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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리버 색스 자서전

[ 양장 ]
리뷰 총점9.7 리뷰 51건
베스트
자연과학 top20 13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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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5년 12월 31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496쪽 | 812g | 147*225*30mm
ISBN13 9791185430881
ISBN10 1185430881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어릴 적 2차 세계대전 중에 기숙학교로 보내진 나는 무력하게 갇혀 있다는 느낌에 움직임과 힘을, 마음껏 움직여 다닐 수 있는 초자연적인 힘을 갈망했다. --- p.11

열두 살 때 한 통찰력 있는 교사가 생활기록부에 “색스는 멀리 갈 것이다. 너무 멀리 가지만 않는다면”이라고 적었는데 그 염려가 그리 틀리진 않았다. 어렸을 때 화학실험을 한답시고 집 안이 유독 가스로 가득 차도록 ‘너무 가곤’ 했어도 다행히 집을 홀랑 태워먹지는 않았다. --- p.16

“여자 친구가 많은 것 같지는 않더구나.” 아버지가 말했다. “여자애들 좋아하지 않니”
“여자애들, 괜찮죠.” 나는 대화가 여기서 끝나기를 바라며 대답했다.
“혹시 남자애들을 선호하니” 아버지는 물고 늘어졌다.
“네, 그래요. 하지만 그냥 느낌뿐이에요. 뭔가를 ‘해본’ 적은 없어요.” 그러고는 두려운 마음으로 덧붙였다. “엄마한테는 말씀하지 마세요. 받아들이지 못하실 거예요.”
하지만 아버지는 말했다. 다음 날 아침 어머니가 격노한 얼굴로 내려왔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얼굴이었다.
“가증스럽구나.” 어머니가 말했다. “너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해.” 어머니는 그대로 방을 나갔고 며칠 동안 나에게 한마디도 걸지 않았다. 다시 말을 시작했을 때도 당신이 한 말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다시는 이 일 자체를 거론하지 않았다). 어머니와 나 사이는 예전 같지 않았다. 모든 면에서 그토록 열린 마음으로 나를 지지해주던 어머니였지만 이 문제에서만큼은 가혹하고 완고했다. 아버지처럼 《성경》을 즐겨 읽던 어머니는 [시편]과 [아가雅歌]를 좋아했지만 [레위기]의 무시무시한 구절에 사로잡힌 듯했다. “너는 여자와 동침함 같이 남자와 동침하지 말라. 이는 가증한 일이니라.” --- p.18~19

나는 ‘예-아니요’를 묻는 지식 시험에는 형편없었지만 에세이라면 물 만난 고기였다. --- p.28

옥스퍼드대학교 의예과에서 한 해부학과 생리학 공부는 실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 환자들을 만나고, 환자들 이야기를 경청하고, 환자의 경험과 곤경 속으로 들어가려고(또는 최소한 상상하려고) 애쓰고, 환자들을 염려하고, 환자들을 책임지는, 이 모든 것을 다 처음부터 배워야 했다. 환자들은 진짜 문제를 아주 고통스럽게 겪는(그리고 종종 중대한 기로에 선) 저마다 절절한 사정을 지닌 진짜 사람들이었다. 그렇기에 의료 행위는 단순히 진단과 치료에서 끝나는 문제가 아니며, 훨씬 더 중대한 문제에 직면하기도 한다. 삶의 질 문제를 물어야 하는 상황이 있고, 심지어는 생명을 이어가는 것이 의미가 있는 것인가를 물어야 하는 상황도 있다. --- p.50

나는 낮과 밤에 각각 다른 자아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낮이면 흰 가운 입은 친절한 올리버 박사님으로 살다가 일몰이 오면 모터사이클용 가죽 복장으로 갈아입고서 익명의 존재가 되어 늑대처럼 병원을 빠져나가 길거리를 배회하거나 타말파이어스 산의 굽잇길을 타고 올라가 달빛 내리는 길로 스틴슨비치나 보데가 만까지 달렸다. 이 이중생활에는 내 중간 이름, 울프Wolf가 아주 유용했다. 톰과 바이크 친구들하고 어울릴 때는 울프, 동료 의사들에게는 올리버였으니 말이다. --- p.96

