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카페 노스탈지Cafe Nostalgie
생 마르탱 운하에 가보았느냐고 친구들이 물어오면 나는 얼른 하던 얘기나 계속하라며 그 순간을 얼버무리곤 했고, 그때마다 피할 수 없는 숙제를 떠안은 기분이었다. 가봐야지, 내일이라도 당장 가야지, 하는 마음의 숙제. 솔직히 파리 지도(서울에 비해 얼마나 작은지 아담하다는 느낌조처 든다)를 펼쳐 운하를 찾아본 적은 있었다. 지도 속에선 별것도 아니었는데……. 하지만 플로렐이 목소리를 높여가며 이야기하는 카페가 대체 어떤 곳인지 정말로 궁금해졌다. 나는 슬그머니 혼자 그곳을 찾아갔다. 스스로 내켜서 가는 게 아니었던 터라, 내 발길은 거북이걸음마냥 느릿느릿했다. --- p.21, '오텔 뒤 노르 Hotel du Nord'
오랜만에 혼자 모스케를 찾았던 이른 봄날, 문득 옆 테이블 사람들의 대화가 들려왔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인 듯, 시나리오에 대해 토론을 하다가 촬영 장소로 화제가 흘러갔다. 누군가 이곳에서 영화를 찍고 싶다고 말을 꺼낸 것이다. 잠시 동안 그 사람들의 수다를 엿들으며 혼자 킥킥거리다 번쩍 정신이 들었다.
맙소사. 어느새 내 테이블에 손님이 와 있다. 엉뚱한 생각을 하느라 과자접시에 참새들이 몰려든 것도 몰랐던 것이다. --- p.37, '라 모스케 La Mosquee'
2장 카페 인텔로Cafe Intello
입구에 무겁게 드리워진 진청색의 긴 벨벳 커튼마저 나를 망설이게 했지만, 용기를 내어 ‘편집자들의 세계’에 뛰어들었다. 밖에서 느끼던 것과 달리 실내 분위기는 아주 편안했다. 사각 테이블과 둥근 의자, 책으로 빽빽한 서가의 앙상블은 모던하지만, 막상 앉으니 오래된 도서관에 온 것 같은 편안함이 느껴졌다. 실제로 서가에 있는 책은 마음대로 꺼내 읽을 수 있다. 말하자면 이곳은 북카페로, 책을 읽거나 노트북을 켜놓고 일하는 손님들이 많다. --- p.41, '레 제디퇴르 Les Editeurs'
파리 카페들은 다양한 문화 행사를 열며 자신만의 특성과 전통을 확고히 다져왔다. 카페에서 즐길 수 있는 다양한 행사 가운데 파리에 가장 어울릴 만한 것으로, ‘카페 필로Cafe Philo’ 문화가 있다. 카페에 모여 철학토론을 하는 것으로, 토론 주제를 카페에서 미리 고지하기 때문에 관심 있는 사람은 정해진 시간에 그곳에 가기만 하면 된다. 물론 주머니에 커피값 2유로 정도는 지참하고서. --- p.47, '르 카페 데 파르 Le Cafe des Phares'
운 좋게도, 파리에서도 가장 집값이 비싸다는 이곳에서 나는 일년 동안 산 적이 있었다. 친구가 방을 세놓고 남미로 간 덕이었다. 그런데 이 동네, 조용하긴 하지만 엄청나게 깐깐하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이웃들을 만나면 노신사가 “마담!”(‘봉주르’보다 더 격식 있는 인사) 하고 인사를 건네는데, 그가 정중하긴 하지만 무척 까탈스러운 사람이라는 사실은 표정만 봐도 알게 된다. 같은 아파트에서만 20~30년을 살다보면 이웃집 수돗물 소리까지 신경에 거슬리고 짜증이 나는 법. 그것까지는 어쩔 수 없지만 온 동네가 자기 집인 것처럼 호통을 쳐댈 때는 조금 골치가 아파온다. 그렇지 않아도 숙제 때문에 머리가 지끈거리는데, 이웃의 잔소리까지 들어야 하다니.
그럴 때는 과제물을 싸들고 슬그머니 밖으로 나가곤 했다. --- p.63, '라 로통드 드 라 뮈에트 La Rotonde de la Muette'
예정된 시각이 10분쯤 지났을 때, 주인이 손님들에게 알렸다.
“자, 이제 밑으로 내려가실까요?”
