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16년 05월 27일 |
---|---|
판형 |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 548쪽 | 634g | 105*152*35mm |
ISBN13 | 9788954640688 |
ISBN10 | 8954640680 |
발행일 | 2016년 05월 2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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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형 |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 548쪽 | 634g | 105*152*35mm |
ISBN13 | 9788954640688 |
ISBN10 | 8954640680 |
에이미와 이저벨 ...011 옮긴이의 말 _인간을 사랑하는 한 가지 방법 ...541 |
미국 동부 뉴잉글랜드 지역의 작은 마을 셜리폴스에는 삼십대 초반의 엄마와 열여섯 살 딸이 산다. 그들의 이름은 이저벨과 에이미. 어느 해 여름, 그들에게는 거센 감정의 폭풍이 몰아쳤다. 그해 여름 그들에게 닥친 사건과 그에 따른 갈등은 펼쳐진 오래전부터 유전(流傳)되어 온 것이기도 하고, 그들에게서 느닷없이 펼쳐진 막연한 안개 속 같은 것이기도 했다. 갈등의 끝에는 화해가 오고, 아픔을 겪어야 성장한다고 하지만, 과연 누구에게나 그런 갈등과 아픔이 필요한지는 모르겠다. 그런 갈등과 아픔을 미화시키기 위한 위로는 아닌지.
작은 읍내 같은 마을이고, 그 좁은 공간에서 엄마와 딸의 생활을 중심으로, 학교, 공장 사무실 등에서 벌어지는 작은 커뮤니티의 이야기다. 하지만 누구나 알고 있듯이 삶의 우여곡절은 커뮤니티의 크기와는 상관없다. 흔하디 흔해 보이는, 홀로 딸을 키운 엄마와 사춘기에 접어든 딸 사이의 갈등은 오히려 시시해 보이지만, 그게 엄마와 딸에게 이어진 운명의 고리 같은 것이 걸려 있다면 그것은 결코 시시한 이야기가 아니다. 거기에 성(性), 그것도 정상적이지 않은, 선생과 제자 사이의 관계가 끼어들고(제자는 사랑이라고 생각했으나, 선생은 그러지 않았다), 어른들의 불륜이 있다. 사랑의 감정과 신분 상승의 욕구가 얽혀 어떤 것이 진짜인지 모르는 상황도 있으며, 십대 소녀의 우정도 그려진다. 이런 굵직한 갈등에 관한 이야기들이 많지만, 전개는 어수선하지 않다. 그게 작가의 능력이다.
이 소설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첫 장편소설이다. 이 작가의 능력은 퓰리처상을 수상한 작품 『올리브 키터리지』으로 증명되는데(나는 『올리브 키터리지』를 읽지 않았다). 그게 어떤 작품인지 모르지만 이 작품으로도 충분히 작가적 능력은 인정받았지 않았나 싶다. 좁은 지역에, 길지 않은 시간 속에 여러 부류의 개성 있는 인물들을 섞어 놓고, 그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화해를 다루면서, 중심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중심을 굳건히 하면서도 이른바 조연들의 몫도 충분히 챙긴다. 주연들의 활약이 조연의 배경을 통해 빛난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전개는 잔잔히 이어지다, 갑자기 휘몰아치면서, 독자의 감정마저 격하게 만들며 책장을 급하게 넘기도록 하더니 어느새 결말이 이른다. 결말은 너무 갑작스럽지도 않고, 그렇다고 질질 끌어가지도 않는다. 절정의 순간을 지나 차분히 마음을 정리하다보면 마지막 장을 넘기고 있음을 알게 된다.
소설에서 딸(에이미)는 엄마(이저벨)과 ‘검은 선’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여긴다. 어디서나 존재하는 굵지도 얇지도 않은 그 선은 정체가 없는, 단지 느낌뿐이었다. 하지만 결국 그게 운명 같은 것, 대물림이었다는 것이 드러난다. 엄마는 그것을 부정하고 싶었고, 물려주고 싶지 않았지만, 결국은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다른 엄마를 원했던 딸은, 격정적인 십대의 여름을 보내며 성숙해지고, 엄마를 이해하게 된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럼으로써 ‘선’에 대한 언급이 사라지는 것이다. 그들이 비슷한 운명을 겪고 있다는 것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들이 연결되는 방식은 그런 것이다. 누구에게도 보이지만, 누구도 말하지 않는 것.
