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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시 램의 선택

제시 램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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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6년 01월 28일
쪽수, 무게, 크기 336쪽 | 512g | 140*210*18mm
ISBN13 9788934973188
ISBN10 8934973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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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관련자료 보이기/감추기

저자 : 제인 로저스
영국 런던에서 태어나 케임브리지 뉴홀 칼리지와 레스터 대학원에서 공부했다. TV와 라디오 작가로 활동하며 여덟 편의 소설을 썼다. 장르와 분야를 불문하고 강렬한 내적 드라마가 두드러지는 제인 로저스의 작품은, 발표될 때마다 찬사와 각광을 한 몸에 받았다. 서머싯몸 문학상, 라이터스길드어워즈 선정 최고의 소설, 사뮈엘베케트어워즈 등 다수의 문학상을 받았고, 1994년에는 영국왕립문학회 회원으로 선출되며 그간의 문학적 공로와 성취를 인정받았다.
《제시 램의 선택》은 제인 로저스가 내놓은 여덟 번째 소설로, 생화학 테러를 목적으로 만들어낸 바이러스가 ‘모체사망증후군MDS’이라는 병을 퍼뜨린 세상을 배경으로 한다. 병의 위력 앞에 인류는 무기력하게 멸망에 다가설 뿐이다. 머잖아 인류가 멸망한다면 꼭 이런 방식일 것만 같은 생생함이 두려움을 선사하는 한편, 절망적 세상 앞에 굳건히 마주 선 주인공 제시 램의 담담한 독백이 마음을 울린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부모와의 갈등, 친구로 인한 슬픔, 첫사랑의 아픔, 주변인의 죽음으로 인한 상실감 등 십대 소녀의 예민한 심리를 빼어나게 그려 성장소설의 매력을 발하는 작품인 동시에, 독특한 세계관으로 SF소설의 장르적 완성도까지 갖췄다는 평가를 받았다. 영국의 한 평론가는 “쉽지 않지만 끝까지 읽게 하고, 다 읽고 나면 결코 쉽게 잊히지 않는 작품”이라며 찬사를 보냈다. 2011년 맨부커상 최종 후보에 올랐고, 이듬해에는 종말과 소녀라는 소재의 아름다운 결합이 심사위원 전원을 사로잡아 SF소설 최고의 영예인 아서클라크상을 수상했다.
제인 로저스는 오스트레일리아 애들레이드 대학과 프랑스 소르본느4대학을 거쳐, 현재는 영국 셰필드할람 대학에서 글쓰기를 가르치며 후진 양성에 힘쓰고 있다.

역자 : 이진
이화여자대학교에서 문헌정보학을 전공하고 광고대행사에서 근무하다가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사립학교 아이들》《열세번째 이야기》《잃어버린 것들의 책》《658, 우연히》《갈림길》《비행공포》《페러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 등 80여 권의 책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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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의미가 없어질 수많은 것을 생각해보았다. 대학. 일. 결혼. 건물. 농사. 도로 보수. “죽을 때까지 재밌게 사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없어.” 샐이 말했다. “뭘 하건 상관없어. 어차피 아무도 신경 안 쓰니까.” 마지막 시체를 화장하거나 묻을 사람이 없으면 어쩌나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아마 짐승이 파먹겠지. “세상이 참 평화롭겠다. 차도, 비행기도, 공장도 없고 공해도 없겠지. 식물이 서서히 도시를 장악하고.” 우리가 살던 집이 서서히 무너져 사라지는 모습을 상상해봤다. 문이 날아가고 지붕이 내려앉고 새와 동물이 보금자리를 만들고. “다른 종족이 번창할 거야.”
--- p.15

정부에서 성명을 발표했다. TV와 신문은 일주일 내내 그 얘기였다. MDS가 전세계에 퍼졌고 모두가 이 병원균을 몸에 지니고 있는 보균자임을 공식적으로 선포했다. 언론에서는 MDS를 에이즈와 비교하면서 대부분의 사람은 아프지 않고 수명을 다하게 될 거라고 했다. MDS를 치명적인 병으로 만드는 것은 임신이라고 했다. 언론에서는 전세계 모든 국가의 정부가 힘을 합쳐 연구하고 있다면서 사람들을 안심시키려 했다. 그 소식을 듣고 아빠와 엄마를 바라본 기억이 난다. 두 분도 MDS 보균자다. 나도 마찬가지다. 우리 모두 MDS 바이러스를 지니고 있다. 마치 천천히 효력이 드러나는 독약을 삼킨 것 같은 기분이었다.
--- p.24

돌이켜보면 황당하기 짝이 없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때는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 그 순간 나는 똑바로 누워 거의 숨도 쉬지 못한 채 내 앞에 펼쳐진 드넓은 바다로 떠내려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올바른 일을 하고자 할 때에는 복잡한 논쟁도 타협도 필요치 않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 남에게 의존하지 않고 오직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일, 아빠가 자랑스러워 할 일, 베개와 이불을 침대에서 끌어내리고 바닥에 누워 몸을 꽁꽁 감싼 채 너도밤나무를 계속 바라보면서 나의 자유를 마음껏 펼쳐보았다. 행동할 자유. 내가 결정한 일을 행할 자유.
--- p.145-146

시위대는 점점 더 과격해졌고 많은 사람이 체포되었다. 하지만 어쨌든, 아빠가 나를 보러 왔다. 골딩 박사에게 아빠를 만나는 게 불편하다고 했더니, 아빠가 경비원을 대동하고 왔고 경비원이 문밖에서 지키고 있었다. 아빠가 나를 끌어안은 뒤 창가 의자에 앉았다. 오른손에는 붕대를 감고 있었고 붕대 밑으로 손가락이 나와 있었다. 나는 침대에 앉았고 잠시 침묵이 흘렀다. 할 말을 생각하려 애썼지만, 아빠를 보니 울고 있었다. 나는 아빠에게 울지 말라고 했다. 아빠는 일어서서 내게 등을 돌리고 눈을 문지르면서 창밖을 내다보았다. 나는 아빠 곁으로 다가가서 아빠의 팔을 내 어깨에 두르게 했다. 그리고 우리는 함께 창밖을 바라보았다. 물기를 머금은 봄햇살과 공원 나무에 핀 꽃봉오리를.
--- p.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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