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A를 그만두고 식당을 여는 사람을 본 적이 있는가? 혹은 예술적인 요리 만들기에 심취하여 주방장만큼이나 많은 시간을 주방에서 보내는 식당 주인을 본 적이 있는가? '빠진(Pazin : 천국의 8가지 음식 재료라는 뜻)'을 찾아 도세훈 사장을 만나 보자
'빠진'은 흑백의 조화가 트렌디한 곳이다. 그런 분위기 때문인지 마치 회색전함 안에 들어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각층마다 헤엄치는 물고기 그림만이 밝은 색을 입고 있다. 물은 평화를 상징하고, 물고기는 자유를 상징한다. 그럼 '빠진'은 바다고, 손님은 물로기? 만일 그렇다면 이 집의 단골 물고기들은 점심 때 몰려드는 요조숙녀들과 사업가 스타일의 남자들 그리고 외국인들이다.
가장 좋은자리는 주변 풍경을 내려다볼 수 있는 밝은 3층. 일반적인 손님들은 그저 메뉴 위를 물고기처럼 대강 떠다니지만, 우리는 독창성이 충분히 가미된 요리들이 적힌 메뉴판을 침을 흘려 가며 상어처럼 응시했다. 주방장을 위시하여 이곳은 중국의 영향을 주로 받았으며, 거기에 전 세계 여러 조리법이 가미된 듯하다.
장어, 크림치즈, 오징어, 야채와 베이컨으로 각각 속을 채운 스프링 롤(1만4천5백원)로 잠수했다. 황금빛으로 바삭하게 튀긴 스프링 롤은 속 재료를 근사하게 말고 있었으며, 전체적으로 좋은 조화를 이루었다. A+이다.
새우 퓌레를 넣은 송이버섯(2만5천원)은 젤리처럼 끈적거렸으나 맛은 놀랍게도 산뜻했다.
혀가자미(오렌지 소스 가자미 튀김, 2만8천원) 살점은 입안에서 살살 녹는 것처럼 부드러웠고 껍질, 뼈, 지느러미는 바삭바삭하여 통째로 먹을 수 있었다.
아스파라거스가 들어간 왕새우 요리(3만5천원) 또한 걸작이다. 재료도 좋고 서빙된 모양새도 끝내준다. 중국, 태국, 멕시코의 맛이 섞인 듯 단맛이 먼저 느껴지고 은근히 톡 쏘는 매운 맛이 뒤따른다. 놀랍게도 아스파라거스가 전채와 좋은 조화를 이룬다.
누벨김치(듣도 보도 못한 김치)가 두 가지 있다는 것을 덧붙이고 싶다. 먼저 나온 것은 중국 술에 절인 바삭바삭한 무김치로 화장실을 청소할 때 쓰는 화학 세제 같은 향이 난다. 다행히도 더 이상 이것을 맛볼 수가 없었다.
다음으로 깻잎과 양배추를 켜켜이 쌓은 절인 김치. 신선하고 아삭하며 산뜻한 것이 구미가 당긴다. 우리의 입맛에도 맞는다.
와인 값은 다소 비싼 듯하다. 캐리포니아산 콜롬비아 크레스트 샤르도네(Columbia Crest Chardonnay)를 공짜로 얻어마셨는데, 공짜라는 사실에 흥분한 나머지 가격을 물어보지 못했다. 색깔이 연하면서도 진한 시럽 향이 났으며 산도가 적절히 느껴지는 미디움 보디의 와인으로 생선과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독창성은 디저트까지 계속된다. 견과류를 씹는 듯한 질감이 느껴지는 참깨 푸딩(Sesame pudding, 5천원)과 코코넛 우유가 들어간 고구마 사고(Sago, 4천5백원)는 조화가 너무도 사랑스러워 마치 입맞춤하는 듯 혀를 자극했다.
총평 : 서울에서 가장 정교한 메뉴를 보여 주는 곳 중의 하나며 서비스 또한 상당히 전문적이다. 으아! 가격의 가시에 찔렸다. 10% 부가세를 염두에 두지 않고 주문해 버렸다. 그렇지만 돈을 낸 만큼의 보답을 받는다. 당신이 먹이를 차장 이곳 저곳을 표류하는 물고기라면 '빠진'을 향해 헤엄쳐 보자. 틀림없이 이곳의 낚시 바늘에 걸려들 것이다.
전화 3442-0087
지하철 없음
주차 가능
영업 시간 : 정오~ 오후 3시 30분 / 오후 6시~10시
추천 고객 : 돈 많은 미식가
추천 복장 : 스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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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카폴, 쿠알라룸프, 방콕행 비행기에서 내린 여행자는 공항을 빠져 나와 호텔에 짐을 푼 후 간단히 씻고 나와서 식사 준비를 한다. 저녁은 길고 날씨는 따뜻하니 영 호텔에서 식사할 기분이 들지 않는다.
호텔에서 몇 블록 건너에 있는 사람들이 북적거리고 질과 다양성이 뛰어난 길거리 음식(Hawker centers)으로 가득 찬 한 동네로 가 국수 한 그릇을 먹을까? 아니면 땅콩 소스로 볶은 고기 한 그릇을 먹을까? 차가운 맥주 한 잔 그리고 과일과 얼음이 많이 들어간 과일빙수를 한 그릇 먹을까? 외국어로 메뉴를 표기해 놓고 익숙하지 않은 요리를 제공하는 식당들과 달리 이곳에서는 어떠한 장벽도 없다. 이곳에서는 단지 코를 따라가 맘에 드는 음식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기만 하면 된다. 약간의 보디랭귀지와 미소만 있으면 그 나라의 식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
그러면 왜 서울은 동남아시아에서 경험할 수 있는 걸거리 식문화가 발달되지 못한 것일까? 그 첫번째 이유로 날씨를 들 수 있다. 서울은 나무가 우거진 열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두번째 이유는 정부가 그들이 정당하다고 주장하는 이유, 즉 보기에도 안 좋고 비위생적이고 불편하다고 생각하여 포장마차를 배척하기 때문이다. 세 번째 이유는 문화에 있다. 포장마차들은 단지 소주 수유소 같은 곳이다. 양질의 음식은 그 다음의 문제이다. 또 잘 먹으려는 한국 사람들은 대부분 포장마차 보다는 식당을 선택하는 편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인구 구성의 문제이다. 동남아시아에는 다양한 인종이 모여 살지만 한국은 단일 민족이기 때문에 그 다양성이 결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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