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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근대사상과 불교
김영진
그린비 2007.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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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중국사상사 약론
[도서] 근대 중국사상사 약론
천샤오밍,단스롄,장융이 저/김영진 역 그린비
10% 24,300
근대 중국사상사 약론

불교 사상 시리즈

책소개

목차

머리말

1부 근대 불교의 형성과 유식학
1_기원의 곡절, 양런산
주변을 배회하다│닥친 인연이 불교가 되다│각경처 설립과 앎의 유통│불교 문헌의 귀향│불교 지식인의 출현
2_지나내학원과 유식학 천하, 어우양징우
양명학을 딛고 불교에 이르다│문헌 비평 전통의 성립│유식학의 등장│지나내학원과 근대사상가│슬픔이 학술을 밀고 가다
3_순수 불교를 향하여, 뤼청
미술학도의 불교 귀의│현장의 발견│인도와 티베트 불교의 연구│슝스리와 다투다
4_기신론 비판의 선봉, 왕언양
청년의 방황│어우양징우와 만남│『대승기신론』 비판│쓰촨 불교의 전통
5_ 유식학 연구의 완성자, 한칭징
대승불교의 두 기둥│베이징의 거사 불교│『유가사지론』 해부│유가보살

2부 세간과 출세간의 간극
6_ 무술년의 붉은 영혼, 탄쓰퉁
강상윤리의 액난│타클라마칸의 귀웅│충결망라의 정신│근대 철학의 붉은 신호탄│불꽃이 지다
7_ 혁명과 학술의 교차, 장타이옌
청대 학술의 적통│옥방 안의 자유자재│혁명 종교│반봉건과 반근대│차이와 평등
8_ 마키아벨리의 견성, 양두
청말의 마키아벨리│영웅과 술수│도망자의 견성│공산당 입당
9_ 삭발염의한 예술혼, 리수퉁
예술 귀재│아름다움의 훈련│미(美)의 발견│남산 율종의 부활
10_비승비속의 고독, 쑤만수
운명의 탄생│출가의 불순함│산스크리트 불전의 소개│그리움에 매달리지 말지어다

3부 불교와 유교
11_ 성현인가 보살인가, 캉유웨이
전통 학술의 동요│시차오 산의 생명 체험│전투의 시작│대동세계의 상상
12_ 은자의 함성, 마이푸
불교와 유교의 거리│저장의 천재 소년│리수퉁과 인연│격물치지와 불교 수행│복성서원과 전통 교육
13_ 순수한 영혼의 용기, 량수밍
소년의 사색│문제와 방법│인생고와 생의 약동│향촌 건설과 유교 공동체
14_ 현대 신유학의 완성자, 슝스리
소년 혁명가│량수밍과 슝스리의 만남│유식학에 대한 저항│『신유식론』과 『주역』

4부 불교 계몽과 ‘학’의 탄생
15_ 계몽의 선구, 량치차오
계몽 지식인의 출현│계몽의 시대│불교와 민족주의│최초의 불교학│종자설과 소설
16_불교 혁신과 인간 불교, 타이쉬
혁명승의 탄생│불교 혁명의 깃발│새로운 승려의 요구│인간 불교 운동
17 _근대적 학승의 탄생, 인순
종교 편력│출가와 배움│불법으로 불법을 연구하다│학승의 임무
18_방법론의 등장, 탕융퉁
어빙 바빗과 중국 지식인│『한위양진남북조불교사』의 출간│공산 중국과 학술가의 곤혹
19_ 고증학 전통과 불교사 연구, 천위안
독서의 기술│사고전서(四庫全書)와 대결│불교사 연구의 한 전형│청대 고증학과 근대 학술

중국 근대 불교를 이해하기 위해 더 읽을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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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1

1970년 경남 삼천포 출생. 동국대학교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1998년 동 대학원에서 중국 위진(魏晉) 시대 불교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2005년 『제물론석』 저자 장타이옌[章太炎]의 불교사상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화여대 철학과 박사후과정, 동국대 BK21연구단 박사후연구원, 인하대 한국학연구소 HK연구교수, 동국대 불교학술원 HK연구교수, 캐나다 UBC 아시아학과 방문학자를 거쳤고 현재 동국대학교 WISE캠퍼스 불교학부 교수이다. 그간 『중국 근대사상과 불교』, 『공(空)이란 무엇인가』, 『근대중국의 고승』, 『불교와 무(無)의 근대』, 『중국 근대불교학의
1970년 경남 삼천포 출생. 동국대학교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1998년 동 대학원에서 중국 위진(魏晉) 시대 불교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2005년 『제물론석』 저자 장타이옌[章太炎]의 불교사상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화여대 철학과 박사후과정, 동국대 BK21연구단 박사후연구원, 인하대 한국학연구소 HK연구교수, 동국대 불교학술원 HK연구교수, 캐나다 UBC 아시아학과 방문학자를 거쳤고 현재 동국대학교 WISE캠퍼스 불교학부 교수이다.

