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더! 이 병원에는 당신이 생각하는 만큼 여유가 없습니다. 결국은 죽을 사람을 치료할 수도 없고, 입원시킬 여지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아직 살아 있어요. 아직 천국으로 간 게 아니지 않습니까?” (중략)
원장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불쾌한 침묵의 시간이 흘렀다. 주위에서 사태를 지켜보던 환자들 중에는 가만히 자리를 뜨는 사람도 있었다.
마더 테레사의 조용한 음성이 다시 침묵을 깨뜨렸다.
“나는 생명이 있는 사람을 버릴 수 없습니다. 당신이 이 사람을 입원시켜줄 때까지 이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을 테니까 그리 아세요!”
그 순간 딱딱하게 굳었던 원장의 표정이 풀리더니 얼굴에 미소가 피어났다.
“알겠습니다, 시스터! 알았다니까요!” (33쪽)
“인도에는 마더가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심혈을 기울여 활동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가난과 병이 가득합니다. 그런 상태에서 왜 선진국에까지 구제의 손길을 뻗어야 합니까? 선진국은 경제력이 있으니까 스스로 하도록 권하기만 해도 무방하지 않습니까?”(중략)
마더는 내 얼굴에 시선을 못 박은 채 타이르듯이 말했다.
“오키, 당신 나라에서는 사람들이 아무 불편 없이 살아가는 것처럼 보여도 마음의 굶주림을 가진 이들도 많아요. 아무도 자신을 필요로 하지 않고 아무도 자신을 사랑해주지 않는다는 마음의 가난함, 그것은 한 조각 빵에 굶주리는 것보다 훨씬 가슴 아픈 일이 아닐까요. 당신은 진실로 당신 주변에 그런 사람이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나요? 누구도 자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체념하는 사람, 좀 더 부모와 대화를 나누고 싶어 하는 아이들, 자신의 방에 붙은 번호로밖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74쪽)
수녀들이 가난한 사람을 사랑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가난한 이들이 부자보다 더 잘 웃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마더와 그 자매들이 있는 곳에는 어디든지 웃음이 넘쳐흐른다.(112쪽)
“오키, 나는 누구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 무언가 하고자 하는 사랑의 마음을 지닌 이라면 대환영이에요. 개신교 신자이건, 이슬람이건, 유태인이건, 힌두교도이건 오키가 사는 나라의 불교도라도 상관없어요. 이웃에 대한 봉사는 헌신과 기도와 사랑이 있으면 가능해요.”
마더는 몹시 즐거운 듯이 깊은 주름이 팬 입가에 미소를 띠며, 몸짓과 손짓을 섞어가면서 사랑을 드러내는 방법을 나에게 일러주었다.
“나는 인간적인 대접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 사회로부터 거부당하거나 미움 받고 경멸당하는 사람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병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 곁으로 가야 해요. 하지만 오키, 당신은 우선 손쉬운 일부터 시작하는 게 나아요. 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에게 꽃을 전달해주거나, 노인들을 위해 창문을 닦아주거나, 세탁을 해주는 것 등등. 그리고 노숙자를 위해 사회보험 용지 쓰는 것을 돕거나, 눈이 보이지 않는 이들을 위해 대신 편지를 써주는 것도 아주 훌륭한 사랑의 표현이지요.” (125쪽)
“인도 아이는 인도에서 자라는 게 정상일지도 몰라요. 하지만 그것은 사랑이 넘치는 가정이 있을 때의 이야기이지요. 우리가 아무리 어머니나 누나의 역할을 대신한다고 해도, 비록 외국일망정 애정이 감도는 가정을 이길 수야 없지요. 사랑은 가정에 깃든다니까요. 아이를 사랑하고 가정을 사랑하면 아무리 가진 것이 없어도 행복해질 수 있답니다.”
나는 이제부터 곰곰 궁리하지 않으면 안 될 커다란 숙제를 받아든 심정으로 마더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148쪽)
“작년에 저는 <임종자의 집>을 보고 매우 감동을 받았습니다. 여러분의 휴머니즘을 제가 사진으로 기록하여 일본인들에게 알리고 싶습니다. 부디 제가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허락해주십시오.”(중략)
“당신이 생각하는 휴머니즘이 어떤 것인지 잘 모르지만 나는 사회복지가도 아닐 뿐더러 자선사업가도 아니에요.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 일할 따름입니다.”(중략)
“내가 만약 사회복지나 자선을 위해 활동한다면 행복했던 집도 버리지 않았을 것이고, 부모와 헤어지지도 않았을 거예요. 나는 하느님에게 몸을 바쳤으므로 지금 내가 하는 일은 휴머니즘이니 뭐니 하고 떠들 만한 게 아니랍니다. 지극히 당연한 일일 뿐이지요.” (164쪽)
“오키는 우리를 위해 사진을 찍고 온 세상에 이런 불행한 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널리 알리려고 해. 그 또한 훌륭한 사랑의 일인 거야!”
나로서는 내 작업이 마더의 말씀대로 ‘훌륭한 사랑의 일’인지 의문이 들지만, 사진가로서 마더 테레사와 그 자매들과 같은 대상을 만날 수 있어서 참으로 행복했다. 사진이나 글을 통해 마더 테레사와 그 자매들의 활동, 그리고 활동의 출발점을 조금이나마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 달리 표현하자면 ‘마더 테레사의 정신’을 PR하는 담당자로서의 역할이 내 라이프 워크였다. 나는 마더와 만나 그 인품을 대함으로써 여러 가지 의미에서 내 마음이 얼마나 가난했는지를 절실히 깨달았다. (200쪽)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