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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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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02년 03월 12일
쪽수, 무게, 크기 242쪽 | 384g | 153*224*20mm
ISBN13 9788936501891
ISBN10 89365018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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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YES24 리뷰 YES24 리뷰 보이기/감추기

매트릭스의 세계는 '모순'이 아니라 '헛것'이다.
--- 송은주(ducia@yes24.com)
내가 영화를 보는 한 방식. 주인공의 입장이 아니라 주변인의 입장에서 본다! 우리의 수퍼 히로인이 시장 골목으로, 백화점 내부로 자동차 핸들을 꺽으며 보란듯이 악한을 따돌리는 동안, 나는 내내 주인공이 들이박은 과일상자니 백화점 유리창 걱정이다. 그가 박살 낸 과일상자에 치여 엄마 손 잡고 시장구경 나온 아이 하나가 다치기라도 했으면 어쩌나, 하루 벌어 먹고 사는 행상은 어디서 보상을 받나... 그런 쓸데없는 걱정들. 주인공의 눈부신 활약처럼, 우리 삶엔 밝고 희망찬 미래도 많이 있건만, 왜 나의 촉수는 매번 불운한 것들로 쏠렸을까. 성실하게 쌓아놓은 것들이 우연한 사건으로 한순간 무너져 내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아마 그것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벌어지는 통제불가능한 상황에 대해 우리 인간은 아무 것도 대비할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한 불안-즉 미국작가 '폴 오스터'가 끊임없이 견지하는 그런 오스터식 불안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왜 신은 선하시다면서, 자신이 만든 인간에게 고통을 주는가. 왜 아무 잘못도 하지 않은 사람이 어려움을 겪는가." 이 책『고통의 문제』는 이 길고 오래된 '고통'의 문제에 대해, 신학적인 관점에서 변증하고 있는 책이다. 저자는 서두에서부터 이런 반론으로 글을 시작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세상은 불합리와 모순으로 가득 차 있다. 인류의 역사만 보아도 비이성적이고 잔인한 행태가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왜, 왜 인간은 그런 사실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을 어떤 선한 존재가 창조했다고 생각하게 됐는가'. 그는 이 반론에 또다른 반론과 증거를 제시하면서 신의 전능과 인간의 악, 그리고 고통에 대한 문제를 하나 둘 풀어내고 있다. 나는 여기서 저자가 언급한 정교한 이론을 모두 언급하는 무모한 일은 하지 않으려 한다. 그저 그가 논지를 위해 내세운 이론 중 아주 일부만을 소개하려 한다. (솔직히, 그것만으로도 나는 벅차다)

C.S.루이스가 말한 이론 중 내 무릎을 치게 만든 한가지는 바로 이것이다. '왜 이 세상엔 고통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가.'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 세상은 매트릭스의 세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거칠게 말하면 내 의지(자유의지)에 따라 자유자재로 공간이 늘어나거나 신체 기능이 다른 물질로 바뀔 수 있는 세계가 아니라는 것. 마치 비가 내리고 천둥이 치는 자연현상을 우리가 조절할 수 없듯이(저자는 이것을 '자연' 스스로 '자유의지'를 가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 세상에는 어느 한 사람의 의지로 마음대로 바꿀 수 없는, 고정된 물질적 기반이 있다는 것이다. 마치 '공동의 계약'으로 형성된 사회라는 객관적 기반이 있기에 인간이 비로서 '자신'과 '타자'를 구별할 수 있듯이. 만약 매트릭스의 세계처럼 어떤 한 개인 'A'의 의지가 자유자재로 자연과 물질세계를 지배하게 되어서, 어느 누구도 홍수에 휩쓸려 죽지 않고 마주 달려오는 차를 훌쩍 뛰어넘을 수 있다면? 그래서 수많은 자유의지들이 이 물질세계를 서로 지배하려 든다면? 그 세계는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도 아니며, 이미 너와 내가 함께 공존할 수 있는 세계가 아니다. 즉, 그것은 불가능한 세계가 아니라, '헛(없는) 세계'라는 것. (저자는 이어 대표적인 신학적 난제 중 하나인 '삼위일체'-'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동시에 한몸인 존재-를 통해서도 하나님이 우리 인간들에게 원하시는 삶의 방식, 즉 '사회'에 대한 단서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고 말한다.)