소설의 끝에 후회에 대해 이야기한다. 후회하지 않는 삶이 어디 있으랴. 주로는 무엇을 할 걸, 무엇을 하지 말 걸, 그런 것이다. 그러나 후회가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간다는 보장은 없다. 후회는 반복되기 마련인데, 그래서 난 후회란 참 무책임하단 생각해 왔다. 후회할 일을 절대로 않겠다는, 이를 앙다문 다짐! 그런데 이 소설을 읽으며 그런 절대로 후회하지 않으려 그리 애쓸 필요가 있을까 싶어진다. 그건 또 과거에 대한 왜곡이 되는 건 아닐까? 적당히 후회도 하며 살아가련다. 후회가 아니라고 거듭거듭 강조했던 것을 조금은 후회한다고 하리라. 다만 될 수 있으면 빨리 후회를 추억으로 전환시키리라. 그리 되었을 때 삶이 좀 너그러워지고, 멀리 보이게 된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작품을 좋아하는 독자들은 아마 알고 있을 것이다. 그녀가 쓴 소설 제목은 유난히 사람의 이름이 많다는 것을. <내 이름은 루시 바턴>을 비롯하여 <에이미와 이저벨>, <올리브 키터리지>, <버지스 형제>, <다시 올리브>, 최근에 출간된 <오, 윌리엄>에 이르기까지 작가의 많지 않은(?) 소설 작품 중에서 이름이 안 들어간 작품을 찾는 게 오히려 빠를 듯하다. 여기에는 소설가로서 작가의 집요함과 꾸준한 인내심이 이와 같은 멋진 작품들을 완성하는 데 한몫을 했다고 나는 믿고 있다. 한 인물에 대한 집요한 추적과 분석이야말로 소설가가 갖추어야 할 필수 덕목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어떤 인물이 갖고 있는 개별적인 특성뿐만 아니라 그것을 바탕으로 인류 전체가 지닌 보편적인 특성을 발견하는 것이야말로 위대한 물리학자가 각각의 현상을 통해 우주 전체를 통괄하는 보편적 원리를 발견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소설을 한 작품이라도 읽어 본 독자라면 작가가 창조한 한 인물에 대한 세밀하고도 친절한 기술이 인간에 대한 작가의 깊은 애정에서 비롯된다는 걸 은연중에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한 인물이 갖고 있는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같은 분량으로 끈기 있게 기술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나와 같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 인물의 부정적인 측면을 그렇게 깊이, 객관적으로 바라보지도 않으며 설사 그것을 발견하고 관찰하였다 할지라도 그것에 대한 묘사나 서술을 서둘러 그만두려는 경향이 있다. 자신이 보고 관찰한 것들을 있는 그대로 기술하는 데는 많은 노력과 인내심이 필요하다.
"하지만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계속 나아갈 뿐이다. 사람들은 계속 나아간다. 수천 년 동안 그래왔다. 누군가 친절을 보이면 그것을 받아들여 깊숙이 스며들게 하고, 그러고도 남은 어둠의 골짜기는 혼자 간직하고 나아가며, 시간이 흐르면 그것도 언젠가 견딜 만해진다는 것을 안다. 도티, 베브, 이저벨 모두 저마다의 방식으로 이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에이미는 어렸다. 무엇을 참을 수 있는지 혹은 참을 수 없는지 아직 몰랐고, 이 자리에 있는 세 엄마에게 아이처럼 말없이 매달려 있었다." (p.508)
나는 사실 <내 이름은 루시 바턴>을 통하여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라는 훌륭한 작가를 남들보다 아주 늦게 알게 되었고, 이번에 읽은 <에이미와 이저벨>이 그녀의 여러 작품 중 내가 읽은 두 번째 작품이지만,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통해 인간에 대한 사랑을 적절히 표현하는 방법은 삶의 고비에서 겪는 개개인의 순간순간을 친밀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그것을 가감 없이 기록하는 것이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소설을 번역했던 정연희 번역가 역시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이 소설을 번역하면서 나는 인간이 인간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아름다운 방법 하나는 그런 순간들의 이면을, 그 순간들을 '건너가는' 사람들의 숨은 마음을 친밀하고 세심히 바라보는 일일 거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바라봄은 이해를 낳고, 이해는 우리를 성장시킨다. 그리고 성장은 인간을 인간으로서 사랑하게 만든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소설은 그런 바라봄을 안내하는 데 탁월하다." (p.543 '옮긴이의 말' 중에서)