사람들은 내가 19세기 선구자들의 저술도 토론해야 한다고, 우리가 지금 환자들한테서 보는 것을 그 시기에는 어떻게 진단하고 어떻게 생각했는지 알아야 한다고 말하면 짜증을 냈다(내 생각에는 그런 반응이었던 것 같다). 그들은 내 생각을 의고주의로 받아들였다. 가뜩이나 시간도 부족한데 그런 “폐기” 문헌들을 들여다보느니 더 건설적인 일을 찾아보는 게 좋지 않겠느냐는 투였다. 이런 태도는 우리가 읽는 많은 논문들에도 암묵적으로 반영되었다. 5년 이상 지난 문헌을 인용하는 논문이 거의 없는 것이다. 마치 신경학에는 역사가 없다는 듯이.
이야기로 생각하고 역사적 맥락으로 사고하는 내게는 이런 풍조가 몹시 실망스러웠다. 화학에 빠진 어린 시절에 나는 화학의 역사, 화학 이론의 진화사, 내가 좋아하는 화학자들의 생애를 다룬 책이라면 마다 않고 탐독했다. 그런 내게 화학은 역사가 흐르고 사람이 있는 세계이기도 했다. --- p.121~122

샌프란시스코에서 보낸 2년 동안 나는 하얀 인턴 가운을 짐승 가죽옷으로 갈아입고는 바이크에 올라타 떠나는, 나름대로 무탈한 주말 이중생활을 해왔다. 그 이중생활이 이제 한층 더 어둡고 위험해졌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UCLA의 환자들에게 헌신했다. 그러나 모터사이클을 타지 않는 주말이면 가상 여행(대마초나 나팔꽃씨나 LSD로 떠나는 마약 여행)에 몰두했다. 이것은 누구와도 나누지 못할, 누구에게도 말 못 할 비밀이었다. (…)
이것이 내 몸에, 어쩌면 내 뇌에 무슨 짓을 하는지 거의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머슬비치와 베니스비치에서 암페타민 과용으로 몇 사람이 죽었다. 나는 그저 운이 좋아 심장발작이나 심장마비가 오지 않았을 뿐이었다. 목숨 갖고 불장난을 하면서도 나는 그 사실을 의식하지 못했다.
월요일 오전이면 (휘청휘청, 수면발작에 가까운 상태로) 직장에 돌아왔다. 내 생각인지는 모르지만, 아무도 내가 주말 동안 성층권에 들어갔다 왔음을, 아니 감전된 한 마리 쥐로 전락했었다는 사실을 알아보지 못했다. 사람들이 주말에 뭐하고 지냈느냐고 물으면 ‘멀리’ 좀 다녀왔다고 대답하곤 했다. 그게 얼마나 ‘멀리’였는지, 어떤 의미의 ‘멀리’였는지, 그들은 짐작도 못 했으리라. --- p.150~151

1966년 10월, 임상을 시작하자마자 내 상태가 호전되었다. 나는 환자들에게 매료되었고, 환자들에게 마음을 다했다. 임상에서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고 환자를 치료하는 기쁨을 느끼기 시작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큰 기쁨은 수련 중인 레지던트였을 때는 부정당했던 주체성과 책임감을 느끼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러자 마약은 덜 찾고 정신과 상담 때는 더 열린 마음으로 임할 수 있었다.
1967년 2월에 한 번 더 약에 취해 조증 상태가 되었다. 이번의 황홀경은 (역설적으로 그리고 이전의 경험들과는 달리) 창조적인 쪽으로 향해, 내가 해야 할 일과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보여주었다. 편두통에 관한 제대로 된 책을 쓰고 어쩌면 그다음으로 다른 책들도 써보자고. 그것은 그저 너도 할 수 있다는 식의 모호한 감정이 아니라 앞으로 신경학 연구 작업과 저술에 초점을 둔 아주 명확한 지침이었다. 이 깨우침은 약에 취해 있을 때 왔지만 날아가지 않고 그대로 내 안에 남았다. --- p.187

레니 이모는 내가 신경학회 학술대회에서 논문을 발표한다는(학술계로 진입하는 나의 첫 출격) 소식에 뛸 듯이 기뻐했지만 이렇게 덧붙였다. “네가 육중한 몸집을 만들겠다고 또다시 운동하고 있다는 소식은 썩 기쁘지 않구나. 너는 정상일 때 딱 보기 좋은 녀석이란 걸 왜 몰라.”
두 달 뒤 이모에게 우울증 앓았던 이야기를 전했다. 그러자 이모가 편지했다. “사람이면 누구나 우울증을 앓는 때가 있다는 건 나도 알아. 하지만 이젠 앓지 마렴. 너한테 네 편이 얼마나 많은데. 두뇌에 매력에 외모에 유머감각에, 게다가 너를 믿어주는 우리 패거리까지.”
이모가 내 편이 되어준다는 사실은 아주 어릴 때부터 무척 중요한 문제였다. 부모님은 나를 믿어주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나 스스로도 나에 대한 믿음이 약했기 때문이다. --- p.207