그러자 모두들 지하로 내려갔다. 좁은 계단을 내려가니, 놀랍게도 연극 무대처럼 꾸며진 방이 나타났다. 낭독자는 무대에 서고 사람들은 모두 의자에 앉았다. 무대에 조명이 비춰지고 객석은 어두워졌다. 효과음악을 넣어주는 사람이 뒤쪽에 앉아 이따금 악기를 두드렸다. 그는 문학작품을 읽어주는, 말 그대로 ‘책 읽어주는 남자’였다. 그가 정확한 발음으로 읽어주는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우습게도 그의 유창한 프랑스어 실력에 질투가 느껴졌다(물론 그는 프랑스인이다!). --- p.76, '로그르 아 플륌 LOgre a Plumes'
3장 카페 뮤직 Cafe Musique
“그러니까 이곳이 파리에 들어선 첫 번째 음악카페인 셈이지요. 20년 됐어요.”
혼자 온 젊은 사람들이 바 둘레에 말없이 앉아 있었다. 바는 모서리가 둥글고 길쭉해, 서로 마주보고 앉을 수도 있다.
“그렇군요. 혹시 아저씨도 뮤지션인가요?”
“20년 전 나는 딸을 둘이나 잃었어요. 사고로 말이죠. 그래서 떠났어요. 세계를 그냥 돌아다녔지요. 그러다 음악하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문득 그들이 와서 노래할 수 있는 곳이 있으면 좋겠다 생각했죠. 그래서 돌아와 이 카페를 열었고, 그들이 오기 시작한 겁니다.”
슬픈 이야기였다. 그러나 해피엔딩… 아델은 이 카페를 열면서 인생의 의미를 다시 발견했다. --- pp.82~83, '셰 아델Chez Adel'
4장 카페 갤러리 Cafe Galerie
생 제르맹 데 프레 교회 뒤쪽에서 센 강 쪽으로 꺾어지는 일대. 거기 골목들은 아무리 봐도 싫증이 나지 않는다. 갤러리와 고급 원단 가게가 많아 거리 전체가 화사한 한 폭의 풍경화 같다. 그 우아한 색깔과 멋이라니! 평소 그런 것들에 관심 없는 사람도 한 번쯤은 눈길이 멈춰질 것이다.
그곳에서도 특히 자그마한 갤러리들이 모여 있는 센 거리rue Seine는 최근의 그림 경향을 알 수 있는, 파리에서도 가장 눈여겨볼 만한 곳이다. 바로 이 거리에, 주변의 다른 풍경들과 절묘하게 어울리는 카페가 하나 있다. 라 팔레트La Palette. 오래된 아틀리에처럼 짙은 물감 냄새가 느껴지는 곳. --- p.97, '라 팔레트La Palette'
나는 밖에 선 채 카페 안을 기웃거렸다. 벽을 빙 둘러서 그림이 꼼꼼히 걸려 있는데, 갤러리처럼 그림 사이의 간격과 배치 형태에 신경 써서 제대로 전시한 것 같은 인상이 확연했다. ‘갤러리 카페의 정석’이랄까. 궁금함을 이기지 못한 나는 슬며시 안으로 들어갔다.
“전시 기간은 보통 한 달이에요. 벽 사용료 150유료와 오픈 파티 비용으로 300유로 정도가 들지요. 저희가 모두 준비를 해준답니다. 그림 판매 수입은 완전히 작가 몫이고요.”