자, 이즈음에서 고통의 문제를 다시한번 환기해 보자. '왜 고통의 문제가 발생하는가.' 적절한 표현일지 모르지만 적어도 지금까지의 논의에 대해서만은 적어도 이렇게 결론지을 수 있을 것 같다. "우리의 자원(물질)은 한정되어 있으며, 이 땅엔 '나'만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누군가는 물질을 누리면, 누군가는 물질을 덜 누리거나 누리지 못하게 된다. 나는 누군가의 행복을 위해 불행해질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은 '함께 사는 일'에 대한 문제로 귀결되는가. 그렇다. 나는 저자가 언급한 수많은 고통에 관한 논의 가운데 이렇게 '함께 사는 문제'의 관점에서 이 책을 소개하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너무 염려 마시라. 이 책의 적어도 8할은 아주 고차원적이고 정신적인 관점에서 서술되고 있으니까. 다시 말하면, 아무리 많은 '물질'도 인생의 궁극적인 행복이 될 수 없다는, 마찬가지로 고통에 대해서도 우리가 너무 두려워할 필요가 없음을 이야기한다. 사랑하기 때문에 아들의 미래를 위해 회초리를 드는 아버지처럼, 상대방을 더 좋은 모습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변화와 수정을 요구하게 되는 연인들처럼, 우리에게는 물질을 넘어서는 더 큰 차원의 세계가 있으며, 고통은 그 세계에 도달하기 위해 인간을 독려하는 유익한 과정일 수도 있다는 것. 너무나 당연한 논리같지만, 오랜 세월동안 불문율처럼 인류의 가슴에 살아있는 그 귀한 오소독시를 우리에게 들려준다.

마지막으로 한가지 노파심에서 말씀드리자면, 이 책은 쉽게 읽히는 류가 아니다. 위에서도 언급했듯 나는 책의 아주 일부분만을 풀어놓았으며, 자의적인 해석도 많이 있었다. 하지만, 여러분들은 꼭 직접 책을 통해 인간과 신과 사랑, 그리고 선과 악에 대한 저자의 방대한 사유와 이론의 전개를 만나보라고 권하고 싶다. A가 곧 B의 그림자임을 암시하는 요소가 곳곳에 깔려 있다. 그 팽팽한 지적 유희를 꼭 만킥해 보시길 바란다!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불과 몇년 전 제가 무신론자였을 때 "왜 하나님을 믿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았다면, 대략 이런 식의 대답을 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를 보세요. 그 대부분이 완전히 어두울 뿐 아니라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추운 빈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 공간과 비교할 때 그 안에서 움직이고 있는 천체들은 수도 너무 적을 뿐 아니라 크기도 너무 작아서, 설사 모든 천체가 완벽하게 행복한 생물들로 꽉 차 있다 해도 그런 생명과 행복이 우주를 만든 힘에게 일종의 부산물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고 보기는 여전히 어렵지요. 그런데 사실 과학자들은 우주의 태양들 중 극소수만이 - 어쩌면 우리가 보고 있는 태양만이 유이랗게 - 행성을 거느리고 있으리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 우리 태양계만 보더라도 지구 외의 다른 행성에는 생명체가 살고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더구나 지구도 수백만 년 간 생명체 없이 존재했고, 이 생명체들이 다 사라진 후에도 또 그렇게 수백만 년 이상 존재할 겁니다.

