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스토트의 [성령세례와 충만] (IVF, 2002)
나는 비교적 평범한 종류의 깊은 경험들은 많이 체험했으나, 특이한 성령의 경험은 하지 못했다. 그래서일까? "성령충만의 표시는 만취상태의 황홀경같은 기적적인 것에 있지 않고, 도덕적인 것 즉 성령의 열매로 자연스럽게 드러나게 되어 있다"는 것이 과연 올바른 생각인지가 가끔은 흔들린다. 그래서 특이한 성령의 경험을 체험하면 당당해질 것 같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래서 간구해 본 적도 있지만, 자랑삼으려는 나에겐 아직 허락지 않으신다.
이 책은 '특이한 성령의 체험이 없는 나 같은 이들에게 특별한 체험을 한 사람을 쉽게 의심하거나 부인하지 않으면서도, 성령의 열매가 나타나는 생활의 중심을 바로잡을 수 있게 안내해 준다. '방언의 은사'에 대해 아주 강력하게는 아니지만, 믿음의 표징으로 삼기도 한 적이 있던 교회에서 제자반 독서과제의 내용으로 안내되는 책이라 막연한 불편함에서 해방되는 느낌도 함께 든다.
성령의 "세례"는 성령의 '선물'과 같은 것으로, 그것은 새 언약의 독특한 축복 중 하나이며, 또한 시초적인 축복이기 때문에 그 언약에 참여하는 모든 자에게 주어지는 보편적인 축복이다. 성령의 세계는 성령의 약속 또는 선물과 동일한 것이며, 죄의 용서와 마찬가지로 구원의 복음에 필수적인 요소다. 우리는 죄, 죄책, 진도, 죽음으로부터 건져냄을 받는 소극적인 구원으로만 이해해서는 안된다. 구원에는 우리를 중생시키고, 우리 안에 내주하시며, 우리를 자유케하시고 변화시키시는 성령의 적극적인 축복 또한 포함된다.
성령의 사역은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나타내시는 것과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시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과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는 일에서 꾸준히 자라가게 하시려는 것이다. 우리가 타락한 본성의 악한 소욕을 제어하고 그리스도인의 품성의 선한 열매를 맺는 일은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의 능력으로만 가능하다.
성령을 받은 것은 우리가 행한 순종이라는 선한 행위의 결과가 아니라, 복음을 듣고 믿음에 의해서이다.
입문의 사건은 외적으로는 세례와 안수에 의해, 내적으로는 믿음과 성령의 선물에 의해 일어난다.
하나님의 목적은 그 분의 모든 백성이 죄사함과 성령의 선물이라는 새 언약의 축복을 모두 받는 것이며, 그러한 축복의 표지요 인침으로서 물 세계를 받는 것이다. 그 후에 그들은 계속해서 성령의 충만을 받고 그 충만을 거룩한 삶과 담대한 증거를 통해 드러내야 한다. 온전한 그리스도인의 삶은 성령으로 말미암은 거듭남에 이어 성령 안에서 사는 삶이다.
요한이 거룩함의 필요성과 가능성을 다룰 때, 특별한 성령의 세례와 연관시키지 않고, 그들이 본래 하나님으로부터 났다는 사실과 그리스도안에 거해야 할 의무와 연관시킨다.
그리고 성령 충만은 성령 세례의 결과이다. 성령 충만은 모든 헌신된 그리스도인의 정상적인 특징이나, 어떤 특정한 사역이나 직책을 위해서(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입게 된 세례요한), 그리고 즉각적으로 감당해야 할 일이 있을 때 주어졌다(사가랴는 예언하기 전, 스데반은 순교당하기 전). 성령 충만의 증거는 성령의 은사들을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열매가 익어가는 것이다.
사랑이란 도덕적 자질이 결여되면, 육적인 그리스도임을 나타내려는 고린도교인과 같은 '나름대로' 충만함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된다.
성령충만의 증거는 그리스도를 찬양하고, 아버지께 감사하며, 서로 화답하고, 피차 복종하는 것이다. (에베소서 5:18~21)
그리고 아홉가지로 열거되는 성령의 열매로도 나타낼 수 있는데, 이것은 세 관계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첫째, '사랑, 희락, 화평'은 우리가 하나님과 맺는 관계를 나타낸다. 성령은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 마음에 부어 주시고, 하나님의 기쁨을 우리 영혼에, 그리고 하나님의 평화를 우리 생각에 부어 주신다.
