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러다임을 바꾼 탁월한 리더 50인의 통찰력의 비밀
“나에게 지난 15년은 경영 컨설턴트로 일하던 시절과 경영대학원의 학장으로 재직하던 시기로 크게 나누어진다. 대학원에서 나는 놀랍고 모범적인 성공 신화를 쓴 리더들을 연구하며 그들의 성공에 근간이 된 공통 주제를 밝히기 위해 노력했다. 특히 최근 6년 동안에는 50명이 넘는 탁월한 리더들을 인터뷰하는 데 주력다.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한 끝에 나에게 한 가지 공통 주제가 매우 선명하게 부각되었다. 내가 연구했던 리더들은 적어도 한 가지 특성을 공유하고 있었다. 그것은 탁월한 혁신의 재능과 장기적인 비즈니스 성공과는 다른 차원의 것이었다. 바로 두 가지 완전히 상반된 아이디어를 동시에 생각할 수 있는 성향과 능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들은 공황 상태에 빠져 허둥대지 않았으며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양자택일하지도 않았다. 대신에 각각의 상반된 아이디어를 뛰어넘는 전혀 새로운 차원의 아이디어를 합성해냈다.
나는 이런 사고 과정,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처럼 깊이 사고하고 합성하는 과정을 ‘통합적 사고’라고 부른다. 이는 비범한 기업과 그 비즈니스를 이끄는 사람의 특징이다.”
이사도어 샤프. 포시즈스 제국을 세우다
통합적 사고는 이사도어 샤프Isadore Sharp가 세계에서 가장 큰 최고급 호텔 체인 포시즌스 호텔을 설립하여 성공적으로 키울 수 있었던 원동력이다.
도심 외곽 길가에 자리한 작은 모텔과 도심의 대형 컨벤션 호텔은 당시 전 세계 호텔업계를 장악했던 주력 사업 모델이었다. 투숙객 입장에서는 작은 모텔의 친밀감과 안락함, 그리고 큰 호텔의 지리적 장점과 다양한 편의 시설 중에서 선택할 수 있는 이점이 있었다. 그러나 두 종류 호텔의 가장 큰 장점은 서로 물과 기름 같아서 어느 호텔도 두 가지 장점을 모두 제공할 수는 없었다. 호텔업계의 거의 모든 종사자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두 모델 가운데 하나를 선택했고, 그런 선택에 따르는 약점을 어쩔 수없이 감수했다. 하지만 샤프는 달랐다. 그는 각각 나름의 단점을 지닌 두 모델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고 다른 하나를 배제하지 않았다. 오히려 샤프는 상반되는 생각을 사용해서 소규모 모텔의 친밀함과 대규모 컨벤션 호텔의 편의시설을 함께 갖춘 호텔이라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창조했다.
샤프는 호텔업계를 지배하던 기존의 두 가지 주도 모델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는 것을 과감히 거부했다. 오히려 샤프는 두 가지 모델을 함께 고려하면서 그 상반되는 모델들 간의 긴장을 해소할 수 있는 창의적인 결정을 추구했다. 그가 염두에 둔 것은 ‘중간 규모의 호텔’이었다. 일정 수준 이상의 다양한 편의 시설을 제공할 수 있을 만큼의 규모가 되면서도, 친근감과 개인별 맞춤 서비스를 유지할 수 있는 규모의 호텔을 구상했다. 그러나 샤프와 투숙객들의 마음을 크게 사로잡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그 규모에는 도저히 넘을 수 없을 것 같은 경제적 장애물이 있었다. 고급 호텔보다 훨씬 적은 객실 수로는 그에 맞먹는 편의 시설을 운영하는 데 필요한 비용을 감당할 수 없었다. 하지만 샤프는 호텔 산업의 전통적인 경제논리를 탈피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포시즌스에서 경쟁 호텔들과는 차원이 다른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상당한 프리미엄 가격을 부과할 수 있을 것이고, 그 결과 최상의 편의 시설을 감당할 수 있을 만큼 객실 당 수입도 증가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고객들에게 높은 프리미엄 객실 요금을 당당하게 요구하려면, 먼저 높은 객실요금에 상응하는 전혀 다른 서비스를 제공해야 할 것이라는 점도 이해하고 있었다. 전혀 다른 서비스가 어떤 것이며 투숙객들은 그런 서비스를 어떻게 생각할까? 이 질문에 대답하려면 일반적인 호텔리어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생각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샤프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대부분이 비즈니스 여행객인 투숙객들에게 호텔을 예약할 때 무엇을 중시하는지 물어보았다. 고객들에게 마치 집에 있는 듯한 기분을 안겨줄 방법을 찾던 포시즌스는 샴푸, 24시간 룸서비스, 목욕 가운, 화장 거울, 헤어드라이어, 야간 구두닦이 서비스, 드라이클리닝, 다림질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첫 번째 호텔이 되었다.