생명체가 있을 동안의 사정은 또 어떻습니까? 모든 형태의 생명체는 서로를 먹이로 삼아야만 살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하등한 형태의 생명체에게는 그저 죽음으로 이 과정이 끝나 버리지만 고등생물의 경우에는 의식이라는 새로운 특질이 나타나 고통을 느끼게 만들지요. 그 생물들은 고통을 일으키며 태어나, 고통을 가하며 살다가, 대부분 고통 속에 죽습니다.

가장 복잡한 형태의 생물이 인간에게는 이성이라는 또다른 특질이 나타나 자신의 고통을 예견하게 함으로써 실제 고통이 닥치기도 전에 예리한 정신적 고통을 먼저 겪게 할 뿐 아니라, 영원을 간절히 열망하면서도자신의 죽음을 내다보며 살 수밖에 없게 만들어 버립니다. 또 인간은 이성을 통해 교묘한 책략들을 많이 꾸며 냄으로써, 이성이 없었을 경우 다른 인간이나 이성이 없는 생물들에게 가했을 고통보다 훨씬 더 큰 고통을 가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이성의 힘을 한껏 써먹었습니다. 그들의 역사는 대부분 범죄와 전쟁과 질병과 테러의 기록으로서, 그 사이사이 끼어 있는 행복이라고 해봐야 막상 행복을 누리고 있을 때에는 그것을 잃으면 어쩌나 노심초사하게 만들고, 행복을 잃고 난 후에는 쓰라라리고 비참한 심정으로 과거의 기억을 그리워하게 만드는 수준에 불과합니다.

가끔 상태가 나아지면 이른바 문명이라는 것이 등장하지요. 그러나 모든 문명은 사라지게 마련이고, 지속되는 동안에도 인간이 늘상 겪는 고통들을 덜어주는 측면보다는 그 문명이 고유하게 양산해 내는 고통을 가중시키는 측면이 더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의 문명 또한 그런 작용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그리고 이 문명 또한 이전의 문명들처럼 사라질 것이 분명하지요.

설령 사라지지 않는다 해도 뭐가 달라지겠습니까? 인류는 어차피 파멸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주 어느 곳에 생겨난 종족이라 해도 결국은 다 파멸하고 말 것입니다. 사람들의 말처럼 우주는 쇠락하고 있으며, 언젠가는 저온 상태에서 동형 동질의 무한지대가 되어버릴 겁니다. 그간의 사연들은 전부 무(無)로 돌아가 버릴 테고, 모든 생명이란 결국 무한한 물질이 그 천치 같은 얼굴을 별 뜻 없이 잠깐 찡그린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입증되겠지요.