그간 『중국 근대사상과 불교』, 『공(空)이란 무엇인가』, 『근대중국의 고승』, 『불교와 무(無)의 근대』, 『중국 근대불교학의 탄생』을 썼고, 이들 5권의 저서가 문광부와 학술원 추천 우수도서에 선정됐다. 이외 『대당내전록(大唐內典錄)』(공역), 『근대중국사상사약론(近代中國思想史略論)』 등을 번역했다. 제3회 대원학술상(저서부문)과 제29회 불이상(학술부문)을 받았다.

박사학위 취득 이후 주로 사상사와 학술사 맥락에서 중국 근대불교를 연구했다. 상기 소개한 책은 그 과정의 성과다. 십여 년 전부터 한국 근대불교학의 성립과 불교 철학의 시도라는 주제로 연구를 확장했다. 최남선, 김법린, 백성욱 등 몇몇 불교계 혹은 불교 관련 인물의 사상과 학술을 분석했고, 식민지 시기 불교계의 서양 철학 및 서양 사조 수입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근대 간행 불교 잡지를 천천히 읽고 있다. 향후 수년간 이 분야에 집중할 요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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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07년 05월 21일
쪽수, 무게, 크기
343쪽 | 512g | 150*223*30mm
ISBN13
9788976823007

출판사 리뷰

불교, 현실 개혁에 앞장서다
중국 근대 불교는 현실을 개혁하고자 한 여러 사상가, 특히 무술변법을 주장한 이들에게 중요한 원천이었다. 흔히 변법자강운동이라고도 하는 무술변법은 1898년 캉유웨이, 량치차오, 탄쓰퉁 등이 근대적인 개혁을 부르짖으며 광서제(光緖帝)의 친정을 기도했다가 100일 만에 서태후의 쿠데타로 막을 내린 운동이다.
탄쓰퉁(1865~1898)의 경우, 양런산에게서 『화엄경』을 배운 이후 세계에 대해 눈을 떠 사회개혁에 앞장섰다. 근대 시기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그의 『인학』(仁學) 역시 중생 구제를 위해서는 지옥까지 뛰어들겠다는 대승불교의 보살정신으로 저술한 것이다. 문자학에 능통했던 그는 인(仁=二+人), 원(元=二+?), 무(无, 허신에 따르면 元은 无에 통한다) 세 개념이 통하는 것이라며, 그 실천성을 통해 봉건의 잔재들을 청산할 것을 주장했다. 즉, 개인의 이익, 현실의 학문, 강상윤리와 종교, 심지어 불교까지 모든 것을 타파하여 인간에게 속박의 그물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것은 마치 붓다의 “강을 건너면 타고 온 뗏목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뗏목을 버려야 한다는 대답처럼, 불교를 수단으로 삼아 중생을 묶고 있는 속박들을 풀고자 한 혁명적 움직임이었다.
아나키스트이자 혁명 운동가로 알려진 장타이옌(1868~1936) 역시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과 『섭대승론』(攝大乘論) 등 유식학 문헌을 공부한 후 그의 혁명 운동의 주요 자원으로 삼았다. 유식학의 논리와 철학성을 통해 근대적인 인간상을 답습하지 않고 좀더 근원적인 인간의 자유를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당시 유행하던 사회진화론에 강하게 반발하여, “저들은 진화가 진화일 수 있는 이유가 쌍방향으로 진화하기 때문임을 알지 못하고 지식 한쪽만 진화한다고 말한다. 도덕으로 말하면 선도 진화하고 악도 진화한다. 생활을 가지고 이야기하면 쾌락도 진화하지만 고통도 진화한다”(125쪽)고 말했다. 그는 언어와 인식의 속박에서 벗어나 개개인의 차이가 한껏 드러나는 방식으로서의 평등, 좀더 근원적인 자유와 평등을 말함으로써, 전근대적인 가치에서 벗어나면서도 서양에서 유입된 근대적 자유와 평등에도 맹신하지 않았다.
이 외에 입헌군주제를 주장하고 훗날 공산당 비밀 당원이 된 양두(楊度, 1875~1931)도 불교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입헌군주제에서 공산당으로의 회심은 불교를 만난 후 누구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바로 서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현실 속으로 투신한 결과이다. 이와 같이 불교의 입세주의는 중국 근대의 혁명적 열정에 큰 힘을 불러일으켰다.