래플리. P&G를 살리다
A.G. 래플리Lafley가 CEO로 취임했을 당시 대표적인 생활용품 생산업체인 P&G는 심각한 경영난에 허덕이고 있었고, 급기야 전임 CEO마저 중도 퇴임하게 되었다. P&G는 고객으로부터 외면받기 시작한 것이다. 각종 비즈니스 잡지에서는 오랫동안 소비재 시장에서 제왕으로 군림하던 P&G가 왕좌를 내줄지도 모른다고 공개적으로 의문을 제기하기에 이르렀다.
당시 그로서는 비용절감을 기반으로 한 적극적인 가격 인하 정책을 선언하거나, 혁신에 대한 집중적인 투자와 확실한 브랜드 차별화 그리고 프리미엄 가격 책정을 밀고 나가는 방안 중 하나를 택해야 할 상황이었다. 래플리는 둘 중 어떤 것도 선택하지 않았다. 엄밀히 말하면 둘 다를 선택했다. 그는 P&G도 원가를 절감하여 가격경쟁력을 갖출 필요가 있다고 결정했다. 이후 수년 동안 래플리는 경직된 계층적 관리구조를 일소하고 전사적 차원에서 기능 단위를 축소했다. 의욕적인 젊은 관리자들을 승진시켰고 능력 개발의 중요성을 강조했으며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임직원에게 현금 창출과 비용 절감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라고 다그쳤다. P&G가 설립된 이래 처음으로 디자인을 강조하면서, 브랜드를 강화하고 P&G 역사상 유례가 없는 최고가 제품의 탄생을 가능하게 할 혁신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을 개발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P&G는 3온스짜리 한 병에 무려 25달러나 하는 올레이 리제너리스트 스킨 크림 같은 프리미엄 제품을 출시하게 되었다. 사실 그런 가격은 예전에는 꿈조차 꿀 수 없었던 고가였다. 또한 P&G의 아시아 지역 총괄책임자로 승진한 다음에 소규모 팀을 환상적으로 이끌며 당시 일본과 홍콩에서만 유통되던 피부 관리 소형 브랜드인 SK II를 세계적인 유명 브랜드로 탈바꿈시켰다. 그 결과 판매는 20배나 증가했다.
P&G의 CEO가 된 래플리는 연결 개발C&D, Connect & Develop’이라고 부르는 전략을 통해 P&G가 혁신 분야에 비교적 적게 투자하고도 평균 이상의 성장을 거둘 수 있다고 판단했다. C&D 전략의 첫 번째 결과물은 저가의 전동칫솔인 ‘스핀브러시’였다. P&G는 상품화 초기 단계에서 그 기술을 작은 회사로부터 사왔다. 그 회사는 당시 어린이들 사이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자동으로 돌아가는 사탕인 스핀팝Spin-pop에서 그 기술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었다. P&G의 역할은 그 전동칫솔에 구강 건강 분야에서 소비자들의 사랑과 존경을 한 몸에 받던 자사의 상표명인 크레스트 브랜드를 붙여 미국 전역에 유통시키는 것이었다. 이 결합은 강력했다. P&G의 마케팅 능력과 유통 능력을 중소기업의 혁신과 결합시킨 이 시도는 채 4년이 지나기도 전에 1억6천만 달러짜리 제품 라인으로 발전했다. 이 일은 래플리도 인정 했듯이 혼자 해낸 것이 아니었다. 래플리는 유능한 동료들이 자신의 아이디어를 강력하게 추진할 수 있는 리더십 환경을 만들어 주었다. 그런 다음 그는 자신이 가진 신뢰와 권한을 사용하여 그 아이디어를 실현시켰다. 통합적 사고는 독불장군식의 영웅적 리더십과 구분되어야 하지만, 통합적 사고 역시 분명한 리더십 자질의 하나이다.
