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나우웬은 산타클로스를 기다리는 어린 아이들의 태도를 비유함으로써 이 문제를 지적한 적이 있다. 아이들은 성탄절에 산타클로스를 기다린다. 하지만 산타클로스를 만나고 싶어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관심은 산타클로스가 아니라 그가 주는 선물이다. 선물만 받으면 아이들은 산타클로스를 이내 잊어버린다.
기도를 '요구하는 것(asking)'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은 아이들이 산타클로스를 대하듯 하나님을 대한다. 하나님을 만나 사귀는 일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고, 그분이 주시는 선물에만 관심을 둔다. 그들이 기도하는 목적은 하나님을 더 기이 사귀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바라는 것을 얻으려는 것이다.
우리는 내심으로 하나님이 우리 삶에 개입하시기를 바라지 않는다. 멀리 서서 우리가 원할 때 선물이나 보내 주기를 바랄 뿐이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이 누구신지 그리고 그분이 우리의 삶에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안다면, 우리는 '하나님, 저에게는 하나님이 전부입니다. 하나님이 계신 것만으로 충분합니다.'라고 기도하게 될 것이다 바로 이것이 올바른 기도의 출발점이다.
--- pp. 24~25
보통 사람들은 어거스틴이 말한 '행함의 죄'(즉, 죄를 행하는 잘못)에서 해방되는 것만으로도 영적 해방감과 성취감을 느낀다. 그 정도라 해도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정도로 만족하고 멈추어서는 안된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엡 4:13)에 이르기까지 멈추지 말아야 한다. '행함의 죄'에서 벗어난 후 '행하지 않은 죄'(즉, 선을 행하지 못한 잘못)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
뒤집어 말하면 죄를 범하는 부족함에서 벗어나 거룩하고 선한 일을 행하는 데 헌신해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세상과 구별되지만 세상 안에서 살아야 하는"(요 17:14~17) 존재다. '행함의 죄들 벗어났다는 말은 이제 세상과 구별되는 삶을 사는 데 어느 정도 성공했다는 뜻이다. 기뻐할 일이다. 그렇지만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하나님의 영광과 이웃의 행복을 위해 헌신해야 한다. 영성이 깊어짐에 따라 회개기도는 행한 죄에 대한 참회에서 벗어나 선을 행하지 못한 잘못에 집중해야 한다.
톨스토이는 선행이 '만족'이 아니라 '기쁨'을 준다고 말한 바 있다. 진실하게 선행을 실천하는 사람들은 더 많은 선행의 요청을 느끼기 때문에 결코 만족할 수 없다. 그래서 기도할 때마다 스스로의 한계를 인정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한다. 이것이 참회 기도가 깊어지는 이유다. 이 참회 기도는 사람을 비참하게 만들지 않는다. 선행을 통해 그들은 신령한 기쁨을 맛보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쁨은 스스로를 매우 소중한 존재로 느끼게 한다. 그러나 스스로의 행실에 대해 만족하지 않기 때문에 교만해지는 법이 없다. 이것이 영성의 신비다.
올바른 회개 기도는 우리를 자유롭게 하고 정화시키며 새로운 열정으로 불타 오르게 만든다. 이는 기계적인 회개 기도를 행할 때와 정반대의 현상이다. 수학 공식을 외우듯이 회개 기도를 하면 오히려 구속감과 권태감을 느끼게 되며 기도의 열정이 식어 든다. 기도 후에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회개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고 기도하면 그것을 통해 놀라운 영적 진보를 경험하게 된다.
--- pp. 104~105
내가 이 책을 쓴 것은 또 다른 많은 니고데모들을 위해서다. 나는 나 자신이 그 동안 고뇌하며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 쳤던 바로 그 상태에 있는 사람들이 꽤 많다는 사실을 알았다. 학교나 교회에서 많은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나의 경험이 혼자만의 것이 아님을 발견했다. 굳어버린 형식적 신앙 생활 속에서 신음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다. 그들 중 일부는 과거의 나처럼 영적 돌파구를 찾아 헤매고 있고, 일부는 '그러려니'하고 접어놓고 있다. 어떤 상태에 있든, 그들은 모두 그 상태에서 벗어나 성숙한 경지로 나아가야 한다. 이 책은 이러한 전환을 하는데 있어 얼마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전체 5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에서 나는 한국 개신교회 전반의 기도 생활의 문제점들에 대해 반성하면서 개선 방안을 생각해 볼 것이다. 제2부는 기도의 시간적, 공간적 환경에 대해 논의할 것이다. 제3부에서는 기도에서 다루어질 수 있는 여러 가지 주제들을 살펴보고, 제4부에서는 기도를 돕는 다양한 도구들에 대해 설명할 것이다. 마지막(제5부)으로 바른 기도를 통해 맺을 수 있는 열매들을 살펴봄으로 논의를 마칠 것이다. 각 장(章) 끝에는 그 장의 내용에 대한 간단한 '요점', '연구를 위한 질문', 그리고 '실천을 위한 제안'을 달아 놓았으며, 더 깊이 연구하기 원하는 독자를 위해 참고 도서를 제시해 놓았다. '연구를 위한 질문'은 그룹 스터디는 물론이고 개인적으로 읽은 내용을 정리하고 생각을 발전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기도는 사귐이다. 기도의 참된 의미는 여기에 있다.…기도를 통해 영이신 하나님과 사귀다 보면, 요청할 때도 있고 침묵할 때도 있고 찬양할 때도 있다. 묵묵히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것도 사귐이다. 그 모든 것이 기도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지속되고 있는 한, 우리가 하는 행동은 모두 기도다. 이렇게 사귐의 기도를 지속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성품에 점점 깊이 참여하게 되고 그분을 닮아간다.
기도를 통해 무엇인가를 요청하는 것은 그 다음의 일이다. 하나님과의 사귐을 통해 우리 자신이 변화하고 우리의 열망과 의지가 하나님에게 조율된 다음 비로소 입을 열어 무엇인가를 구해야 한다. 그 때에야 우리는 참된 것을 구하게 되고, 하나님은 기꺼이 그 기도를 들어주신다. 능력 있는 기도는 하나님이 원하지 않는 일을 강요하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알아차리고 그것을 구하는 기도다. 다시 말하면, 사귐의 기도가 없이는 진정한 기도의 능력은 만들어질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