중국 근대의 사상적 기반을 형성하다
량치차오에 따르면, 청나라 말기 지식인들은 모두 불학과 관련되어 있었다고 한다(35쪽). 그 중에서도 불교의 인식론이라고 할 수 있는 유식학은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 사상이었다. 유식학은 인간의 마음을 그 근원까지 탐구한다. 연기법(緣起)에 따르면, 모든 사물과 사건은 서로 의지하면서 존재하는데, 우리는 마치 이것들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처럼 착각한다. 이런 우리의 의식이 어떤 경로를 통해서 구성되고 작동하는지 철저하게 규명하는 것이 유식학이다.
중국 근대 불교를 새롭게 일으킨 양런산(1837~1911)이 발의한 것도 이 유식학이다. 그는 불교에 귀의한 이후 출가하지 않고 세속적인 삶 속에서 불교를 부흥시키기 위해 1866년 난징에 금릉각경처(金陵刻經處)를 설립했다. 이곳에서 『정토사경』(淨土四經)을 비롯한 각종 불전을 판각·유통시키는 한편, 해외의 학자들과 교류하여 유식학 문헌을 대거 들여오기 시작한 것이다. 유식학이 유포되면서 불교 인물들뿐 아니라 량치차오, 슝스리(熊十力) 등의 당시 지식인들이 이 유식학의 세례를 받았다.
양런산을 이어받은 어우양징우(歐陽竟無, 1871~1943)는 유식학의 보고인 『유가사지론』 100권 판각을 완료한 이후 불학 연구와 이론의 생산을 위해 투신했다. 이를 위해 1922년 지나내학원(支那內學院)을 설립하고 수많은 지식인들에게 불학을 교육시켰다. 그는 진리 추구에 앞서 자기 자신이 변화할 것을 요구하였다. 우리의 몸과 마음이 기존의 습속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는 것, 유식학이 추구하는 것이 이 전의(轉依)이기 때문이다. 이후 뤼청(呂?, 1896~1989)과 왕언양(王恩洋, 1897~1964)이 뒤이은 불교 유식학은 인도 불교와 티베트 불교, 일본과 서양에 퍼져 있는 불교 문헌까지 받아들이면서 광범위하게 발전했다. 이를 통해 중국 전통 불교를 반성하고, 서구 근대에 반응하면서 새로운 사유를 열어갈 수 있었다.