당신이 이런 우주를 자비롭고 전능한 영의 작품으로 믿으라고 한다면, 저는 모든 증거가 오히려 정반대의 결론을 가리키고 있다고 대답하겠습니다. 즉 우주의 배후에는 어떤 영도 존재하지 않거나, 선과 악에 무관심한 영이 존재하거나, 악한 영이 존재하거나, 셋 중에 하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문제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이 비관론적 주장이 설득력 있고 유창한 만큼, 그 즉시 제기되는 문제가 있다는 것을 그 당시에는 전혀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만약 우주가 그토록 나쁜 곳이라면, 아니 제가 말한 바의 반만큼이라도 나쁜 곳이라면, 사람들은 어떻게 그처럼 나쁜 것을 지혜롭고 선량한 창조자가 만들어 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요? 인간들이 바보라서 그랬을 수도 있겠지만, 사실 아무리 바보라 해도 그 정도까지 어리석을 수는 없습니다 .검은 것에서 흰 것을, 악의 꽃에서 덕의 뿌리를, 무의미한 작품에서 무한히 지혜로운 장인을 곧바로 유추해 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인간들이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을 우주의 실제 모습을 종교의 근거로 삼았을 리는 없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다른 출처를 통해 종교를 갖게 되었을 것이고, 우주의 실제 모습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그 종교를 견지했던 것이 분명합니다.
--- pp 17~20
"하나님이 선하다면 자신이 만든 피조물들에게 완벽한 행복을 주고 싶어할 것이며, 하나님이 전능하다면 그 소원대로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피조물들은 행복하지 않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선하지 않은 존재이거나 능력이 없는 존재, 또는 선하지도 않고 능력도 없는 존재일 것이다." 이것은 고통의 문제를 가장 단순하게 표현한 말입니다. 여기에 대답할 수 있으려면 '선하다', '전능하다', '행복하다'는 말에 여러가지 뜻이 있다는 사실부터 밝혀 내야 합니다. 널리 알려진 뜻이 곧 가장 좋은 뜻이거나 유일한 뜻이라면, 이 논증에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 장에서는 '전능'의 개념에 대해, 그리고 다음 장에서는 '선함'의 개념에 대해 몇가지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전능(Omnipotence)이란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능력'이라는 뜻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고 말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과 논쟁하다 보면 "하나님이 존재하며 그가 선한 분이라면 왜 이러저러한 일들을 하시지 않느냐"는 말을 흔히 듣게 됩니다. 그래서 그런 식의 일들은 하나님이 하실 수 없다고 말하면, 즉시 "하나님은 못하시는 일이 없는 줄 알았는데"라는 응수가 돌아오지요. 여기에서 '불가능성'의 문제가 대두됩니다.

일상적으로 불가능하다(impossible)'라는 말에는 대개 '...하지 않는다면(unless)이라는 구절이 숨어 있습니다. 지금 제가 글을 쓰고 있는 이 방에서는 바깥에 있는 거리를 보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즉 제가 시야를 가리는 저 건물 너머를 볼 수 있을 정도로 높은 이 집 맨 위층으로 올라가지 않는다면 거기를 보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만약 제 다리가 부러졌다면 "하지만 위층으로 올라가는 건 불가능한걸"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여기에는 '누군가 나를 안고 올라가 줄 사람이 나타나지 않는다면'이라는 뜻이 숨어 있습니다.

