지라 밝은 빛에 환히 드러난 낯선 숙소의 모습이 막 잠이 깬 흐릿한 눈에 새롭게 드러났다.
포파얀 굴지의 싸구려 숙소인 이 '까사 파밀리아'는 전통적인 콜롬비아 스타일로 지어진 운치 있는 2층 목조가옥으로, 탁 트인 구조가 시원하게 느껴진다. 우물 정자 모양으로 뻥 뚫린 가운데 마당을 둘러싸고 1층에는 부엌과 식당, 일하는 사람들의 방이 있고 역시 가운데가 훤히 뚫려 아래위로 1층과 하늘이 보이는 2층에는 나무 마루를 따라 커다란 방들이 늘어서 있었다. 고개를 기울여 마루 아래를 내려다보면 화초들이 놓인 1층의 소박한 정원과 빨래터가, 고개를 들면 새파란 하늘에 새하얀 구름이 떠다니는 것이 보였다. 소박하지만 초라하지 않은 상쾌한 분위기가 마음에 꼭 들었다. 고요한 여관 여기저기를 살펴보며 들뜬 마음으로 널찍한 마루 위를 한참 서성거렸다. 별다른 이유 없이도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 닥치는 대로 뭐든지 거뜬히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원기가 샘숫는 묘한 아침이다.
평소 같으면 오전 늦게까지 따뜻한 침대에 늘어져 마지막 1초까지 게으름을 부렸겠지만 오늘은 콜롬비아에서 제일 예쁜 식민도시로 손꼽히는 포파얀에서 맞는 첫날인지라 어서 시내 구경을 하고 싶어 실로 오래간만에 조바심이 날 정도였다. 아름답다는데 과연 아름다울지, 아름답다면 어떤 식으로 아름다울지. 일박에 3천 원짜리 이 싸구려 숙소만 해도 이렇게 그럴 듯하니 이 도시 전체는 얼마나 멋질까 상당히 기대가 되었다. 숙소의 커다란 나무대문을 살짝 밀어 열고 드디어 밖으로 나갔다.
---pp.224~225
이건 그녀가 여행에서 만난 사람에 관한 감상이다. '나는 멍하니 그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손은 아주 컸다. 길고 탄력 있어 보이는 손가락은 그다지 늙어 보이지 않았다. 마디가 굵은, 노동에 익숙한 듯한 그 손은 내 마음에 들었다. 내가 질색하는 반지 따위는 없었고, 손목에는 번쩍거리는 메탈이 아닌 심플한 갈색 가죽끈 시계가 채워져 있었다.'
--- pp.63-64
미국 플로리다의 작고 조용한 마을인 게인스빌에서 살던 시절, 낙이라고는 잠자는 일과 아프리카산 화초 돌보기, 그리고 인터넷의 여행사이트들을 밤새도록 떠도는 일뿐이었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수시로 넘나들며 위태롭게 살던 중 드디어 학교를 그만두고 중남미로 떠나겠노라고 말하자 지도교수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 곳에는 뭐하러 가지?'하는 물음에 '마약 사러 갑니다.'라고 대답했지만 교수는 전혀 웃지 않았다. 의미 없는 미소라도 한번 보여주었더라면 지루하지만 바닥이 단단한 현실과 작별하는 것에 대해 좀더 두려움을 느꼈을 텐데.
멕시코와 중남미로 떠나는 일에 대해 나는 평소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아주 재빠르고 효율적으로 해치워버렸다. 그 원동력의 실체에 대해서는 지금도 알 수가 없다. 그 힘은 현실 도피를 향한 욕구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실제적이었고 밥하기 귀찮아서 차라리 굶고 마는 게으름뱅이에게서 솟아난 것치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강력했다.
--- 본문 중에서
건달에게 뜻밖에도 부드러운 감성을 발견했을 때처럼 이 위험하다고 소문난 나라가 넓은 품에 가득 품고 있는 부드러운 초록빛 안데스와 세상에서 가장 매력적인 사람들에게 나는 완전히 빠져들고 말았다. 인간이라는 종족의 돌연변이가 이처럼 사랑스러울 수 있다는 것을 콜롬비아의 시골에서 처음 알았다. 불행한 시간을 보낸 중미의 바나나공화국에서 가장 실망스러웠던 것은 결국 별것 아닌 볼거리가 아니라 그곳의 사람들이라는 것을 이제는 알았다.
--- p.288
4개월간의 남미 여행 끝에 무뎌진 것은 위생 관념이나 시간 개념만이 아니었다. 그보다 더욱 둔해진 것은 정서적인 감각이었다. 두려움이나 망설임, 창피함 따위의 약한 감정은 이미 사라져버리고 없었다. 인내나 관용 따위도 완전히 닳아빠져 이젠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방금 갈아놓은 칼처럼 날카로워진 것은 혐오감뿐이었다. 남미 여행 4개월을 넘어서면서 나는 어느새 거친 여행에 닳고 닳은 강철 같은 여행자가 되어 있었다. 튼튼해진 것은 위장뿐만 아니었다. 누군가 내 등 뒤에서 '치니타(중국년)'라고 빈정거리면, '왜? 이 빌어먹을 페루놈아!' 하고 당장 화답해주곤 했다. '칭챙총(중국계를 경멸하는 소리)' 하고 놀리면 발치에 침을 뱉어주었다. 이제는 아무도 두렵지 않았고 그 무엇도 거칠 것이 없었다.
'드디어 강인한 여행자로 다시 태어났도다.'
그래서 기쁘냐 하면 그렇지는 않았다. 실용적인 목적을 위해 정교한 기계인간으로 다시 재생된 내 차가운 몸뚱이를 전면 거울로 샅샅이 확인한 후처럼, 나는 매우 서글퍼졌다. 이렇게 되기를 원한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내 자신이 아주 이상한 인간으로 변해버렸다는 것을 여행 떠난 후 처음으로 느꼈다. 아주 괴상하게 되어버리고 말았어. 길 가다가 우연히라도 절대로 마주치고 싶지 않은 그런 소름끼치는 인간이 됐단 말이다. 그래서 지금 아름다운 티티카카, 세계에서 가장 높다는 신비한 파랑 호수를 구경하러 나서기보다는 초라한 여관방에 틀어박혀 언제까지고 눈물을 흘리고 싶을 만큼 끔찍하게 변해버린 나 자신에 대해 슬퍼하고 있었다. 나를 알고 있는 누군가가 이 꼴을 본다면.
'그것도 고작 1솔 때문에 말야.'
목이 꽉 메어왔다. 뜨거운 것이 이제야 막 나오려는 듯.
--- p.157-1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