현대 신유학에 영향을 끼치다
송대의 유학이 불교 화엄학의 우주론과 선종의 심성론을 기반으로 부흥할 수 있었듯이, 중국 근대의 신유학 역시 불교를 통한 자기 혁신의 과정을 통해 재탄생했다. 근대 말 이학대사(理學大師)라고 불린 마이푸(馬一浮, 1883~1967)의 경우, 양명학의 전통에 서 있는 현대 신유학자이다. 그러나 그는 유학의 전통에만 안주하지 않고 근대의 새로운 학문을 학습하였고, 급기야는 29세 때 불교를 공부하기 시작하였다. 대장경을 통독하고 반야회를 설립하여 정토신앙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였다. 순수한 본성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불교와 유교가 서로 가까운 거리에 있다고 여겨 유불도 삼교의 조화를 꾀했던 것이다.
성리학의 전통에 속하는 량수밍(梁漱溟, 1893~1988) 역시 본성과 현상 등의 근원적인 것을 추구하면서 불교와 만났다. 그 결과 “참된 근원은 알맹이를 가진 물질도 아니고, 표상하는 인간의 마음도 아니다. 단지 생활이고 창조적 진화일 뿐이다”라며 일상이 진실을 담고 있음을 통찰했고(212쪽), 이를 바탕으로 베이징대학 교수직을 사임하고, 학교 설립과 향촌 건설 운동에 뛰어들어 농민의 삶을 대변하는 삶을 살았다.
한편, 무술변법과 공자교 운동의 주역인 캉유웨이는 시차오 산에서 불서를 탐독하고 깨달음을 얻은 후 자비심을 바탕으로 현실에 참여했다. 그의 『대동서』는 이런 자비심으로 화엄적인 유토피아를 염원하며 쓴 것이다. 각 장의 제목만 봐도 대강 알 수 있는데, 첫 장은 「세계에 들어 중생의 고통을 살핀다」이며, 마지막 장은 「고통의 세계에서 극락에 이른다」이다. 고통[苦], 그것의 원인인 집착[集], 고통이 소멸한 세계[滅], 그리고 고통을 소멸하는 방법[道] 등 불교에서 말하는 사성제(四聖諦)의 원칙을 바탕으로 쓴 것이다. 이렇듯 불교는 다른 사상으로 줄기를 뻗쳐 나가 중국 근대사상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근대 계몽 운동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다
중국 근대의 대표적인 계몽 사상가로 량치차오(1873~1929)를 꼽을 수 있다. 중국 전통 사상과 서양 근대 사상에 모두 능했던 그는 근대적 인간상을 그리며 지성을 통해 미성년 상태에서 벗어날 것을 주장했다. 그의 이런 계몽 사상은 『신민설』에서 잘 드러난다. “진정한 자유를 찾고자 하면 기필코 심중의 노예를 척결해야 한다.”(248쪽) 그의 ‘신민설’은 중국 전체로 확산되어 5·4 신문화운동의 주역 후스(胡適)와 마오쩌둥에게 영향을 미쳤고, 항일 투쟁에 참여한 조선의 독립운동가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이런 그에게 불교는 하나의 종교로서 받아들여졌지만, 그러면서도 그는 불교가 사회발전을 위해 필수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불교의 이성적인 측면, 평등의 사상, 주체적인 삶의 강조, 입세주의를 보았기 때문이다.
량치차오가 근대사회 전반에 걸쳐 계몽을 이끌었다면, 불교계에서 그 역할을 한 사람은 타이쉬(太虛, 1889~1947)였다. 그의 제자 인순(印順)에 따르면, 그는 “탄쓰퉁의 『인학』을 읽고는 너무도 아껴 손을 풀지 못했다. 돌연 불학으로 현실에 개입하고 현실을 구하겠다는 서원을 격발했다. 점차 불교적 진리를 세속으로 회향하고 직접 현실에 참여하는 길을 따르게 되었다”(263쪽). 이에 그는 불교를 공부하고자 금릉각경처 내의 불교계 최초 근대 교육기관인 ‘기원정사’(祇洹精舍)에서 수학하기 시작했다.
사회혼란 속에서 불교계 역시 신구 대립이 벌어지는 등 혼란상이 거듭되자 그는 불교계의 혁신을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혼란을 타개하려 베이징으로 간 고승 징안(敬安)이 중앙 정부의 박대 속에 타개하는 사건이 벌어지자 그는 추모회 때 불교 3대 혁명을 발표한 것이다. 교리(敎理) 혁명, 교제(敎制) 혁명, 교산(敎産) 혁명이 그것인데, 이에 대한 불교계의 반응은 냉담했다. 이후 말문을 닫은 그는 1918년에 다시 불교 개혁 운동에 나섰다. 승가제도를 정리하자고 주장하는 한편, 월간 『해조음』을 발행하며 혁신운동을 펼친 것이다. 1922년에는 지나내학원과 더불어 불교 발전의 양대산맥인 무창불학원(武昌佛學院)을 설립했다. 그리고 1925년엔 민남불학원을, 1932년에는 한장교리원을 설립하여 불교 이론을 생산하고 인재 양성을 위해 힘썼다.
그는 신불교를 제창하면서 승려 한 사람 한 사람이 변화할 것을 촉구하고, 그래서 승단이 건강한 조직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그는 불교가 인간을 위한 불교라고 역설했다. “현실은 우주이고, 현실은 법계이고, 현실은 현실”이라며, 암울한 상황을 한탄하지 말고 중생 구제의 사명을 감당할 것을 주장했다. 그는 말했다. “보살행자여 단결하라! 대승 보살의 보리심을 심중에 박고 대자비심을 뿌리 삼아 방편의 만행(萬行)을 실천하고 두려움 없는 구세 정신을 발휘하라!”(277쪽)
오늘날 불교의 사명 또한 이런 보살의 정신이 아닐까. 중생과 세상을 살리고, 자기 자신을 변화시키도록 만들고, 내세가 아닌 지금 발 딛고 있는 삶에 기여하는 방편으로서의 불교. 마침 오는 5월 24일은 불기 2551년 부처님 오신 날이다. 중생들의 고통을 목도한 뒤 출가하여 오랜 고행 끝에 그 고통의 원인과 해탈에 이르는 길을 깨닫고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설법을 행했던 붓다의 생애와 가르침을 잊지 않고 그 뜻을 기리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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