자, 이제 "어쨌든 내가 지금 이 자리에 그대로 있고 시야를 가로막는 건물들도 그대로 있는 한, 바깥 거리를 보는 것은 불가능하다"라는 말에 나타나는 바, 불가능성의 또다른 차원으로 나아가 봅시다. 어떤 사람은 여기에 "공간이나 시야의 본질이 지금과 달라지지 않는다면"이라는 말을 덧붙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인류 철학자들과 과학자들은 뭐라고 이야기할는지 모르겠지만, 저로서는 이 말에 대해 "공간과 시야의 본질이 당신이 말하는 식으로 달라지는 것이 가능한지 모르겠군요."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에서 가능한지라는 것은 분명히 우리가 앞서 살펴본 것처럼 상대적인 가능성 및 불가능성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어느 정도 절대적인 가능성이나 불가능성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 새로운 의미에서 볼 때 '지금 이 자리에 앉은 채 시야를 가리는 저 건물을 우회하여 그 앞에 있는 거리를 본다는 것이 가능하냐 불가능하냐'에 대해 저는 말할 수가 없습니다. 이 말에 자기 모순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만약 이 말에 자기 모순이 있다면, 이 자리에서 거리를 보는 것은 절대 불가능할 것입니다. 절대적 불가능성은 외부의 다른 불가능한 것들-에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 안에 원인이 있다는 점에서 내재적 불가능성이라고도 부를 수 있습니다. 이 경우에는 '...하지 않는다면'이라는 구절이 첨부되지 않습니다. 이것은 어떤 조건, 어떤 세계, 어떤 행위자에게도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행위자' 안에는 하나님도 포함됩니다. 하나님이 전능하시다는 것은 내재적으로 가능한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뜻이지, 내재적으로 불가능한 일도 하실 수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기적을 행하시는 분이지 말이 안되는 일을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이것은 그의 능력에 한계가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가령 "하나님은 피조물에게 자유의지를 줄 수 있는 분인 동시에 주지 않을 수도 있는 분이다"(God can give a creature free-will and at the same time withhold free-will from it)는 말은 하나님에 관해 어떤 내용도 전달해 주지 못합니다. 단어들을 무의미하게 조합해 놓고 그 앞에 'God can'이라는 말을 붙인다고 해서 없던 의미가 갑자기 생겨나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하나님께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말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내재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것'(things)이 아니라 '헛것'(nonentities)입니다. 상호 모순되는 일은 하나님이 만드신 가장 약한 피조물도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하나님도 하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장애물을 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가 보기에 말도 안되는 일은 하나님께도 똑같이 말도 안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성적인 사람들도 잘못된 데이터나 부주의한 논증으로 인해 종종 실수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실제로는 불가능한 일을 가능한 일로 생각할 수도 있고, 가능한 일을 불가능한 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전능으로도 할 수 없는, 내재적으로 불가능한 일들을 규정할 때 상당한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 pp 39~43
이 유비가 강조하는 진리는, 사랑은 본질상 그 연인을 완벽한 존재로 만들고자 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상대방이 고통을 당하지만 않는다면 무엇이든지 허용하려 드는 단순한 '친절'은 사랑과 상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여자를 사랑하게 되었을 때 그가 깨끗하든 더럽든 아름답든 추하든 신경쓰지 않게 됩니까? 오히려 그제서야 비로소 그런 점들에 신경을 쓰게 되지 않습니까? 남자가 자기 외모에 대해 아는 바도 없고 신경도 쓰지 않는 것을 사랑의 표시로 여길 여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야말로 사랑은 그 연인이 아름다움울 잃어도 사랑할 수 있지만, 아름다움을 잃었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랑은 모든 허물을 용서해 줄 수 있고 모든 허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랑할 수 있지만, 그 허물을 없애 주겠다는 결심을 접지는 않습니다. 사랑은 미움보다 더 예민하게 연인의 모든 흠을 감지합니다. 사랑의 "감각은 달팽이의 촉수보다 더 부드럽고 예민합니다." 사랑은 그 어떤 힘보다 더 허물을 용서하면서도 더 허물을 묵과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작은 것에 기뻐하면서도 모든 것을 요구합니다.
--- pp. 67~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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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고전을 만나는 기쁨
--- 삼일교회 전병욱 목사
고전의 가치는 시대가 변하여도 흔들리지 않는다. 고전은 거대한 물줄기의 지류가 아닌 원류를 일컫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C.S 루이스의 <고통의 문제>는 분명 고전이고 원류라고 말할 수 있다.

인간에게 있어서 고통은 풀리지 않는 난제이다. 세상의 많은 철학과 종교가 이 고통의 문제를 다루기 위해서 발버둥쳐 왔다. 대개 인간의 이성에 합리적인 설명이 가능한 것이 "응보의 논리"이다. 그러나 실제 삶에 있어서의 고통의 문제는 "응보의 논리"로서는 풀리지 않는 더 많은 부분들이 남아있게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괴로워한다. 이 풀리지 않는 고통의 문제는 평범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많은 철학자들에게도 풀어야 할 중요한 숙제였다. 그래서 고통에 관한 수없이 많은 책들이 쏟아져 나오게 된 것이다.