환자들에게 엘도파를 투약했을 때 이들의 ‘깨어남’은 신체만의 깨어남이 아니었다. 그들의 지적 능력, 지각 기능 그리고 감정까지 깨어났다. 이처럼 전면적인 깨어남 또는 살아남은 1960년대를 지배했던 신경해부학의 인식과 상충했다. 이 분야에서는 우리 뇌 안에 운동 기능, 지각 기능, 정서 기능을 담당하는 영역이 따로 존재하며 이 영역들이 상호작용하지 않는 것으로 보았다. 내 안의 해부학자는 이 개념에 굴복하여 이렇게 생각했다. “이럴 리가 없어. 이런 ‘깨어남’은 일어날 수 없는 일이야.”
그러나 내가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한 것은 그런 깨어남이었다. --- p.219~220

루리야는 신경심리학neuropsychology의 창시자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학자다. 하지만 그는 사람이 살아 있는 풍부한 병례사들이 자신의 탁월한 신경심리학 논문들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믿었다. 고전적 접근법과 소설적 접근법, 과학과 이야기를 결합시키고자 했던 루리야의 노력은 곧 나의 노력이 되었다. 루리야 스스로 “작은 책”(《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는 단 160쪽으로 이루어진 책이다)이라고 칭하던 저서는 내 인생의 방향과 목표를 바꾸어 《깨어남》만이 아니라 내가 쓴 모든 책의 원형이 되었다. --- p.224

어머니의 여러 환자와 제자로부터 어머니에 대한 선명하고 익살스럽고 자애로운 기억을 직접 듣는 일, 그들의 시선을 통해 의사이고 교사이며 또 이야기꾼인 어머니를 바라보는 일은 무엇보다 감동적이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 또한 의사이자 교사이며 또 이야기꾼이라는 사실이 새삼 떠올랐다. 이 공통점이 지난 세월 어머니와 나를 얼마나 더 가깝게 만들어주었는지, 또 우리 관계에 어떤 깊이를 더했는지. --- p.240

위스턴의 편지를 읽고는 울음이 터졌다. 위대한 시인으로부터 피상적인 인사치레나 공치사 한마디 없이 내가 쓴 책이 “걸작”이라는 평가를 받은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전적으로 ‘문학적인’ 평가일 텐데 《깨어남》에 일말이라도 ‘과학적’ 가치가 있을까? 그렇기를 바랄 따름이었다. --- p.249

살면서 일어난 일들이 주마등처럼 훑고 지나갔다. 대부분이 좋은 기억이었다. 고마웠던 일들, 여름날 오후의 기억들, 사랑받았던 일들, 선물 받았던 일들, 그리고 나도 무언가를 되돌려줄 수 있어서 감사했던 기억들. 또 내가 좋은 책 한 권, 훌륭한 책 한 권을 썼다는 생각도 스쳐지나갔다. 떠오르는 모든 생각이 과거시제로 쓰이고 있었다. “삶의 마지막에 떠오르는 모든 생각이 고마운 생각이게 하라”는 위스턴 휴 오든의 시구가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돌았다. --- p.267

다리 사고는 내게 사람의 몸과 몸을 둘러싼 공간이 뇌 안에 어떻게 구획되어 있는지, 사람의 사지 하나가 손상되었을 때, 특히 그 손상으로 운동 능력과 신체의 자유를 상실하는 경우에 이 중추적 지도가 어떻게 심각하게 교란될 수 있는지를 가르쳐주었다. 사고가 아니었다면 그 사실을 몸으로 배우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번 사고를 통해 또한 내가 연약한 존재, 죽을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몸으로 느꼈다. 나는 어느 모로 보나 연약한 사람이 아니었고 죽음의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해본 사람도 아니었다. 모터사이클 타던 젊은 시절에는 겁이라고는 몰랐다. 오죽하면 친구들이 자기가 불사신인 줄 아는 놈이라고 했을까. 낙상 사고로 죽을 고비를 넘긴 뒤로 내 인생에는 조심과 두려움이 깃들었고, 지금까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내내 함께하고 있다. 무사태평 인생이 유비무환 인생이 되었다고 해야 할까. 이로써 내 청춘이 막을 내리고 중년이 시작되는구나 느꼈다. --- p.270