우리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삶을 설계하고 관계를 맺는다. 그것은 엄마와 딸의 관계에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두 사람이 사랑하는 방식도, 서로에게 원하거나 기대하는 바도, 상대방을 위해 어떤 생각을 하며 어떻게 행동할지를 결정하는 것도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사랑과 증오가 공존하는 엄마와 딸 사이의 섬세하게 다루면서, 유난히 더웠던 셜리폴스의 여름 한 계절을 다루는 <에이미와 이저벨>. 수줍고 소심한 성격의 에이미 굿로는 올해 열여섯 살의 소녀이다. 점심시간에 몰래 담배를 같이 피우는 스테이시를 제외하면 친한 친구도 없다. 교사가 되길 원하는 엄마 에이절의 생각과는 다르게 에이미가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시(詩)이다. 지난겨울, 수학교사인 데이블 선생이 사고를 당한 후 학교에는 토머스 로버트슨 선생이 임시교사로 왔다. 시를 좋아하는 로버트슨 선생을 은근히 좋아하게 된 에이미는 방과 후 학교에 남아 그와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그저 행복하다. 그러던 어느 날 로버트슨이 자신의 차로 에이미를 집에 바래다주면서 에이미에게도 새로운 변화가 찾아온다. 여름방학이 되면서 에이미는 이저벨이 일하는 사무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다. 자궁절제 수술을 받은 도티 브라운의 일을 대신하는 것인데 직장 상사인 에이버리 클라크의 제안으로 성사된 것이었다. 어느 날, 에이버리는 차 안에서 부적절한 행동을 하고 있는 중년의 남자와 소녀를 보게 되는데... 에이버리는 자기가 목격한 것을 이저벨에게 전하고, 이저벨은 이에 충격을 받고 분노한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과 보낸 마지막 순간을 기억하듯 이날을 기억할 것이다. 이저벨의 은밀하고 깊숙한 기억 속에는 이날이 그녀가 에이미를 '가진' 마지막 날처럼 느껴질 테니까. 그녀의 기억 속에 나뭇잎들은 항상 금빛이고, 고속도로에는 아침 햇살로 샤워하고 가을 날씨로 빳빳해진 금빛 나뭇잎들이 늘어서 있을 것이다." (p.53)
끝날 것 같지 않았던 그해 셜리폴스의 무더웠던 여름은 마치 에이미와 이저벨의 끝나지 않을 듯한 갈등처럼 길기만 했다. 세상을 등지고 셜리폴스로 숨어들었던 이저벨과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여 스스로 또래 친구들과 담을 쌓고 지내는 에이미. 세상에 오직 두 사람뿐인 줄 알았던 그들은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면서 외부와의 관계를 넓혀간다. 작가인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는 에이미와 이저벨의 성장 과정을 애정 어린 눈으로 조용히 지켜보고 있다.
"이저벨에게는 사연이 있었다. 오래전 타운에 옮겨와 22번 도로에서 가까운 크레인 씨의 낡은 주택을 빌린 뒤 많지 않은 살림살이를 풀고 젖먹이 딸아이(옅은 금발의 곱슬머리에 진지한 표정을 한 아기)와 함께 정착했을 때, 그녀는 회중교회 신자들 사이에 그리고 그녀가 일하게 된 공장 사무실에 근무하는 여자들 사이에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젊은 이저벨 굿로는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았다. 남편도 부모도 모두 죽었고, 벌이가 더 나을까 해서 강을 따라 셜리폴스까지 내려왔다고 말할 뿐이었다." (P.23)
유난히 길고 가물었던 올해 가을도 이제 그 끝을 향해 치닫고 있다. 다음 주면 다사다난했던 2022년도 딱 한 달을 남겨두게 된다. 먼 훗날 언젠가 2022년을 되돌아보면 가장 먼저 우리는 '10.29 참사'를 떠올리게 될지도 모른다.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았던 푸르렀던 젊음이 어느 날 뚝 멈춰 서야만 했던 그날의 참사. 대중을 향해, 무능했던 정부를 향해 오열했던 유가족들. 삶은 그토록 쉽게 멈춰질 수 있음을 기억하며 내가 사랑하는 이들의 하루하루를 지켜보려 한다. 대학생인 아들은 내년이면 군복을 입고 나타날 테고...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는 2009년 퓰리처상 수상작인 <올리브 키터리지>의 작가이다.
그의 퓰리처상 수상작을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독자들이 꽤 좋아했고, 미국의 드라마로도 제작되었다고 한다.
이 소설은 작가의 데뷔작으로
엄마와 딸의 사랑과 증오가 공존하는 복잡 미묘한 심리를 다룬 소설이다.
모녀 관계가 좋을 때는 무척 좋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대립되는 경우도 많다.
엄마와 딸의 관계,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에서
그들에게 따스한 미소를 보내는 사람들이 곁에 있었음을 나타내는 소설이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가혹한 여름,
힘든 계절을 보내고 있지만 그들에게 건네는 따뜻한 온기를
느낄수 있는 작품이다.
퓰리처 수상작인 <올리브 키터리지>와 <에이미와 이저벨> 또한
제대로 읽어보고 싶어지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