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아홉, 그 이상만을 위한 ‘어른들의 역사 이야기’가 온다!
햇빛보다는 달빛이 어울리는 이야기, 한낮보다는 한밤에 어울리는 이야기가 있다. 모두가 잠든 한밤중에 생긴 일들, 쉬쉬 하며 귓속말로만 전해지고 행여 들킬세라 몰래몰래 기록된 역사 속 수많은 사건들이 또 하나의 이야기로 되살아난다. 그런 ‘동화보다 재미있는 역사 이야기’를 모은 『스캔들 세계사』 시리즈(전 3권)로 역사에 대한 호기심과 역사책 읽기의 즐거움을 안겨준 작가 이주은이 더욱 강력한 재미, 더욱 새롭고 놀라운 이야기로 가득 찬 책 『은밀한 세계사』로 돌아왔다.
『은밀한 세계사』는 열아홉 이상의 성인들을 위한 이른바 ‘19금’, 『스캔들 세계사』에서는 차마 들려줄 수 없었던(?) 성(性)과 폭력 등 어른들의 영역에 속하는 자극적인 어쩌면 민망할 수 있는, 그러나 역사의 한 조각임에는 틀림없는 다채로운 이야기 14편을 모았다.
서두를 장식하는 이야기는 빅토리아 시대에 유행(?)했던 ‘여성 히스테리’와 그 병이 낳은 기상천외한 발명품이다. 여성에게는 성적 욕망이 없으며, 순결하고 순수한 집 안의 천사, 가정의 빛으로 존재해야만 하고, 오로지 어머니가 되고 싶은 욕구만 존재하는 것으로 여겨졌던 빅토리아 시대의 수많은 여성들은 툭하면 신경질, 흐느낌, 우울, 호흡곤란, 짜증 등의 증세를 보이는 ‘여성 히스테리’라는 병에 걸렸다. 그리고 그런 환자가 생기면 의사나 산파가 달려와서 어른들끼리 귀엣말로나 전달할 만한 적절한(?) 조치를 취해주곤 했다. 그리고 그런 치료법으로 인해 의사나 산파의 손목이 남아나지 않을 지경이 되었을 때 ‘기적의 발명품’이 선을 보인다. 그것은 과연 무엇일까.
마리 앙투아네트가 ‘나라를 말아먹은 천하의 악녀’가 된 이유도 흥미를 돋우는 꼭지다. 인쇄기술의 발달로 갓 등장한 잉크 냄새 폴폴 풍기는 ‘전단지’라는 것이 새롭고 신기한 물건이었던 프랑스 혁명 당시, 분노한 시민들의 표적이 된 적국(?) 오스트리아 출신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에 대한 정치적인 프로파간다(선동)는 신기술인 인쇄기술과 결합한 전단지로 파리로, 프랑스 전역으로 배포되었다. 그 악의적인 프로파간다의 영향으로 ‘마리 앙투아네트=악녀’ 이미지가 널리 퍼졌고, 그렇게 고착화된 이미지가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중세 유럽을 휩쓴 남자들의 위풍당당한(?) 패션 이야기는 중세의 명화들을 새롭게 즐길 수 있는 독특한 주제다. 남자들의 ‘그곳’을 강조한 코드피스(Codpiece, 샅보대)는 중세 유럽판 ‘상남자’ 패션이랄 수 있는데, 마초적인 왕 헨리 8세가 대단히 즐겼고, 처녀왕 엘리자베스의 집권 이후로 서서히 자취를 감추었다는 점에서 패션과 정치의 역학관계를 엿볼 수 있기도 하다.
깊은 밤 깊은 곳에서, 공주는 잠이 들고
『잠자는 숲 속의 미녀』와 『빨간 모자』, 『피노키오』 등 동화에 얽힌 유래와 숨겨진 코드, 의외의 교훈 등을 들려주는 꼭지도 재미있다. 오늘날에는 로맨틱 동화의 대명사로 여겨지는 『잠자는 숲 속의 미녀』 원작에 숨겨진 성폭행과 식인 코드, ‘낯선 사람을 경계하라’는 일관된 교훈을 전하는 『빨간 모자』의 다양한 버전을 비교해가며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기존의 “옛날 옛적에...... 왕이 살았어요!”가 아닌 시작부터 다른 명작동화 『피노키오』는 디즈니 애니메이션과 대비시켜 읽는 시도도 재미있다. 원작『피노키오』의 교훈은 ‘양심에 귀를 기울이고 남을 배려하면 진정 사람이 될 수 있다’라는 장밋빛 꿈으로 가득 찬 교훈이 아니라, ‘어른 말을 듣지 않는 아이는 혹독한 고통을 당해도 싸다’는 완고한 꼰대(?) 스타일의 협박성(?)교훈이었다는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그밖에도 영원한 숙제인 피임의 역사와 함께 고대에 피임제로 쓰였던 멸종식물인 실피움, 프랑스 혁명과 단두대가 유행시킨 새로운 패션과 헤어스타일과 ‘망자의 무도회’, 프랑스의 마지막 애첩 마담 뒤 바리와 마리 앙투아네트의 치열한 기싸움, 빅토리아 시대에 아기를 판매하고 처분(?)했던 아기 농장과 아기 농부, 미국 최초의 연쇄 살인마 H. H. 홈즈와 기묘한 장치로 가득한 ‘살인의 성’, 그리고 19세기 이민자들의 대륙 미국에서 벌어진 대대적인 ‘고아 열차 운동’의 모든 것까지,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펼쳐지는 역사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보면 어느덧 동녘 하늘에 먼동이 터올 것이다.
한밤중에 그곳에서, 매혹의 잔혹의 금지된 이야기를 엿보다
머리말에서 “역사란, 단순히 이 나라와 동맹을 맺었다든지, 저 나라와 전쟁을 벌였다 같은 정치 외교적인 이야기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개개인의 삶 하나하나를 모두 포함하는 웅장하고 다채로운 것”이라고 밝혔듯이, 지은이는 거대한 담론보다는 “개개인의 삶 하나하나”에 따뜻한 시선을 던지는 방식을 견지한다. 또한 소재가 가볍다고 해서 접근방식이 가볍거나 출처가 불분명한 이야기는 없다. 『은밀한 세계사』에 실린 14편의 이야기는 “신뢰할 수 있는 문헌과 사진, 그림 등이 존재하는 당당한 정사(正史)”이며 다만, “사적인 영역의 내밀한 이야기”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사람이 태어나서 살아가는 이상, 태어난 순간부터 죽는 순간까지 한 순간도 역사와 분리되어 존재할 수 없으며, 어떤 거창한 역사도 시작은 소소하고 거기에는 ‘은밀하고 내밀한 사생활’이 결코 빠질 수 없다. ‘작지만 큰 역사’로서의 개인사, 특히 한밤중에 귀엣말로 속닥거릴 만한 어른들만의 이야기를 즐겨보자. 단, 『은밀한 세계사』를 펼쳐보기 전에 주의사항! 반드시 아이들을 먼저 재울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