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서 미술교육을 전공했고 지금은 어린이책에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언젠가 어른과 어린이가 함께 읽고 공감할 수 있는 책을 만들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그린 책으로는 『양반에서 노비까지 조선의 신분제도』, 『엽전과 함께 굴러가는 조선의 경제』, 『붓끝에서 묵향으로 피어나는 우리 그림』, 『블랑카 플로르』,『엄마 찾아 삼만 리』, 『풀을 엮어서 은혜를 갚다』 등이 있습니다.
“좋아요. 제 할 일은 제가 할 테니까 걱정 마세요.” 나는 미소까지 날리며 자신 있게 말했다. 고모가 의외라는 듯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내가 뭐 징징거릴 줄 알았나 보지? --- p.24~25
“저도 나중에 고모처럼 혼자 살고 싶거든요. 혼자 잘 사는 방법 좀 알려 주세요.” “혼자 잘 사는 방법? 글쎄다. 네 눈에는 내가 혼자 잘 사는 걸로 보이니?” 뭐, 집 안이 쓰레기통 뺨치게 지저분한 거, 고장 난 텔레비전을 방치하는 것만 빼면. “특별한 방법은 없어. 내 일만 생각하고 살면 돼. 바빠서 다른 사람들은 보이지도 않지만.” --- p.77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어. 왜 혼자 살려고 그러는지 말이야. 우리 삼촌은 서른네 살인데 절대 결혼 같은 거는 안 하고 혼자 살겠대. 그래서 그런지 내가 며칠 같이 지내 보니까 삼촌은 자기밖에 모르더라고. 삼촌 배만 부르면 나한테는 밥을 먹었는지 배는 고프지 않은지 물어보지도 않아. 오늘 아침만 해도 그래. 똥이라는 게 사람에 따라 오래 누는 사람도 있고 금방 누는 사람도 있잖아? 그런데 다른 사람 똥 누는 그 시간을 못 기다려서 난리더라고. 우리 시골집에서는 여덟 식구가 화장실 하나를 쓰는데도 얼마나 잘 참아 주는데.” --- p.91
“알아서 뭐하려고? 너는 남의 일에 참견하는 그 버릇 좀 버려. 여기는 혼자 사는 사람들이 많은 아파트야. 어쩔 수 없어서 혼자 사는 사람들도 있지만 남에게 간섭받기 싫어서, 자유롭고 싶어서 혼자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야. 전에 내가 말했지? 나도 혼자 살고 싶다고. 나는 너처럼 남의 일에 시시콜콜 간섭하고 참견하는 아이 정말 싫어.” --- p.129
“내가 볼 때 여진이 너는 혼자 살기는 힘들 거 같다.” 팥죽을 떠먹으며 호진이가 말했다. “남의 일에 관심을 갖는 걸 보면 말이야. 솔직히 우리 삼촌이나 너네 고모한테 22층 할아버지 얘기를 해 봐라. ‘그래서? 직장에 다니지 않는 사람이 꼭 시간 맞춰 나올 필요는 없잖아?’ 단박에 이렇게 말할 거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모두 눌렀다고 하면 ‘그래서? 어른이라고 엘리베이터 장난하지 말라는 법이 대한민국에 있니?’ 이렇게 말할 테고.” --- p.138
“우리가 참견할 일이 아니야. 그러니까 너희들도 이 시간 이후부터는 관심 끊어.” 고모와 호진이 삼촌은 어느새 같은 편이 되어 나와 호진이에게 협박하듯 말했다. “우리끼리 하자. 너네 삼촌과 우리 고모도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걸 보니 확실해. 다만 어른들은 이것저것 걸리는 게 많아서 쉽게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것 같아.” --- p.169~170
지저분한 거 참고, 불편해도 참고, 외로울 때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 행동하고, 뻔뻔하고, 남의 일에 절대 간섭하지 않고 그렇게 혼자 사는 것보다 지저분하면 같이 치우고 고장 난 물건도 함께 고쳐 쓰고 할머니가 좋아하는 고구마 삶아 먹으며 이야기 나누고 사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 일에 슬슬 참견해 가며 말이다. 아, 그거 재미있겠다. 나는 지금껏 할머니 질문에 대답하는 것만 귀찮아했지 내가 할머니를 귀찮게 구는 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풋! 할머니 기다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