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생계를 유지합니까? 나는 답하기 어렵다. 분명 버는 것이 있으니 먹고 산다. 그러나 딱 꼬집어 나는 이렇게 먹고 산다고 답하기 힘들다. 번역 인세, 잡지 원고료, 방송 출연료로 먹고 살며, 의뢰 받은 외국 도서의 내용을 검토하고 출판사로부터 돈을 받아 먹고 살기도 한다. (그런 돈, 즉 검토료를 지급하는 출판사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미국에는 그런 일만으로 먹고 사는 사람이 있다고 하던가.) 이런 말을 하면 누군가 나에게 말한다. 팔자 정말 좋다고. 직장 다니는 분들에 비해 수입이 적고 불안정하지만 '프리'하게 일하니 팔자가 좋을 수도 있다.
하지만 '프리'하다는, 아니 자유롭다는 말에는 함정이 있다. 예컨대 내 경우 여러 가지 일을 하지만 그 모든 일에는 계약 조건이 따른다. 어느 수준으로 어느 날까지 마무리지어 제출하면 얼마의 돈을 지급한다는 조건. 직장에 고용 계약이 있다면 나에게는 구체적인 일 하나 하나마다 계약이 따른다. 여러 가지 계약 사항을 동시에 진행해야 겨우 먹고 살 수 있는데, 다양한 계약 조건들을 모두 충족시키려면 속된 말로 머리에 쥐가 난다. 직장의 경우 사직서를 써야 할 만큼 중대한 실수의 종류는 그다지 많지 않다. 하지만 '자유롭게' 일하는 사람들의 작은 실수에는 직장에서의 사직에 준하는 처분이 기다린다. 극소수 잘 나가는 프리랜서들의 뒤안길에는 나 같은 일용 잡급 프리랜서들의 불안이 도사리고 있다.
『프리 에이전트의 시대가 오고 있다(에코리브르)』. 나는 이 책의 제목을 접하고, 앞서 언급한 나 같은 처지의 사람들을 이야기하는 책인가 싶었다. 과연 그러했다. 저자가 말하는 프리 에이전트란 이렇다. '거대한 조직체에서 벗어나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책임지는 독립 노동자', '거대 조직에 속박되지 않고 자기 스스로 정한 협약에 따라 수많은 의뢰인과 소비자를 위해 일하는 노동자 . 그리고 프리 에이전트를 대략 다음과 같이 분류할 수 있다고 한다. 프리랜서로 일하는 단독업자, 한시적으로 조직에서 일하는 임시직, 그리고 5인 이하 초소형사업체. 관련 통계에 따르면 미국에는 1,650만 명의 단독업자, 350만 명의 임시직 노동자, 1,300만 개의 초소형사업체가 있으며, 결국 미국 노동 인구의 4분의 1이 프리 에이전트인 셈이다. 수십 년 일한 직장에서 구조 조정으로 밀려나 우리 동네에서 치킨집을 운영하며 근근히 살아가는 어느 아저씨도 저자가 말하는 프리 에이전트다. 그 치킨집에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오토바이로 치킨을 배달하는 임시직 프리 에이전트 청년이 있고, 치킨집 옆에는 은행에서 밀려난 프리 에이전트 아저씨가 포장마차를 경영하고 있으며, 그 치킨집과 포장마차에서 가끔 술을 마시는 프리 에이전트인 나는 임시직 계약을 맺고 일하는 프리 에이전트인 아파트 경비 아저씨에게 인사를 하고 집에 들어가니, 우리 동네에는 이미 프리 에이전트의 시대가 도래한 셈이다.
프리랜서니 프리 에이전트니, 그대 스스로를 고용하라느니 하는 말들 뒤에는 다음과 같은 메시지가 도사리고 있다. 국가, 사회, 그 어떤 조직도 당신을 보호해주지 않는다. 여기까지는 인간 사회의 냉엄한 현실을 기술하는 말이다. 그런데 더 나아가 국가, 사회, 그 어떤 조직도 개인을 보호해줄 의무는 없다고까지 말한다면, 이른바 신보수주의, 신자유주의라는 다분히 이념적인 차원이 된다. 물론 이 책은 그런 차원을 담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마이너리티 그룹)에 대한 배려가 미비한 사회, 이른바 사회 안전망이 미비한 사회라면, 프리 에이전트라는 표현은 믿을 건 나 밖에 없다는 표현과 사실상의 이음동의어가 되기 쉽다.
이 책의 저자는 과연 프리 에이전트의 시대가 '오고 있다'는 말과 프리 에이전트의 시대가 '와야 한다'는 말을 정확히 구별하고 있을까? 이 책의 저자를 얌전한(mild) 신자유주의, 소극적(negative) 신보수주의의 이데올로그로 볼 수 있지 않을까? 현실을 객관적으로 기술하는 것처럼 보이는 표현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현실에 대한 가치 판단이 드러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가치 판단이 은폐되어 있거나 유보되어 있는 현실 분석의 결론은 간단하다. 변하고 있으니 적응하라! 요컨대 현재의 변화가 바람직한 것인지 도무지 되물을 줄 모른다. 이 점에 각별히 주의해서 읽을 필요가 있는 책들로, 이 책 이외에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보보스(동방미디어)』, 『그대 스스로를 고용하라(김영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