둘째, '오래 참음, 자비, 양선'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맺는 관계를 나타낸다. 오래 참음은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게 보이는 무례함과 불친절을 참고 보복하지 않으며, 자비는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자 하는 소극적인 관용을 넘어서 모든 사람에게 선을 기원하는 적극적인 선행의 태도를 말한다. 그리고 양선은 그러한 기원을 행동으로 옮기고, 구체적으로 건설적인 방법으로 사람들을 섬기기 위해 솔선수범하는 것이다.
셋째, '충성, 온유, 절제'는 우리가 자신과 맺는 관계를 나타낸다. 충성은 언제나 자신이 약속을 지키고 자신의 책임을 완수하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확고한 믿음직함이다. 온유는 부드럽고 약한 사람들의 특징이 아니라, 힘과 에너지를 자제할 줄 아는 강하고 에너지 넘치는 사람들의 특징이다. 그리고 절제는 혀와 생각, 식욕과 정욕을 다스리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그리스도의 초상이며, 균형 잡히고 그리스도를 닮은 성령 충만한 그리스도인의 초상이다. 우리에게는 이 특질 중 우리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거나 선택할 수 잇는 자유가 없다. 왜냐하면, 이것들은 함께 그리스도를 닮은 모습을 이루기 때문이다.
"생각을 심으면 행동을 거두고
행동을 심으면 습관을 거두고
습관을 심으면 성품을 거두고
성품을 심으면 운명을 거둔다"
성령 충만의 증거는 성령의 은사들을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열매가 익어가는 것이다.
사랑이란 도덕적 자질이 결여되면, 육적인 그리스도임을 나타내려는 고린도교인과 같은 '나름대로' 충만함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된다.
성령충만의 증거는 그리스도를 찬양하고, 아버지께 감사하며, 서로 화답하고, 피차 복종하는 것이다. (에베소서 5:18~21)
그리고 아홉가지로 열거되는 성령의 열매로도 나타낼 수 있는데, 이것은 세 관계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첫째, '사랑, 희락, 화평'은 우리가 하나님과 맺는 관계를 나타낸다. 성령은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 마음에 부어 주시고, 하나님의 기쁨을 우리 영혼에, 그리고 하나님의 평화를 우리 생각에 부어 주신다.
둘째, '오래 참음, 자비, 양선'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맺는 관계를 나타낸다. 오래 참음은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게 보이는 무례함과 불친절을 참고 보복하지 않으며, 자비는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자 하는 소극적인 관용을 넘어서 모든 사람에게 선을 기원하는 적극적인 선행의 태도를 말한다. 그리고 양선은 그러한 기원을 행동으로 옮기고, 구체적으로 건설적인 방법으로 사람들을 섬기기 위해 솔선수범하는 것이다.
셋째, '충성, 온유, 절제'는 우리가 자신과 맺는 관계를 나타낸다. 충성은 언제나 자신이 약속을 지키고 자신의 책임을 완수하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확고한 믿음직함이다. 온유는 부드럽고 약한 사람들의 특징이 아니라, 힘과 에너지를 자제할 줄 아는 강하고 에너지 넘치는 사람들의 특징이다. 그리고 절제는 혀와 생각, 식욕과 정욕을 다스리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그리스도의 초상이며, 균형 잡히고 그리스도를 닮은 성령 충만한 그리스도인의 초상이다. 우리에게는 이 특질 중 우리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거나 선택할 수 잇는 자유가 없다. 왜냐하면, 이것들은 함께 그리스도를 닮은 모습을 이루기 때문이다.
성령의 열매 9가지라 각기 따로가 아니라, 한 나의 열매라는 관점은 최근에 알게 된 것이다. 이것을 각기 따로 할 때는, 성령의 열매를 내가 만들어내야 할 그 무언가로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열매를 익게하실 하나님을 보게 된다. 그리고 사랑, 희락, 화평.... 내가 하나님과 맺는 관계에 좀 더 집중하게 된다. 그러면서 사랑, 희락, 화평이 생활에 좀 뭍어나오는 것 같아 감사하다.
외부적으로 보이는 큰 변화는 아닐 수 있지만, 내면의 변화는 참으로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