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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올 때 보았네

내려올 때 보았네

: 이윤기 산문집

이윤기 | 비채 | 2007년 10월 30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리뷰 총점8.5 리뷰 17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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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07년 10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336쪽 | 544g | 153*224*30mm
ISBN13 9788992036450
ISBN10 8992036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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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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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공부한다고 해서 현명함을 얻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무지에서는 멀어진다. 하루 나태하게 군다고 해서 무지해지는 것은 아니지만 현명함에서는 멀어진다. 공부하는 사람은 봄 뜰의 풀과 같아서 그 자라는 것이 눈에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나날이 자라는 바 있으나, 공부하지 않는 사람은 칼 가는 숫돌과 같아서 그 닳아가는 것이 눈에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사실은 나날이 닳고 있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 학교는 공부하게 하는 곳이 아니었다. 나의 공부를 방해하는 곳이었다. 내가 보기에 교회는 당시의 내 눈 높이에 맞추어 내가 선택한 곳이지 내 눈높이를 돋우어주는 곳은 아니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학교와 교회를 떠났다.
학교와 교회를 떠나고 보니 고전의 바다였다. --- p.34

이른 시각이었다. 박물관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며 네바 강변에 있는 교회 앞을 어슬렁거렸다. 강가에 차림새가 초라한 한 노인이 아코디언을 안고 앉아 있었다.
우리가 다가가자 노인은 아코디언 반주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노인 앞에 돈 넣는 통이 놓여 있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나는 그의 노래에 귀를 기울였다.
<붉은 사라판>이었다.
아, <붉은 사라판>이었다. 나와 청춘을 함께 한 바로 그 노래였다.
내가 그 노래에 미친 사람이라는 걸 그 노인이 어찌 알고?
7월인데 벌써 매워지기 시작한 네바 강변의 바람 때문일 것이다. 눈물이 나왔다. 나는 눈물을 감추고 그 노래를 따라 불렀다. 그러고는 아내 모르게 돈 통에다 돈을 넣었는데, 얼마 넣었는지 나는 모른다. 얼마 넣었는지 알았다면 내 아내는 많이 놀랐을 것이다. <붉은 사라판>을 들려준 노인은 내 아내보다 더 놀랐을 것이다.
슬픈 추억의 해독제 값. --- pp.330~331

대숲의 주인이 된 것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대숲을 원했다. 그런데 큰 돈이 들 것 같아서 포기했다가 겨우 일금 7천 원만 대나무에 투자할 수 있었다. 그런데 3.5년이라는 세월이 기적을 일으켜 공부방 앞을 대숲으로 만들었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 세월이 일으킨 기적에 대해 쓰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 기적 앞에 설 때마다 내가 그냥 흘려보낸 세월을 아주 많이 가슴 아파한다. 내가 만일에 35년 전에 대나무 한 그루를 빈 터에다 꽂았다면 지금 몇 그루로 늘어 도대체 어떤 대숲을 이루고 있을 것인가, 싶어서다. 평생을 복무하던 직업에서 놓여나 다른 방식으로 사는 삶을 나는 ‘2부 순서’라고 부르는데, 만일 35년 전에 이 기적의 비밀을 알았더라면 나의 인생 ‘2부 순서’는 얼마나 황홀할 것인가, 싶어서다.
--- pp.223-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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