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태양과 맞짱 뜨던 조선의 왕’ 중에서/ p.12
서서히 해가 사라지기 시작하면 동서남쪽에 벌려놓은 북을 동시에 치기 시작한다. 본격적인 해와의 전쟁을 치르는 것이다.
“야, 네가 해야? 나 조선 왕이야! 이렇게 가는 거야. 딱 이렇게 말이야. 북을 막 치는 거야. 북을 붙잡고 계속 치면 해가 다시 돌아와. 그게 해야!”
왕이 근정전 앞뜰에서 소복을 입고 일식과 전쟁을 치를 때 각 관청의 모든 관리들도 소복을 입은 채 해를 향해 북을 치면서 왕을 응원하기 시작한다.
“V.I.C.T.O.R.Y. 빅토리, 빅토리, 야! 우리 전하 이겨라, 빅토리!”
#2. ‘이혼에서 로또까지’ 중에서/ p.48~50
소박을 당하거나 이혼을 한 여성들은 인생의 마지막 운을 걸고 성황당 앞으로 향했다. 그렇게 새벽녘부터 성황당 앞에서 기다리다가 그녀를 처음 발견하는 남자를 따라가는 것이다. 이것을 ‘습첩(拾妾)’이라고 했다. 이 말은 첩을 줍는다는 뜻으로, 여자를 발견한 남자에게는 반드시 그녀를 데려가야 하는 의무가 있었다. (중략) 이혼한 여성에게 습첩은 때로 인생역전, 일발필살의 로또와 같은 마지막 기회가 되기도 했다. (중략)
“니 요즘 갱상도에 암행어사 떳다는 소문 몬 들었나?”
“들었습니더…. 앗! 행님! 암행어사를 노리는 겁니꺼?”
“인생 두 번 있나? 이 한 번에 질러버리는 기다.”
규진 엄마는 어느 날 드디어 허름한 차림의 양반 한명이 고갯길을 넘어오는 모습을 발견했다.
“거기 가는 양반 스톱! 정지하입시더!”
#3. ‘양반의 상투머리에는 속알머리 없다?’ 중에서/ p.111
조선시대 사람들은 아무리 더워도 상투머리를 고집했다. 그런데 실제로는 편법을 동원해서 상투를 틀곤 했다.
“어이 박 생원, 너 <패션 조선 21> 이번 호 안 봤냐?”
“<패션 조선 21>이라고? 넌 패션 잡지도 보냐?”
“하, 이 자식 봐라. 사랑받는 현대 선비족이 되기 위해서는 패션은 기본이야. 이번 여름 특집호에 무더위를 이기는 ‘배코 친 상투머리’가 나왔잖아!”
“배코를 친다고? 배코가 뭐야? 배에 코가 달렸어?”
“이놈이 패션 트렌드에 대해선 아예 백지구먼? 올 여름 최고 유행인 지단 스타일 머리를 아직도 모르고 있었냐? 지단도 프랑스 국대에 복귀한 마당에, 지단 스타일 배코 상투를 모르면 그게 말이 되냐?”
#4. ‘조선시대 공무원의 생존비책’ 중에서/ p.117
도승지 최원택과 과거 동기생인 좌부승지 박원국은 광흥창에서 월급을 받으려고 줄을 서 있었다.
“도승지 최원택 영감~. 월급 명세서 받으세요!”
“그려, 그려. 월급 명세서나 한번 받아보자. 어디 보자, 개념 상실한 국민연금에 어처구니를 날려버린 의료보험, 혹시 모르는 고용보험 다 떼고…. 젠장, 정3품은 쌀 20두에 콩 17두구나….”
“에… 아닌데요, 도승지 영감.”
“뭔 소리야? 엄연히 국법으로 정3품 현직 관리에게는 쌀 20두에 콩 17두를 녹봉으로 제공하게 되어 있는데!”
“저, 그게 말입니다. 이번 달에 중국 사신이 왔잖습니까….”
“그래서?”
#5. ‘천수(天壽)를 누린 영조의 웰빙 라이프’ 중에서/ p.155
영조는 여색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으며, 상당히 검소한 생활을 했다.
“전하, 가을도 다가오는데 이번에 상의원(尙衣院: 임금의 옷을 만드는 곳)에서 준비한 가을 시즌 신상품으로다가 옷 한 벌 쫙 뽑으심이….”
“너 진짜 개념을 팔아먹어 버렸구나. 내가 누누이 강조했지? 아나바다 운동을 몰라? 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고! 이놈이 물자 귀한 줄을 몰라요.”
“전하! 원래 임금의 복색은 한 번 입다가 더러워지면 빨래를 하지 않고 그냥 버리는 것이옵니다.”
“야, 임금 옷이 무슨 태극기냐? 입다 버리게?”
“아니, 거시기, 전통이 그러한지라… (중략)”
“됐거든? 나는 그냥 빨아서 입을 거거든? 내가 옷을 해입는다고 나라 경제 살아나면, 앙드레 김 불러다가 재경부 장관 시키는 게 더 빠르겠다, 이 바보 같은 놈아!”
