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5년, 니체는 “신은 죽었다.”고 선언했다. 물론 이 말은 살아 있던 신이 죽었다는 말이 아니고, 신은 아예 살아서 존재한 적이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시대의 합리주의자들은 신이 비과학적인 과거의 잔재에 불과하며, 종교적 믿음은 미신과 자기 기만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생각했다. 합리주의자들은 이제 인간의 이성으로 그러한 비합리적인 미신을 극복할 수 있다고 믿었고, 그러한 자신감이 니체의 선언으로 표출된 것이다. 그러나 그 후 니체는 죽었지만, 신은 여전히 사람들의 마음속에 살아남아 위세를 떨치고 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어떻게 과학과 이성의 시대에 무지가 이성에 승리를 거둘 수 있었을까(니체의 입장에서 본다면)?
합리주의자들이 간과한 것이 한 가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종교의 질긴 생명력의 뿌리였다. 그 생명력의 뿌리는 바로 신비 체험이다. 인간의 논리와 이성을 초월하는 신비 체험은 시대와 문화와 종교에 관계 없이 일관되게 나타난다. 그리고 신비 체험이 존재하는 한, 신과 종교는 사라지지 않는다. 왜 오랜 옛날부터 사람들은 신비 체험을 해왔고,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경험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사람의 뇌 자체에 그러한 능력이 들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저자들의 주장이다.
이 책의 저자들은 바로 이것을 증명하려고 노력했다. 즉, 뇌 속에서 신의 사진을 찍으려고 한 것이다. 그들은 영적 체험을 하는 사람들의 뇌 상태를 사진으로 찍어본 결과, 뇌의 특정 부위의 활동이 급격히 감소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어떤 종교를 믿느냐에 관계 없이, 영적 체험을 하는 사람의 뇌의 활동 상태는 거의 비슷한 변화를 보인다. 그렇다면 모든 신비 체험은 단순히 뇌의 신경 경로에 생기는 전기화학적 깜빡임이 만들어낸 착각이나 환각에 불과한가? 저자들은 신비 체험은 현실보다 더 생생한 실체로 느껴지는, 실재하는 경험이라고 인정함으로써 신의 존재를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는다. 신이 사람에게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게 하려면, 뇌의 신경학적 구조를 이용하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우리가 인식하는 모든 것은 뇌의 전기화학적 신호의 형태를 통해 생겨나므로).
그런 다음, 저자들은 사람들이 신화와 종교를 어떻게 만들어내게 되었는지 설명을 시도한다. 그런데 이것은 엄밀한 과학이라기보다는 인문과학에 가깝다. 신과 종교의 기원을 신경생물학에 바탕을 두어 연구하는 분야를 신경신학이라 하는데, 이들의 시도는 과학계와 종교계 양쪽으로부터 공격을 받을 수 있다. 무엇보다도 종교계에서는 신경신학자들이 신비 체험이라는 특수한 경험을 종교 자체와 혼동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리고 신경신학은 뇌과학에 대해서는 많은 것을 이야기해줄 수 있을지 몰라도, 신의 존재 여부에 대해서는 어떤 새로운 사실도 말해주지 않는다고 공격한다. 과학의 입장에서도 신경학자들은 너무 적은 증거를 가지고, 신학에 대해 너무 많은 것을 이야기한다고 비판받을 수 있을 것이다.
신이 존재하는지(또는 존재하지 않는지) 확실한 과학적 증거를 기대한 독자들은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좀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오히려 신비주의에 대한 장황한 설명을 읽고 신비 체험이 실재한다는 확신만 얻음으로써 도대체 저자가 주장하는 바가 무엇인지 헷갈리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뇌의 신비는 다 밝혀지지 않았고, 뇌 속에서 신의 사진을 찍는 연구도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만약 연구가 더 이루어져 신비 체험을 일으키는 것과 똑같은 자극을 뇌에 가했더니, 피실험자가 모두 득도를 한다거나 하느님과 일체가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면? 그러면 마침내 신은 사라질까? 신경신학자들의 논리에 따르면, 그래도 사람의 뇌가 존재하는 한, 신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은 신경신학이라는 흥미로운 분야를 소개하는 훌륭한 입문서로서, 뇌과학과 신경생물학이 밝혀낸 새로운 사실들도 흥미롭지만, 뇌가 실체를 어떻게 인식하는지 설명한 부분도 아주 탁월하다. 그리고 내면의 세계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존재의 근본적인 미스터리에 대해 성찰해볼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