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깨와 등의 쑤시는 아픔이 내 영혼에까지 스며들었다. 이번에도 나는 심기가 뒤틀리고 뾰로통해져 투덜거렸다. 그렇게 고생한지 사흘때 되던 날, 아침에 일어나니 배낭을 다시 멜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옷을 입고 있는데, 우리를 짜증나게 하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과 친구가 되어 거기서 배워야 한다는 지혜가 기억났다. 나는 내 배낭에 '소피시타(Sophicitta)'라는 이름을 붙여 주기로 했다. 이는 그리스어와 스페인어가 합성된 말로 '작은 지혜'라는 뜻이다. 그날로 내 배낭 문제는 사실상 종결되었다. 끈과 내용물을 다시 한번 조정했을 뿐인데 그것으로 문제가 해결되었다.
그 후로도 내 배낭이 너무 무겁게 느껴진 날은 많았지만 전처럼 그렇게 균형을 잃고 연신 발버둥친 일은 한 번도 없었다. 배낭에 이름을 붙여 줌으로써 나는 배낭과의 대결 구도를 화해 구도로 바꾸었다. 배낭과 친구가 되자 배낭은 더 이상 나의 적이 아니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나는 좀더 참으며 에너지를 긍정적으로 쓸 수 있었고, 그러자 조정이 필요한 부분이 환히 보였다. 배낭에 이름을 붙여주던 날 아침, 그 동안 쭉 내 운동화를 두었던 위치가 잘못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간 위아래로 포개놓았던 운동화를 양쪽 옆에 하나씩 놓기로 했다. 그렇게조정하고 나니 균형감이 훨씬 나아졌다. 내 몸을 불편하게 했던 것은 배낭 자체가 아니라 내가 짐을 꾸린 방식이었던 것이다.
--- pp. 108~109
"우리가 화살표를 놓쳤나봐요"라고 말했다. 하루종일 표지판이 유난히 크고 선명했던 터라 톰은 내 말에 의문을 제기했다. 우리는 계속 걸었다. 15분쯤 지나서는 톰도우리가 길을 놓친 것이 분명하다고 수긍했다. 톰은 오른쪽의 작은 숲으로 자진해서 들어가서 도시로 난 오솔길을 찾아보았으나 찾지 못하고 그냥 왔다. 우리는 돌아가야 할지 계속 가야 할지를 몰랐다. 길이 휘어져 결국에는 도시로 닿아 있을 것 같아서 우리는 계속 걷기로 했다. 그때 차 한대가 지나갔는데 운전자는 2~3 킬로미터만 더 가면 정말 포르토마린이 나온다며 우리를 안심시켜 주었다.
톰은 우리가 어디서 화살표를 놓쳤는지 계속 알아내려고 했다. 포르토마린에 다가도록 그는 계속 그 궁리였다. 나는 우리가 화살표를 어떻게 놓쳤는지는 상관없었다. 내 생각은 미래에 가 있었다. 나는 대피소에가서 쉬어야겠다는 말만 했다. 우리 둘 다 현재의 순간을 떠나 미래에 치중했으므로 내면의 평안과 조화는 떠나 버렸다.
그러나 교훈은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그날 대피소에 도착한 우리는 다른 데서도 몇번 마주친 적이 있는 어느 순례자를 만났다. 그녀는 가만가만히 불쑥 말하는 버릇이 있었는데 그 말투에 어떤 초연함 같은 것이 느껴졌다. 우리는 그날 일에 대해 담소를 나눴다. 그러다 톰은 화살표를 놓친 일이 아직도 분했던지 다시 그 이야기로 돌아갔다. 그는 우리가 어디서 어떻게 어쩌다가 그것을 놓쳤느냐며 "어디서 길을 잘못 들었는지 그것만이라도 알았으면 좋겠소"라고 했다. 그러자 그 여자가 딱 잘라 말했다. "그런다고 달라지는 건 없잖아요. 당신은 이렇게 있어야 할 곳에 있잖아요."
--- pp.99~101
침엽수의 신록과 숲의 촉촉한 향기가 내 오감을 가득 채우던 첫 날, 나는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피레네 산맥을 내려가는 길에 내 영혼은 춤을 추었다. 셀 수 없이 많은 꽃 무더기가 길가에 늘어서 있고 초원을 점점이 수놓고 있었던 것이다. 죽어서 잠들어 있을 줄 알았던 색채들이 생생하고 풍요롭게 물이 올라 있었다. 그 아름다움이 나를 앞으로 떠밀었다. (...)
갈리시아의 신록이 푸르른 산과 참나무 고목의 아름다움을 제외하고는, 끝없는 포도밭보다 나에게 기쁨과 힘을 가져다준 것은 없다. 포도원은 몇 날 며칠이고 양편으로 우리와 맞닿아 있었다. 때로 나는 걸음을 멈추고, 풍성한 열매가 달린 건강하고 푸른 가지를 즐거운 마음으로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내가 그럴 때마다 톰은 "당신한테 읽어 줄 것이 있는데 지금은 때가 아닌 것 같소"라고 말했다. 그는 계속 그 말로 나를 놀려댔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는 벤토사 근처에서 그야말로 천하의 절경이라 할 만한 포도원을 만났다. "잠깐!" 톰이 소리쳤다."바로 이거요! 여태까지 나는 최고로 아름다운 곳이 나오기를 기다렸소. 집에서부터가져온 것을 거기서 읽어주려고 말이오."
그러더니 그는 주머니에서 조그만 종이쪽지 하나를 어렵사리 꺼냈다. 우리 두 사람은 잘 익은 자주색 포도송이가 온통 보석처럼 반짝이는 산비탈을 마주보며, 거기 따가운 햇살 아래 나란히 서 있었다. 톰이 내게 시를 읽어 주었다.
포도나무 뒤에는 포도주 빚는 이가 있고
그 뒤에는 세월을 이어 온 그의 기술이 있고
그 모든 것 뒤에는 포도나무를 키우는
햇빛과 비 그리고 창조주의 뜻이 있다네.
저자가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톰이 그것을 읽어주었을 때 내마음은 녹아내려 포도, 파란 하늘, 흙, 햇빛, 우리의 우정, 그리고 창조주와 하나가 되었다. 톰의 짤막한 시는 성과 연결되는 중심 근원이 미(美)임을 잘 일깨워 주었다.
--- 아름다움을 끌어안으라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