내 환자들이 ‘깨어남’을 겪던 시기에, 병원 바로 옆에 살면서 때로는 하루에 열두 시간, 열세 시간씩 일하던 시기에 나는 의학의 핵심이란 어떤 것인지 많이 생각했다. 내 환자들은 언제든 나를 찾아올 수 있었고, 거동이 다소 자유로운 몇 사람은 일요일 아침에 찾아와 함께 코코아를 마시기도 했다. 내가 길 건너에 있는 뉴욕식물원으로 산보를 데려가는 날도 있었다. 그들의 약물치료 상황과 흔히 불안정한 신경학적 상태를 점검하고 살피는 것이 내 역할이었지만, 또한 그들이 처한 육체의 제약 속에서나마 가능한 충만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나는 최선을 다했다. 몸이 굳은 채로 오랜 세월 병원 안에 갇혀 살아온 이들에게 삶다운 삶을 살 수 있게 하는 것, 바로 이것이야말로 치료를 맡은 의사로서 해야 할 핵심 역할이라고 느꼈다. (…)
나는 의료적 오만과 기술이 철저하게 인간성 위에 군림하는 현실을 목격했다. 환자들을 몇 시간씩 방치하거나 심지어 육체적?정신적으로 학대하는, 고의적이고 범죄 수준의 태만이 횡행하는 곳들이 있었다. 한 ‘장원’에서는 환자가 고관절 골절상을 입고 끔찍한 고통을 호소하면서 소변이 질펀한 바닥에 나뒹굴고 있는데 직원은 본체만체하고 있었다. 그런 태만은 없지만 아주 기본적인 의료 조치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요양원들도 있었다. 그런 요양원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도 일상적인 생활, 주체성, 존엄성, 자존감, 어느 정도의 자율성이 있는 의미 있는 삶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무시되거나 회피되었다. ‘간호’는 오로지 기술적이고 의료적인 차원의 행위일 뿐이었다. --- p.275~276

동료 신경의들의 무시하는 듯 냉랭한 분위기는 달라지지 않았고 거기에 이제는 일련의 의혹까지 더해진 듯했다. 그동안 나는 ‘대중적’ 글쓰기를 하는 사람으로 자처해왔고 또 그래 보였다. 만일 누군가가 대중적이라면 바로 그 사실 때문에 그 사람은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모두가 그랬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동료들 중에는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가 고전적 이야기 형식 속에 신경학의 세계를 깊이 있고 상세하게 심어넣은 충실하고 훌륭한 책이라고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의학계 전반의 분위기는 여전히 침묵이었다. --- p.317

아버지는 처음에는 신경의 전공을 고려했다가 “더 실질적”이고 “더 재미있을”것이라고 판단하여 일반의를 선택했다. 아버지는 사람들과 그들의 삶을 더 깊이 만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했다.
사람에 대한 이처럼 강렬한 관심은 마지막까지 변함없었다. 아버지의 연세가 아흔이 가까웠을 때 데이비드 형과 나는 은퇴하시라고 간곡히 말씀드렸다. 최소한 왕진이라도 그만하시면 좋겠다고. 아버지는 환자의 가정을 방문하는 것이 의료의 “핵심”이라면서 나머지 활동은 조만간 다 정리하겠다고 답했다. 아흔부터 거의 아흔넷까지 아버지는 한 소형 택시와 계약해서 주간 방문진료 활동을 지속했다. (…)
아버지는 사람을, 환자들의 몸 상태 못지않게 그들 내면의 사정까지 이해하려 했으며, 그렇게 속 깊이 이해하지 않고는 몸도 치료할 수 없다고 믿었다(아닌 게 아니라 사람들은 아버지가 환자들 몸속만이 아니라 냉장고 속까지 훤히 꿰고 계신다는 이야기를 종종 했다).
아버지는 흔히 환자들에게 병을 치료하는 의사일 뿐 아니라 사는 이야기를 들어주는 친구가 되어주었다. 어머니도 그랬지만, 환자들의 인생사 전체에 대한 강렬한 관심이 아버지를 환상적인 이야기꾼으로 만들었다. 아버지의 병원 이야기를 어린 우리 형제들은 넋을 잃고 들었고, 이것이 마커스 형과 데이비드 형 그리고 내가 부모님의 뒤를 이어 의학의 길을 걷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 p.395~396