핸들링. 영화제를 꽃피우다
피어스 핸들링은 영화제 집행위원장 역할에 더없이 어울리는 사람이다. 핸들링이 1982년 TIFF, 즉 토론토 국제영화제의 구성원이 되었을 때 그 영화제는 고군분투하는 신생 영화제의 대표적인 모델이었다. 핸들링의 위원회는 토론토 영화제가 베니스, 베를린, 칸 등 최고의 유럽 영화제들이 누리는 것과 똑같은 열광과 주목을 끌기를 바랐다. 위원회 구성원들의 생각은, TIFF가 최고 영화제로 발돋움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대부분의 최고 영화제에서 수여하는 심사위원상을 부각시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칸 영화제 하면 황금종려상이 떠오르듯이 말이다.
심사위원제를 도입한 영화제는 세계 영화제를 이끄는 두 가지 주도 모델 가운데 하나였다. 하지만 명실상부하게 엘리트들로만 구성된 심사위원들은 영화제에 참여한 관객들과 영화제 사이에 틈을 만들었다. 핸들링은 엘리트 심사위원 중심의 진행 때문에 정작 티켓을 구매함으로써 영화제가 존립할 수 있도록 지탱해주는 관객들은 영화제가 진정한 자신들의 축제라고 느끼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반면 심사위원이 없는 영화제는 엘리트주의라는 요소를 제거하는 데 성공하여 영화제에 참석한 팬들에게 일종의 주인의식을 선물했다. 하지만 상이 없으면 영화제와 출품 영화들에 대중 매체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입소문’을 통해 널리 퍼뜨릴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었다. 그런 입소문은 TIFF 위원회가 간절히 바라던 것이었다.
해결책은 멀리 있지 않았다. TIFF는 공식적인 심사위원제도를 두지는 않았지만, 1978년 이래 영화제에서 가장 인기를 끌었던 출품작에 줄곧 시상을 해왔다. 하지만 TIFF의 관객들이 직접 투표로 뽑은 “관객상People's Choice Award”은 언론이나 영화제 참석자 혹은 TIFF 주최자들의 관심을 거의 사로잡지 못했다. 핸들링은 홍보만 잘 한다면 기존의 ‘관객상’이 입소문을 제조하는 확실한 장치가 될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TIFF는 관객들을 심사위원으로 만들 계획을 세웠다. 관객들의 심사 경쟁이 치열한 수상 경쟁을 기대하는 대중 매체의 욕구를 충족시키고 많은 기사거리를 제공할 것으로 판단했다. 또한 TIFF의 관객상은 배급업자들에게 영화의 흥행 가능성을 점쳐보는 명확한 판단 기준이 될 수도 있을 터였다. 뿐만 아니라 감독들도 전문가의 귀에 거슬리는 비평 대신 자신에게 쏟아지는 대중의 환호를 마다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관객상은 TIFF를 유명하게 만들었다. 1999년 미국의 가장 영향력 있는 영화비평가인 로저 에버트Roger Ebert는 인터뷰 중에 이런 말을 했다. “규모 면에서는 아직 경쟁이 안 되겠지만 토론토 국제영화제는 분명 칸 영화제보다 더 유익하고 더 중요하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