주인이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실내는 무척 환하고 아기자기해서, 영국식 살롱에 온 듯한 기분이었다. 활기차고 열정적인 주인의 스타일이 느껴졌다. --- pp.111~112, '모가도르Mogador'
5장 카페 뮤제Cafe Musee
멋들어진 두 개의 박물관이 나란히 샤이오Chaillot 궁전 정원을 바라보며 서 있는 장면은 상상만으로도 멋지다. 두 박물관 사이에 있는 넓은 테라스 끝으로 다가가면 샤이오 정원이 한눈에 들어온다. 파리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전망으로 손꼽히는 곳이다. 박물관이 약간 높은 곳에 위치해 있어 그야말로 그림 같은 장면을 위에서 내려다볼 수 있다. 정원을 가로질러 그 건너편에는 에펠탑이 서 있는데, 정원으로 내려가면 에펠탑까지 이어지는 길이 나온다. --- p.119, '카페 카를뤼 Cafe Carlu'
햇빛 좋은 날, 이곳 회랑의 풍경은 압권이다. 루브르의 피라미드가 바로 내다보이는 테라스에는 의자가 모두 난간을 향해 놓여 있다. 그곳에 앉아, 거칠 것 없이 들어오는 햇살을 즐기는 사람들로 빈자리가 없을 정도다. 근처의 고급 공무원이나 세계 유명인사들, 모델, 관광객으로 항상 붐비기 때문에 여간해서는 한가하고 조용한 틈을 만나기가 어려운 곳이다. 하지만 추운 겨울, 햇빛이 없을 때 가면 그 넓은 테라스를 혼자 차지할 수도 있다. 겨울에도 그곳은 열려 있으니 걱정할 것 없다. --- p.131쪽, '르 카페 마를리 Le Cafe Marley'
6장 카페 뷔 Cafe Vue
서가를 가득 메운 3,000여 권의 책들! 커다란 저택의 서재 같기도 하고, 도서관 같기도 한 방이었다. 책들은 5유로 정도의 보증금을 맡기고 대여할 수도 있는데, 다 읽은 후에는 다른 책과 바꿔 빌릴 수 있다고 한다. 내게도 넘치는 시간이 있어 커피를 마시며 여기 있는 소설들을 한 권씩 한 권씩 읽을 수 있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 p.155, '르 퓌므와르 Le Fumoir'
몽마르트르에 와서 목적지를 잃었다면 고민할 것 없이 그냥 이곳으로 발길을 옮겨도 좋다. 길가에 창문을 내고 손님들에게 직접 구워주는 딸기잼 크레프 향기와 발랄한 피아노 소리에 이끌려 문으로 들어서면, 이곳이 파리인지 시골 농가인지 모를 포근한 풍경이 펼쳐진다. 그리고 그림 속에서 막 빠져나온 듯 생생한 표정의 직원들이 당신에게 인사를 건네면 당신은 어제도 이곳에 왔던 사람처럼 자리에 앉는 것이다. 그러면 알게 된다. 왜 사람들이 이곳에 올 수밖에 없었는지. --- p.163, '라 페토디에르 La Peaudiere'
어느날 말 그대로 상상하지 못했던 장면이 내 눈앞에 열렸다. 골목길에 씌어 있는 표지판을 따라 들어간 생 폴 빌라주.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시골 마을 같다고 해야 할지, 중세로 거슬러 올라간 느낌이라고 해야 할지, 영화 세트 같다고 해야 할지……. 나는 그저 신기한 생각에 망연히 바라보기만 했다. 마치 깜짝쇼 같았다. 믿겨지지 않는 풍경을 눈앞에 두고 나는 내 머리만 탁탁 쳤다. --- p.171, '몽테카오 Montecao'
7장 카페 컬쳐 Cafe Culture
이 카페야말로 파리에서 가장 이색적인 카페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이름부터가 길고 특이한데, 알고 보면 간단하다. ‘Parloir’는 봉쇄수도원에서 수도자들이 일반인들을 만나는 곳, 즉 면담실이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조용하게 대화를 나누는 장소를 의미한다. 그 다음 ‘Vieux Colombier’는 이 카페가 위치해 있는 길 이름이다. 데카르트 길에는 데카르트 카페가 있고, 생 제르베 길에는 생 제르베 카페가 있듯이. 사람들은 이곳을 그냥 파를르와르라고 부른다. --- p.187, '오 파를르와르 뒤 뷰 콜롱비에 Au Parloir du Vieux Colombier'
메뉴를 펼치는 여행가와 탐험가 이름을 딴 메뉴들이 익살스럽게 나를 반긴다. 굉장히 많은 음료가 마련되어 있고, 15~18유로 정도면 프랑스 가정식을 먹을 수도 있지만 나는 박하차를 골랐다. 점점 축축해지는 날씨 때문인지 따끈한 박하차가 마시고 싶었다. 그런데 접시에 이상하고 작은 덩어리 하나가 같이 나왔다. 이게 뭘까 아무리 봐도 모르겠기에 인상 좋은 언니에게 물었다. “아, 이거요? 생강 조림이에요. 넣으시면 더 맛있어요.” 세상에, 생강을 못 알아봤다니! --- p.198, '르 장고 Le Zango'
그때부터 나는 랑트르포에서 하는 모든 프로그램을 살펴보기 시작했고, 저녁에 외출하고 싶을 때도 어디로 가야 할지 고민하지 않았다. 그곳에 가면 항상 낮과는 다른 뭔가가 있기 때문에…….
꼭 랑트르포가 아니어도 좋다. 파리의 카페는 밤에도 들러봐야 한다. 특히 여행자라면 낮과는 정반대인, 그 역동적인 분위기에 흠뻑 취하게 될 것이다.
--- p.219, '랑트르포 Lentrep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