#6. ‘조선 코끼리의 기구한 운명’ 중에서/ p.174
이렇게 해서 인도네시아에서 일본을 거쳐 조선으로 넘어온 코끼리는 전라도 순천 앞바다의 장도로 귀양을 가게 되었는데, 과연 이 코끼리의 시련은 어디서 끝이 날까? (중략)
“영감, 코길이가 계속 단식 중인뎁쇼? 먹을 걸 줘도 잘 먹지 못하고, 저것이 사람만 보면 동정심을 유발하는 듯한 포즈로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요.”
“흠, 하긴 좀 억울했을 것이다. 고향땅 떠나 낯선 조선까지 흘러온 것도 서러운데, 살인죄까지 뒤집어쓴 채로 귀양을 왔으니… 쯧쯧. (중략) 흠… 알겠다. 내가 조정에 장계를 한번 올려보지.”
(중략)
“그래, 기분이다. 코길이를 사면해 육지에 나와 살도록 해줘라.”
#7. ‘조선시대 비데 개발 프로젝트’ 중에서/ p.194
영의정은 ‘조선 백성들의 쾌적한 뒤처리’를 위해서 대책본부를 조직해서 곧바로 연구에 들어갔다.
“음… 아무래도 종이는 단가가 너무 비싸.”
“그래도 마찰력 대비 효과 면에서는 종이만 한 게 없지.”
“요즘 민간에서 자주 쓰는 뒤처리 용구는 뭐가 있나?”
“요즘 민간인들은 주로 호박잎을 쓴다고 하더군. 호박잎만 한 게 또 없지. 그 탄성에, 튼튼한 인장력 하며…. 결정적으로 좀 까칠까칠해서 보드라운 아기 엉덩이에 쓰기엔 무리가 따르지만 말이야. 어쨌든 요즘 시대의 대세는 호박잎이야.”
조선시대 민간인들에게 널리 사랑받았던 휴지인 호박잎은 넓은 면적에 트는한 인장력, 어디서든 쉽게 구할 수 있는 용이성 때문에 가히 시대의 대세라 할 수 있었다.
“문제는 호박잎이란 게 사계절용이 아니란 거야. …”
#8. ‘조선의 다방은 엘리트 관료를 양성하던 권력기관?’ 중에서/ p.203
태조는 조선을 개국하자마자 신하들에게 다방이란 관청을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다방은 고려 왕조가 남긴 문화적 유산이었다.
“왕이 되어서 해보고 싶은 거 한번 못 해보면 억울하잖아. 아니꼬우면 너희가 왕이 되든지. 난 다방을 만들어서 차나 마실 테니까.”
(중략) 태조의 총애를 받게 되자 다방은 신진관료들이 가장 선호하는 부서가 되었다.
“뭐 다른 거 있겠어? 일단 공무원을 새로 뽑으면 제일 먼저 다방에 배치해. 거기서 차도 만들고 꽃도 가꾸면서 인격수양을 좀 시키고, 그 다음에 실무에 투입시키자고. 일단 사람이 되어야지, 안 그래?”
태조의 이런 바람에 따라 다방은 어느새 신진관료들의 통과 코스가 되었고, 태조 또한 개인적 취향에 의해서인지 다방 출신 중에서 지방 수령을 뽑았다.
#9. ‘연신내에 서린 화냥년의 한’ 중에서/ p.203
병자호란 때 끌려간 조선인의 숫자가 약 60만 명. 이들 가운데 50만 명이 여성이었다는 사실만 봐도 당시 조선이 겪었을 혼란을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이때의 ‘환향녀’라는 단어가 ‘화냥년’으로 바뀌면서 성적으로 문란한 여자를 빗대는 욕으로 발전한 걸 보면 당시 환향녀에 대한 인식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힘없는 나라에 태어난 것도 서러운데, 쓰레기 같은 위정자의 통치기에 살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모진 고초에 시달려야 했던 당시의 여성들…. 역시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는 여성과 어린이들일까? ‘화냥년’이란 욕을 아무렇지 않게 쓰고 있는 지금이지만, 그 이면에는 이 나라 남성들의 무지몽매와 유약함, 나라 잃은 부끄러움이 묻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함부로 화냥년이라는 욕을 쓰지 않기를 빌 뿐이다.
#10. ‘조선시대에 중으로 산다는 것’ 중에서/ p.238
“불교… 그게 어디 사람이 믿을 만한 종교냐? 사람이 모여서 나라를 만들고, 자식을 낳아 나라를 영속시켜야 하는 게 인간의 책무인데, 불교 좀 봐봐, 금욕한답시고 여자를 멀리하니까 2세를 만들지 못하니, 부국강병은 고사하고 나라의 미래 자체를 근심해야 하잖아. 이렇게 위험한 종교가 이디 있냐? 가뜩이나 출산율 저하로 머리 아픈데 말이야. 그리고 걔들이 왕으로 모시는 석가모니를 봐. 걔가 뭐 생산한 게 있어? 물 한 모금, 쌀 한 톨 먹어도 다 구걸한 거 아냐? 이런 것들이 계속 성행하다간 나라 결딴나는 거 금방이야.”
조선이란 나라의 기본개념을 정립한 정도전이 쓴 <불씨잡변(佛氏雜辯)>이란 책에 나와 있는 불교의 폐단을 대략 간추린 것이다.
본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