나는 고통에 관한 책을 200여권 이상 읽었다. 목사요 설교가로서 이 고통의 문제만큼 자주 다루어야 할 또 다른 주제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기독교인이든 기독교인이 아니든 간에 고통을 다룬 거의 모든 저작에서 C.S 루이스의 "고통의 문제"라는 책은 한 번 이상씩은 언급하고 간다는 점이었다. 이 말은 영미계통의 저자들에게 미치는 C.S 루이스의 영향력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고, 또 이 책 <고통의 문제>를 넘어가지 않으면 고통의 문제를 제대로 다룰 수 없을 정도로 이 책이 탁월한 내용이라는 의미가 된다. 나는 이 두 가지의 의미가 다 정확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C.S 루이스는 고통의 문제를 대략 이렇게 풀어나간다.
첫째, 고통이라는 형식으로 다가오는 축복이 있다. 우리가 기대하는 것같이 축복은 축복이라는 포장지로 다가오는 것이 아니다. 때때로 내게 배달된 고통이라는 소포가 있다. 누구나 뜯어 보기를 주저한다. 그런데 그 고통이라는 포장지를 뜯어보면, 그 안에는 엄청난 축복의 내용이 들어 있다는 것이다. 고통은 삶을 풍성하게 하고, 하나님을 알게 하고, 연약함을 강하게 하는 힘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고통은 축복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고통은 변장된 축복이다."
둘째, 고통을 통해서 사랑받을 자로서의 자격을 얻는다는 것이다. 신데렐라가 왕자의 신부가 되는 것은 축복이다. 왕자는 신데렐라를 신부로 선택하고 난 후, 누더기 차림의 신데렐라로 만족할 수 없다. 목욕을 시키고, 깨끗한 옷을 입히고, 품위 있는 매너를 가르친다. 이 모든 일련의 과정은 축복임과 동시에 고통이다. 편하지 않은 새로운 경험이다. 그러나 신나는 경험이다. 황홀한 경험이다. 의미있는 경험이다. 이 고통은 변화를 위한 고통이요 성숙을 위한 고통이다. 사랑에는 고통이 따른다. 고통은 타락을 치료한다.

C.S 루이스의 <고통의 문제>는 특별히 지성인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내가 만난 대학교수 가운데 그들의 삶의 변화에 가장 영향을 준 사람이 누구냐고 물으면 가장 많이 C.S 루이스를 들곤 한다. 그의 글에는 지성이 있다. 설득력이 있다. 공감을 자아낸다. 그래서 지성인들에게 강력하다. 그리고 그의 심장에서 흘러나오는 따뜻한 고백이 있다. 그래서 시 C.S 루이스에게 매료된다. C.S 루이스는 "차가운 이성과 따뜻한 가슴"을 지닌 행동가이다. "생각의 게으름은 가장 큰 범죄이다." 시 에스 루이스는 우리에게 생각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고통의 문제>는 생각을 자극하는 정신적 촉매이다. 청년에게 있어서 20대에 가장 큰 지적 유산을 물려받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C.S 루이스를 만나라고 권하고 싶다. 루이스를 소화하는 것은 20세기 지성을 소화하는 것과 같은 일이다.

<고통의 문제>는 1940년에 쓰여진 글이다. 그러나 내용의 적실성은 21세기인 지금도 강한 호소력이 있는 강력함이다. 루이스는 1920대 이후 소천하게 되는 1963년(필자가 태어난 해)까지 엄청난 분량의 저작을 남겼다. 특히 놓치지 않고 권하고 싶은 책은 일차적으로 이 책 <고통의 문제>이고, 그 다음에는 지적 사고의 결산이라고 할 만한 책 <순전한 기독교>(Mere Christianity;1942)이고, 또 마귀의 세계를 재미있게 묘사하고, 마귀의 영적인 유혹이 어떤 형태를 띠고 있는지를 우화의 형태로 묘사한 <스크루테이프의 편지>(The Scretape Letters,1942)를 강하게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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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이 정하는 소비자 청약철회 제한 내용에 해당되는 경우
소비자 피해보상
  •  상품의 불량에 의한 반품, 교환, A/S, 환불, 품질보증 및 피해보상 등에 관한 사항은 소비자분쟁해결기준(공정거래위원회 고시)에 준하여 처리됨
환불 지연에
따른 배상
  •  대금 환불 및 환불 지연에 따른 배상금 지급 조건, 절차 등은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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