즈보나르는 아침마다 낙서들을 다시 읽는다. 혈액 순환을 촉진시키는 데는 분노만한 것이 없다. “나는 너에게 인사한다, 인간이여, 너 자신의 영원한 선구자여! 지드라브코 안드릭, 베오그라드 대학교 문과대학 재학중.” “인간이란 아직도 전신(前身)에 지나지 않는다. 언젠가는 완성된 존재가 되리라. 파벨 포블로빅, 사라예보 법과대학 재학중.” 그리고 프랑스 시인 앙리 미쇼가 그런 주제에 대해 쓴 글을 자랑스럽게 인용하고 있는 낙서도 있다. “그는 하나의 돌멩이에 걸려 비틀거린다. 걷기 시작한 지 2만 년만에 그는 자신을 겁주려는 증오와 경멸의 비명 소리를 들었다.” 더 아래에는 다른 글씨체로 이런 글이 휘갈겨져 있다. “이런 고상한 사상을 품은 유고슬라비아의 애국자들, 오늘 독일군에게 총살당하다.”
하지만 독일인은 바통을 이어받았을 뿐인걸, 하고 즈보나르는 생각한다. 그들은 횃불을 좀더 멀리 가져갔을 뿐, 우리 고매한 선구자들의 위업을 계승했을 뿐. 그 자신도 결론 삼아 낙서에 한 줄을 덧붙였다. “인간의 문제, 그것은 모두가 연루되는 치사한 문제다.” 그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보자마자 오줌을 갈기고 싶은 벽이 있는 법이 아니던가.
--- pp.159-160
인간이라 - 우리로서는 물론 이의가 전혀 없고말고. 언젠가는 인간이 될 게 아닌가! 좀더 참고 좀더 버텨야 해. 1만 년 정도밖에 남지 않았잖아. 이 친구들아, 기다릴 줄 알아야 해. 뭐니뭐니 해도 크게 보고, 지질학적 시대 단위로 시간을 헤아리는 법을 배우고, 상상력을 가져야 한다네. 그러면 인간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지. 인간의 시대가 올 때 그 자리에 남아 있기만 하면 되는 거야. 지금으로서는 자취와 몽상과 예감뿐이지만 - 지금 인간은 그 자신의 선구자일 뿐. 우리 고매한 선구자들에게 영광 있으라!
--- p.5
'이 새들이 모두 이렇게 죽어 있는 데에는'하고 그는 말을 이었다.
'이유가 있을 거요.'
그들은 떠나갔다.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기 직전 여자는 모래언덕 꼭대기에서 걸음을 멈추고 잠시 주저하다가 뒤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그는 이제 그곳에 없었다.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카페는 비어있었다.
--- p.31
물론 그럴싸한 구실은 찾아낼 수 있었네. 어쨌든 그 처녀와 쾌락의 파트너는 비극이 일어난 방과 얇은 벽 -얼마나 앏은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걸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었으니 말일세. 그들이 우리에게 뭔가 새로운 사실을 알려줄 수도 있었지. 하지만 내가 그런 행동을 한 주된 동기는 특별한 호기심 -변태적이든 파렴치한 것이든 마음대로 생각하게-에서였다는 사실을 자네에게 숨기지 않겠네. 나지막한 신음과 숨소리로 그런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한 그 '천사 같은 여자'를 한 번 보고 싶었다네. 나는 그 방 문을 두드려 보았네. 아무 대답이 없었지.
--- pp. 180~181
그는 문득 조바심에 사로잡혔다. 수치심과 분노가 뒤엉킨 감정. 하지만 인간이 자신의 피에 맞서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아이들이 모래 위를 걸으며 아직 파드득거리는 새들을 찾아내서는 신발 뒤축으로 숨을 끊어놓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그 아이들 몇몇을 그는 두들겨패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제 자신이 이 연약하고 상처입은 존재의 호소에 이끌려 그것을 끝장내고 있지 않은가. 그녀의 젖가슴 위로 몸을 기울이고, 그녀의 입술 위에 자신의 입술을 부드럽게 올려놓고 있지 않은가. 그녀의 팔이 그의 어깨를 감싸안는 것이 느껴졌다.
"날 역겨워하시지 않느군요." 그녀가 엄숙하게 말했다.
--- p. 24
"나도 압니다." 하고 말러가 대답했다. "그래서 난 녀석을 수의사들에게도 진찰을 받게 했지요. 녀석에겐 특별한 조치가 필요해요. 날 떠나면 보름도 못 살 거예요."
"난 당신을 떠날 생각이 전혀 없어요, 이그나츠." 세바스티앙이 말했다. "하지만 내가 친구들을 만나는 걸 막을 권리는 당신에게 없어요."
"사태를 직시하셔야 할 때가 된 것 같군요, 말러 씨." 소녀가 말했다. "세바스티앙이 인간이라는 사실 말예요."
"인간이라니!" 말러가 소리쳤다. "들으셨지요, 선생님? 그렇다면, 나는 인간입니까? 선생님......"
--- pp. 130~131
"나도 압니다." 하고 말러가 대답했다. "그래서 난 녀석을 수의사들에게도 진찰을 받게 했지요. 녀석에겐 특별한 조치가 필요해요. 날 떠나면 보름도 못 살 거예요."
"난 당신을 떠날 생각이 전혀 없어요, 이그나츠." 세바스티앙이 말했다. "하지만 내가 친구들을 만나는 걸 막을 권리는 당신에게 없어요."
"사태를 직시하셔야 할 때가 된 것 같군요, 말러 씨." 소녀가 말했다. "세바스티앙이 인간이라는 사실 말예요."
"인간이라니!" 말러가 소리쳤다. "들으셨지요, 선생님? 그렇다면, 나는 인간입니까? 선생님......"
--- pp. 130~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