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살아온 삶의 갈피를 넘겨봅니다.
아무리 뒤적여 보아도 무병장수하다 잠자듯 세상 떠난 어르신 많지 않고, 신통방통한 소식이라고는 가뭄에 콩 나는 일보다 더 드물고, 게다가 복권에 당첨된 적도, 의외의 보너스 받은 적도 별로 없습니다.
제가 그렇듯 여러분도 다를 바 없을 것입니다. 그저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인과법칙에 가급적 맞추어서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에게도 행운이 찾아왔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뭔가 좀 이렇게 되었으면…….’ 할 때 그 일이 척척 이루어졌으면 좋겠고, ‘제발 저런 불행에는 걸려들지 말았으면…….’ 할 때는 용케도 피해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도 부처님 법 만난 뒤에는, 앞 못 보는 거북이가 바다 속에서 백년 만에 고개를 내밀어 나무 판자에 난 구멍에 머리를 들이미는 행운을 잡은 거라며 위안을 주던 경전의 말씀에 잠시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하였습니다(『불설니리경』). 지옥에서 천상까지의 정신없이 뺑뺑이 도는 운명 속에서 인간의 몸을 만난 것이 얼마나 신기한 일이냐는 부처님 말씀에는 어깨를 으쓱해 보기도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어쨌거나 이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환호성보다는 한숨이 더 자주 쉬어집니다. 분명히 제게도 좋은 일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좋은 일은 기억이 분명하지 않습니다. 가슴 속에는 슬펐던 일, 억울했던 일, 아팠던 일이 더 또렷하게 새겨져 있습니다.
신문을 펼쳐 보아도 숨 막히는 일들뿐입니다. 정말 이 세상에는 슬픈 일이 너무나 많습니다. 나의 내면에서 빚어지는 슬픔과 괴로움, 현실에서 부닥치는 위험과 병마, 가족 간의 불화, 이 사회의 범죄, 그리고 또 하나의 불행으로 역사에 기록될 국가 간의 전쟁들…….
“세상이란 게 전쟁도 있고 평화도 있는 법이지.”
“사람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여러분도 저도 그저 이렇게 스스로를 달래볼 뿐입니다.
“내 마음 같지 않아.”
“힘들다.”
우리는 이런 말들을 아예 입에 달고 삽니다. 정말 우리의 삶에는 힘든 일이 참 많습니다.
일단 태어난 존재는 쉼 없이 죽음의 두려움에 시달립니다. 병마는 우리를 노리고, 만남조차도 이별을 항상 안고 있습니다. 나의 성공은 다른 이의 좌절을 의미합니다. 태어난 이상 겪을 수밖에 없는 괴로움! 부처님도 이 세계와 중생들을 거듭 살펴보시다 마침내 덧없고 괴로우며 그것은 진실한 나라고 할 수 없다며 땅! 땅! 땅! 결론을 내렸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이런 괴로움만큼이나 분명한 사실이 또 하나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괴로운 상태를 벗어나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괴롭고 슬픈 상태를 지속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여러분도 저도 괴로움을 싫어합니다. 그 괴로움이 어떤 이유에서 빚어졌든 그리고 괴로움의 정도가 어떠하든지 무조건 벗어나고 싶어하는 것이 생명 있는 자들의 본능입니다. 즐거운 것은 좋고 괴로운 것은 싫다는 것이 우리들 인간의 당연한 생각입니다.
『대반열반경』에는 삶은 좋아하면서 죽음을 꺼리는 ‘어리석은’ 인간을 따끔하게 일깨우는 말씀이 담겨 있습니다. 삶, 생명, 환희, 영원을 상징하는 아름다운 공덕천이 문을 두드리자 집주인은 반색하며 맞아들입니다. 하지만 그 뒤를 이어 죽음, 슬픔, 고통을 상징하는 추한 모습의 흑암천이 집안을 기웃거렸습니다. 아연실색한 집주인이 호통을 쳤습니다.
“누가 너를 들어오라고 했느냐? 썩 꺼져라!”
그러자 아름다운 공덕천이 집주인에게 말했습니다.
“들여보내 주십시오. 흑암천은 내 동생입니다.”
“우리 집에는 아름다운 너만 들어올 수 있다.”
“하지만 나와 내 동생은 어디든 항상 함께 다니는 자매랍니다.”
집주인은 어떻게 했을까요? 그는 주저하지 않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래? 그럼 너도 내 집에서 나가거라.”
하지만 어리석은 인간은 이 집주인과는 달리 공덕천에 너무나 미련이 강해서 끝내 흑암천까지 집안으로 들인다는 것입니다. 공덕천과 흑암천이 동전의 양면처럼, 손바닥과 손등처럼 떼려야 뗄 수가 없고 항상 함께 존재하는 것이 세상살이의 이치인데 여러분과 저는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공덕천이 잠시 내 눈 앞에서 아름다운 춤을 추면 넋을 잃고 빠져들다가, 흑암천이 재채기라도 한 번 하면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맙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그게 중생인데요.
우리가 부처님처럼 지혜롭다면 온갖 즐거움이나 괴로움에 조금도 휘둘리지 않을 자신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우리에게는 아직 지혜가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습니다. 지혜는커녕 욕심과 분노와 어리석음만이 대글대글 온몸과 마음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불행해지는 것은 싫다고 합니다. 아, 이런 모순 덩어리가 또 어디 있을까요?
「관세음보살보문품」은 바로 이런 모순투성이의 중생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읽어 가는 부처님 말씀입니다.
“에잇, 이깟 세상살이!” 하면서 속절없이 털어 버리고 출가하여 용맹정진할 용기도 없고, 수행하면 될 줄 머릿속으로 알고는 있으면서도 게을러서 그리 하지 못하는 우리와 같은 사람이 읽는 말씀입니다.
「보문품」은 위험에 처했을 때 읽는 경이 아니라 미리 읽어 두어야 하는 경입니다. 그리하여 장롱 깊숙한 곳에 들어 있다가 위험이 닥친 순간 놀랄 정도로 위력을 발휘하는 보험증서처럼 여러분과 저의 인생살이에 위안을 삼을 수 있고 괴로움을 무사히 건네주는 이것이 바로 「관세음보살보문품」입니다.
- 2008년 3월 이미령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