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상준(laughter@yes24.com)
베트남 전쟁은 그것이 함축하고 있는 세계사적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해 보편적인 한국인이 가지고 있는 지식과 이미지는 매우 산만하고 편향되어 있는 듯 보인다. 수없이 많은 베트남 관련 미국 영화가 새겨놓은 이미지에 압도되어 있는 탓이 크겠지만, 무엇보다도 제대로 된 베트남 전쟁과 관련한 서적이 없었다는 점이 주된 이유일 것이다. (물론 70년대 대학생의 세계관을 바꾸어 놓았다고 전해지는 이영희 선생의 『전환시대의 논리)나 최근 이산출판사의 『새로 쓴 베트남의 역사』 같은 책은 베트남 전쟁에 대한 통찰력 있는 시선을 던져주고 있지만, 베트남 전쟁에 대한 부분은 해당 책에 몇 장을 차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을유문화사에서 출간한 『베트남 10,000일의 전쟁』은 뜻 깊다. 이 책은 캐나다 CBC의 베트남전 종군 기자 출신 마이클 매클리어가 1981년에 썼다. 저자 자신이 직접 제작에 관여한 열 세 시간짜리 `베트남 전쟁 대하' 다큐멘타리 시리즈에 기초해서 쓰여진 이 책은 100여 명의 베트남전 관련 인사들의 인터뷰가 더해져, “미국이 베트남전에 왜 참전했는지와 오늘날 미국과 베트남, 베트남전에 관여한 국가와 국민들에게 베트남전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호치민(1891~1969). 그는 공산주의자였다기보다 독립된 조국의 해방을 위해 공산주의를 택한 청렴한 민족주의자였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621페이지 분량의 이 책은 1959년 이래 베트남전을 현장 취재해온 저자의 체험과 그 전쟁에 얽힌 각양각색의 인물들의 목소리가 잘 정돈되어 담겨 있다. 베트남이라는 아시아의 조그만 땅덩어리를 마치 체스판인양 생각하고 있었던 듯 싶은 백악관과 펜타곤의 정책 입안자들. 그 의미도 알지 못한 채 전장의 한 가운데 떨어뜨려져야 했던 평균 19살의 앳된 미국 마이너 사회의 청년들. 중국과 프랑스, 일본에 이어 자신들만의 독립 국가를 건설하는 데 훼방꾼으로 개입한 미국에 대해 초인간적인 저항으로 믿어지지 않는 승리를 거두었던 북베트남 지휘부와 인민, 게릴라들. 태생적으로 명분과 정통성이 없었던 남베트남 정부를 부패와 무능, 무책임으로 일관한 채 파멸로 이끈 남베트남 관료와 군부 세력들. 미국 내에서 반전의 기치를 높였던 신좌파 정치인, 68년의 젊은이들, 참전 상이용사들 등등.
이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통해 저자가 내리고 있는 결론은 이렇다.
미국은 베트남의 공산화를 막지 못하면, 주변의 라오스, 캄보디아, 미얀마, 필리핀, 더 나아가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까지도 그 영향권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는 `도미노 이론'의 가정에 너무나 심취한 나머지 개입해서는 안 될 전쟁에 개입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보다 더 나아가 백안관의 정책 담당자들은 베트남전 개입 초기 이미, 전쟁을 통해 자신들의 의지를 관철시킬 수 없음을 당시의 정황과 여러 자료 등을 통해 감지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의 정치적 입지에 대한 고려 때문에 그 즉시 발을 빼지 못하고, 애꿎은 수많은 베트남인들과 자국인들의 희생을 증가시킨 것에 대한 분명한 책임을 가지고 있다고 비판한다.
사이공 함락일, 마지막으로 미대사관을 떠나는 헬리콥터
미군이 베트남에서 최종 철수(1973년)한 지 거의 30년이 지난 지금,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라는 나라를 침공하기 위해 의회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어처구니 없게도 80%의 미국민들이 부시의 결정을 지지한다는 여론 조사 결과가 나왔다. 물론 그들은 대이라크 전쟁은 베트남과는 그 성격이 다를 것이고, 이번에는 초강대국 미국의 의지를 관철시킬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러한 주장의 근간에는, 미국은 신의 선(善)의지를 세상에 구현시킬 수 있는 유일한 국가라는 미국의 `자부심'이 놓여 있다.
이 책이 가진 의미 중 하나는 미국의 자부심이라는 것이 얼마나 기만적이고, 엄청난 희생을 초래할 결과에 대해 그들이 얼마나 무책임할 수 있는지 확인시켜주는 것에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