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꿈은 라디오 디제이였어요. 어른이 되어 동화 작가가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지요. 학교를 졸업하고 광고 만드는 일을 오랫동안 하다가 2008년 어린이책 작가 교실에서 공부하면서 동화의 세계에 빠졌답니다. 그 후 새로운 꿈이 생겼어요. 멋진 이야기로 많은 어린이와 만나는 일이에요. 새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중이랍니다. 제10회 푸른문학상을 수상하였고, 제11회 건대창작동화상을 수상했습니다. 지은 책으로는 『열다섯, 비밀의 방』(공저)과 『재미있는 그리스 로마 신화 1』 등이 있습니다.
그림 : 홍지혜
홍익대학교에서 금속조형디자인을 전공하고, 한국일러스트레이션학교(HILLS)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을 공부했어요. 2011년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에서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그린 책으로 『너울너울 신바닥이』『해바라기 마을의 거대 바위』『옛이야기 들으러 미술관 갈까?』『기다란 머리카락』『조금 다르면 어때?』 등이 있습니다.
할머니는 보랏빛 나무 상자를 진열대에 올리고 상자 뚜껑을 열었다. 그 안에는 정육면체의 작은 종이 상자 두 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음······ 오늘 아주 힘든 하루였구나. 그럴 때 딱 좋은 거야.” 짝짝이 눈 할머니는 부리부리한 눈과는 어울리지 않는 다정한 말투로 미지에게 말하며 상자 중 하나를 꺼내 미지에게 내밀었다. “이건 오늘 있었던 힘든 일을 잊게 해 주는 약 같은 거야. 싹 잊어버리고 기분이 좋아지게 하지. 이걸 먹고 집에 가서 한숨 푹 자고 일어나면 힘들었던 일을 잊게 될 거야.” ‘오늘을 잊게 해 준다고?’ ---p.12
“우정아, 엄마는 마음이 아픈 병에 걸렸대. 우리가 엄마를 이해하고 다독여 줘야 해.” 병원에 다녀온 아빠는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우정이는 엄마를 이해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학교에 갔다가 집에 돌아왔을 때 귀신처럼 앉아 있는 엄마를 보면 차라리 집에 엄마가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언젠가부터 우정이는 엄마 없는 아이처럼 살아야 했다. 학급에 간식을 넣어 주는 엄마나 자율 휴업일에 체험 학습을 계획해 놓는 엄마는 꿈도 꾸지 않았다. 엄마가 챙겨 주지 않아서 생기는 구멍들 때문에 마음과 몸이 시린 것도 참을 수 있었다. 하지만 친구들마저 떨어져 나가게 하는 엄마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차라리 엄마가 없는 게 낫다. ---p.33
다음 날 교실에서는 쉬는 시간마다 수군거리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미지가 해아 휴대폰을 훔쳤다며?” “그래, 어제 청소 시간에 난리 났었어.” “주현이까지 나서서 미지한테 소리 지르고, 해아는 울고.” “정말로 미지가 훔친 거야?” “미지는 아니래. 그날 일이 기억 안 난대.” “그게 무슨 말이야?” 아이들은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미지를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미지는 아침부터 풀이 죽은 채 있었다. 옆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는 우정이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p.55
“너 우리 말 안 들으면 후회할걸. 사실 나도 4학년 때 미지랑 친하게 지냈어. 그런데 걔가 이상한 소문을 냈지 뭐야? 내가 저를 왕따 시켰다고. 내가 얼마나 어이없었는지 알아?” 해아는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르는 듯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왕따 단짝이 되어봤자 너도 왕따가 돼. 괜히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앞으로 걔랑 놀지 마.” 해아는 진심으로 걱정된다는 표정이었다. 우정이는 마음이 슬며시 흔들렸다. ‘미지가 이상한 소문을 냈다고?’ 이상한 소문이라면 우정이는 진저리를 쳤다. 예전에 다녔던 학교에서 소문 때문에 힘들었기 때문이다. 우정이가 얼굴이 굳어진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자 해아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p.103
해아가 그 호소문을 보고 떼어 버렸지만 아이들이 다시 가져와 게시판에 붙였다. 해아는 책상 위에 엎드려 울고불고 했지만 아무도 위로해 주지 않았다. 그날 오후 누군가 성필이가 붙인 종이 아래 여백에 조그맣게 댓글을 달아 놓았다. ‘윤성필, 용기 있다! 네가 우리 반인 게 자랑스러워.’ 댓글은 점점 늘어났다. ‘강해아, 이주현, 박소정은 사과하라!’ ‘성필아, 잘했어!’ ‘성필이 꽤 멋있네. 친구 신청!’ 다음 날에는 종이가 여백 없이 댓글로 가득 찼다. 모두 성필이를 응원하고 해아 패거리를 비난하는 내용이었다. 그날 오후 성필이는 게시판에서 종이를 뗐다. 초록색 뿔테 안경 속의 두 눈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제야 마음이 가벼워진 모양이었다.
학교 뒷골목에 있는 귀신딱지 문방구는 많은 아이들이 가보고 싶어 하지만 항상 닫혀 있는 곳이다. 같은 반 해아에게 찍혀 왕따가 된 미지는 우연히 이 문방구가 열려 있는 것을 보고 들어가게 된다. 이 문방구에서 초콜릿 하나를 먹고 그날의 기억을 잃게 되고, 전학 온 우정이도 같은 날 이 초콜릿을 먹고 기억을 잃는다. 기억을 잃어버리면서 미지는 도둑으로 몰리게 되고, 우정이는 엄마가 줬다는 편지를 어디다 뒀는지 잊게 된다. 기억을 잃어 곤란해진 미지와 우정이. 하지만 미지와 우정이는 단순히 하루를 잊은 것이 아니라 서로의 기억이 뒤바뀌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