괌 방문은 인간적 차원에서도 아주 중요하다고 느꼈다. 뇌염후증후군 환자들이 수십 년 동안 병원에 방치되어 살아가고 가족에게 버림받은 경우도 적지 않은 데 반해, 리티코보딕 환자들은 끝가지 가족과 공동체의 일원으로 함께 살아가고 있었다.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몸이나 정신이 병든 이들을 보이지 않는 곳에 보내놓고 없는 척하며 살려는 우리 ‘문명’ 세계의 의학, 우리 사회의 관습은 얼마나 야만적인가? --- p.411

내가 의대생이던 1950년대 중반에는 학과에서 배우는 신경생리학과 신경질환을 겪는 환자들의 현실 사이에 메울 수 없을 간극이 존재하는 듯했다. 신경학은 한 세기 전 브로카 (1824~1880, 프랑스의 내과의?외과의?해부의: 옮긴이)가 정립한 임상해부학적 방법론을 그대로 따르고 있었다. 뇌에서 손상 부위를 찾아 그 영역과 증상의 상관관계를 밝히는 이 방법론에 따르면 가령 언어장애는 브로카언어영역의 손상과 상관관계가 있으며, 마비는 운동영역의 손상과 상관관계가 있는 식이다. 뇌는, 각각 특정 기능을 담당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상호 연결돼 있는 작은 부위들의 집합체 또는 모자이크로 여겨졌다. 뇌가 하나의 총체로서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었다. 내가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를 쓰던 1980년대 초반에는 나의 사고 역시 이 모델을 기반으로 했고, 따라서 신경계는 기능별로 고정불변의 영역이 ‘사전에 할당’되어 있는 것으로 간주했다.
이 모델은 예컨대 실어증을 겪는 사람의 손상 부위를 찾아내는 데는 유용하게 쓰였다. 하지만 이 모델로 학습과 훈련의 효과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평생에 걸쳐 재구성되고 개정되는 기억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적응 과정의 신경 가소성은 어떻게 설명이 되는가? 의식은 또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 풍부함은? 그 일체성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그 흐름은? 그리고 수많은 의식의 장애에 대해서는? 사람 개개인의 개성과 자아는 또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신경과학은 1970년대와 1980년대를 거쳐 비약적으로 발전했지만, 그 발전에는 요컨대 일종의 개념적 위기 또는 개념적 공백이 존재했다. 신경학에서 아동발달, 언어학, 정신분석에 이르기까지 다기한 분야에서 축적해온 방대한 데이터와 관찰 기록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일반이론이 없었던 것이다. --- p.445~446

그날 저녁, 제리와의 저녁식사를 마치고 걸어서 호텔로 돌아가는 길, 나는 황홀경 같은 기쁨에 빠져 있었다. 아르노 강 위에 떠 있는 달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느껴졌다. 몇 십 년 동안 갇혀 있던 인식론적 절망감에서 해방된 기분이었다. 피상적이고 부적절한 컴퓨터 비유의 세계로부터 풍성한 생물학적 의미로 충만한 세계, 뇌와 마음의 실재와 부합하는 세계로. 에덜먼의 가설은 마음과 의식을 최초로 전면적으로 아우른 이론이자, 개체와 자율성을 말하는 최초의 생물학적 이론이었다.
“살아서 이 이론을 들을 수 있다니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1859년 《종의 기원》이 나왔을 때 지금 나처럼 느낀 사람은 또 얼마나 많았겠는가. 자연선택이라는 개념은 놀라운 발상이었지만 생각해보면 또 명백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였다. 마찬가지로 에덜먼이 그날 저녁 이야기한 것을 이해하고 나니 뒤늦게 생각이 들었다. “이 생각을 왜 나는 하지 못한 것인가! 나는 대체 얼마나 멍청한가!” 토머스 헉슬리(1825~1895, 영국의 생물학자. 올더스 헉슬리의 할아버지: 옮긴이)가 《종의 기원》을 읽은 뒤에 했던 이 말이 바로 내 생각이었다. 갑자기 모든 것이 그렇게 쉬워 보일 수가 없었다. --- p.455

