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HSC? 그게 뭐야?” “우수고등학교 스트레스클리닉!” “엥?” 범석이 아니라 내가 낸 소리였다. 나는 두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명성을 바라보았다. 명성은 보란 듯이 팔짱을 끼었다. 잘생기고 키도 훤칠해서 그런 자세가 멋지게 보였다. 당당하기도 했다. 문제는. “SC는 이 똥통 학교를 다니느라 스트레스가 쌓인 학생들을 위해 스트레스의 원인을 제거하는 활동을 한다. 주된 활동은 바로 너희 같은 놈들을 혼내 주는 거지! 스트레스 쫙 풀리거든! 카하하하!” ……이거 분명히 제정신이 아니다. --- p.34~35
“우리와 함께하자. 네 스트레스도 풀고, 다른 학생들의 스트레스도 풀어 주는 거야. 어때?” 나는 세 사람을 죽 둘러보았다. 명성과 종태는 웃음을 머금은 채, 소피아는 냉랭한 표정으로 내게 시선을 고정해 두고 있었다. 겉보기에는 모두 멀쩡한 애들 같다. 생긴 게 튀는 애들이 있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평범한 학생들이다. 똥통에 빠져 있는 똥덩어리 같지는 않았다. 겉보기에는 말이다. --- p.53
“나하고 같네.” “그래, 너도 요즘 애들 같지 않아. 별나. 무지하게 별나. 그리고.” 소피아가 또 시선을 던져왔다. 이번에는 째려보는 게 아니라 뭐 이런 게 다 있나 하는 시선이었다. “무지하게 독종이지.” 많이 들어 본 소리였다.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러는 너도 만만치 않아.” “난 독종 아니야. 이래 봬도 눈물 많고 마음 약한 애야. 천생 여자야.” 켁. 이 계집애가 아까부터 농담을 하는 건지 헛소리를 하는 건지. --- p.139
“지금 우리가 하려는 짓도 더러운 짓이다. 정의가 아니야. 그냥 폭력일 뿐이지. 우리는 결코 정의의 영웅이 아니다. 정의가 뭔지도 몰라. 하지만 이건 안다. 스트레스의 원인을 제거해야지 마음 편하게 살 수 있다는 거. 정당한 스트레스라면 참고 견뎌야겠지. 근데 너는 그런 게 아니거든. 우리는 너처럼 부당한 스트레스를 주는 놈을 그냥 놔두지 않아. 우리는 SC다. 변변찮은 놈들이지만 부당한 스트레스에 적극적으로 맞설 줄 안다는 것 하나만은 자랑스럽게 내세울 수 있는 놈들이지.” --- p.248~249
앞장서는 명성과 주석은 기가 막히게 잘 싸웠다. 통통 튀는 듯한 스텝으로 상대방의 주먹을 흘려 버리고 스트레이트와 훅을 연달아 날렸다. 한 놈이 쓰러지는 데 오 초도 걸리지 않았다. 어떤 놈이든 그들에게 걸리면 두 대 이상은 버티지 못하고 무릎이 꺾였다. 초보의 솜씨가 아니었다. 둘 다 권투 선수 출신이 분명했다. 종태는 그들처럼 날렵하지도 기술이 있지도 않았지만 그 대신 덩치에 걸맞은 괴력을 과시했다. 날아오는 주먹을 피하지도 않고 그냥 맞아 준 다음, 때린 놈을 덥석 들어서 다른 놈에게 던졌다. 무슨 짐짝을 부리는 것 같다. --- p.250
“너희는 왜 화내지 않는 거야?” 다시 한 번 말했다.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부르짖었다. “왜 화내지 않느냐고! 화가 나지 않아? 왜 화를 안 내! 도대체 너희는 왜……!”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아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