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5월 1일 유럽연합이 리투아니아와 벨로루시를 회원국으로 받아들이면서, 유럽 지도에 이상한 섬 하나가 생겨났다. 바로 러시아 영토인 칼리닌그라드다. 유럽연합과 러시아는 이 생각지도 않은 결과에 대해서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칼리닌그라드는 리투아니아와 폴란드 사이 발트 해 연안에 자리 잡은 러시아 칼리닌그라드 주의 주도다. …1991년 소련이 무너지기 전까지 잘 알려지지 않은 땅이었던 칼리닌그라드는 이후 두 가지 문제에 직면했다. 하나는 바깥을 향해 문이 열린 것이고, 다른 하나는 러시아 본토와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가장 가까운 러시아 도시인 프스코프까지가 600킬로미터이고, 모스크바까지는 1,200킬로미터가 넘는다. 하지만 코펜하겐이나 베를린까지는 600킬로미터도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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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12월 30일 미국과 영국은 디에고가르시아를 50년 동안 미국에 임대하는 내용의 협정을 체결했다. 20년마다 갱신이 가능한 이 협정으로 미국은 디에고가르시아에 통신기지를 건설할 수 있게 되었고, 반대로 영국은 북극의 로켓 기지를 싼값에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디에고가르시아가 특히 주목을 받은 이유는 냉전체제 때문이었다. …이때부터 디에고가르시아는 초현대식 해·공군 기지로 바뀌었고, 항공모함의 기착지가 되었다. …문맹에 가까운 원주민들은 모리셔스의 수도인 포트루이스 주위의 빈민굴에 모여 살고 있다. …8,500명에 이르는 차고스 제도 원주민들은 …영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2000년 소송에서 이겼다. 영국 대법원은 모리셔스에 사는 차고스 원주민들도 영국 국적자이고, 그들을 내쫓을 수 없다고 선언했으며, 경제적 지원과 함께 디에고가르시아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6년, 임대계약이 끝나면 디에고가르시아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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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은 1970년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가입했다. …하지만 이것 말고도 이란에는 신고하지 않은 핵시설이 있다. …결국은 핵무기를 만들겠다는 의도로 볼 수밖에 없다. 2006년 1월 이란 정부는 국제원자력기구와 유럽연합, 미국이 요구하는 중수 생산공장의 가동 중단을 거부했다. 이란의 입장에서는 국가 안보를 위해서라도 플루토늄 원자폭탄을 보유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110쪽 지도에서 보듯이 이란은 중동 지역의 미군 기지에 의해 완전히 포위된 상태다. 이란을 둘러싼 지역의 정세는 어느 때보다도 불안하다. 한두 나라만 예외적으로 핵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과 인도, 파키스탄이 핵을 가지고 있고, 미국은 ‘선제공격’을 주장하고 있는 터에, 이란만 재래식 무기에 의지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 p.111
러시아-체첸 분쟁을 가만히 뜯어보면 놀라운 점이 한둘이 아니다. 군사력 차이도 그렇고, 민간인에 대한 엄청난 폭력도 그렇고, 서방세계의 침묵도 그렇고, 러시아 정부와 군대의 고집도 그렇고, 체첸 군의 저항도 그렇다. 도대체 이 이상한 전쟁의 원인은 무엇일까? …이러한 극심한 폭력행위를 자행하는 러시아의 속내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러시아 입장에서 보면 체첸은 전략적 요충지가 아니다. 석유가 나오는 땅도 아니고, 체첸이 독립한다고 해서 다른 나라들이 들썩일 이유도 예전보다 적다. …요컨대 체첸 국민을 움직이는 것은 이슬람교가 아니라 국가 독립에 대한 의지다. 그런데도 왜 체첸을 몰살하려는 것일까? …전쟁으로 이득을 챙기는 사람들도 있다. 군인들이 그렇고, 기업가가 그렇고, 러시아와 체첸의 마피아가 그렇다. 푸틴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체첸 사태와 같은 비상 사태야말로 권력을 강화하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 …체첸인들에게는 더 이상 희망이 없다. 몇몇 사람들은 분쟁을 통해서 이득을 보고, 점점 더 힘이 세진 러시아의 국수주의자들은 아주 작은 공화국 체첸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그리고 다른 자유세계의 국가들은 다른 문제에 골몰하느라 체첸을 돌아볼 이유가 없다.
--- p.180-185
선진국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미국의 경우, 서부 지역의 절반가량이 토사가 유실된 상태다. 날씨가 건조한 탓도 있지만, 지난 1세기 동안 인구 증가와 경제 발전에 따른 결과다. 결국 서아프리카와 같은 현상이 벌어졌다. 가축이 증가하고 개간사업이 진행되면서 토사가 쓸려나갔다. 호아무지가 된 셈이다. 다만 서아프리카에서는 사막화의 영향으로 사람들이 죽고, 대규모 이주자가 생겼지만, 미국은 수백만 달러를 쏟아붓고 있다는 것이 다른 점이다. 그 결과 텍사스와 애리조나에서는 사막화가 진행된다고 해서 기근이 발생하지는 않는다. …문제는 사람이다. 자연은 스스로 적응하지만 사람은 그렇지 못한다. 인구는 여전히 늘어나고, 그 많은 인구가 끊임없이 땅을 혹사하고 있다. 게다가 지구 온난화라는 암초가 있다. 사막화를 늦추는 노력에 찬물을 끼얹으면서 지구는 점점 더 더워지고 있다.
--- p.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