뇌졸중이나 여타 부상에서 회복하고 재활하는 활동 또한 이와 비슷하게 이해할 수 있다. 여기에는 어떤 규칙도 없다. 미리 정해진 길도 없다. 모든 환자가 각자 자신의 운동 패턴과 지각 패턴을 발견하거나 만들어내야 하며, 직면한 문제에 대해 스스로 해법을 찾아내야 한다. 여기에 도움을 주는 것이 바로 섬세한 치료사의 역할이다.
넓은 의미에서 볼 때 신경다윈주의는, 우리 스스로 원하건 원하지 않건, 저마다 독자적으로 자기를 계발하며 평생에 걸쳐 각자의 특성에 맞는 길을 개척하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운명임을 암시한다. --- p.459~460

2005년 12월, 내 인생에 갑자기 암이 등장해 극적으로 그 정체를 드러냈다. 시야 한 부분이 갑자기 하얘지더니 반맹이 되어버린 오른쪽 눈. 진단은 흑색종이었다. 십중팔구는 얼마간에 걸쳐 서서히 자라나서 이 시점에 시각이 가장 예리한 망막 중심의 작은 부위인 중심와中心窩 가까이까지 잠식했으리라. 흑색종이 워낙 악명 높은 병인지라 진단이 나오는 순간 나는 사형선고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안구 흑색종은 상대적으로 양성인 편이라고 의사가 바로 이어서 말해주었다. 전이되는 경우도 드물고 완치율도 높다고.
방사선요법에 이어서 레이저 치료까지 수차례 받았다. 일부 부위가 계속 재발했기 때문이다. 18개월 지속된 1차 치료 기간 동안 오른쪽 눈의 시력은 거의 하루 단위로 실명 상태에서 정상 시력 상태를 오락가락하며 요동쳤고, 그럴 때마다 공포에 사로잡혔다가 안도했다가는 다시 공포에 사로잡히는 감정의 극단을 오갔다.
이런 요동치는 증상을 그나마 견딜 수 있었던 것은 망막(과 시력)이 종양과 레이저 광선에 조금씩 갉아 먹히면서 일어난 다양한 시각 현상에 매료된 덕분이었다(그러지 않았다면 일상생활은 더더욱 힘들었을 것이다). 레이저요법과 더불어 일어나는 극심한 위상학적 일그러짐, 색깔의 왜곡 현상, 암점blind spot이 영리하게도 자동적으로 채워지는 현상,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는 색과 형태, 눈을 감은 뒤에도 사물과 장면이 계속 지각되는 현상, 그리고 그중에서도 특히 (흑색종으로 인해) 점점 커져가는 암점 속에 출몰하는 갖가지 환각들 …. 필시 나의 뇌 또한 내 오른쪽 눈 못지않게 분주했으리라.
앞을 볼 수 없다는 것도 두려웠지만 그보다 더 두려운 것은 죽음이었다. 그래서 흑색종하고 일종의 흥정을 했다. 꼭 그래야겠다면 눈을 가져가라. 하지만 나머지는 남겨다오. --- p.465~466

어렸을 때 사람들은 나를 보고 먹물쟁이라고 했는데, 잉크 먹물 쏟고 묻히기는 지금이나 70년 전이나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
열네 살 때부터 쓰기 시작한 일기장이 현재 1,000권에 육박한다. 늘 들고 다니는 작은 수첩형 일기장에서 큰 책만 한 것까지 모양도 크기도 가지각색이다. 나는 꿈속이나 밤중에 생각이 떠오를 경우를 대비해 항상 머리맡에 공책을 놔두고, 수영장이나 호숫가, 해변에도 웬만하면 한 권 놔둔다. 수영은 생각이 굉장히 활발해지는 활동이어서 특히 완성된 문장이나 단락으로 떠오르면 곧바로 나가서 써놔야 하기 때문인데, 이렇게 글을 완성하는 경우가 드문 일은 아니었다. (…)
내가 쓰는 일기는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닐뿐더러 나 스스로 지난 일기를 꺼내 읽는 것 또한 좀처럼 없는 일이다. 오히려 일기는 내가 자신과 단둘이 대화하기 위해 필요한, 자신과의 대화에 필수적인 형식의 글이라고 하는 편이 맞다.
--- p.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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