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을 이동하는 순례는 내면의 여행을 겉으로 드러내는 상징적인 행위이며, 내면의 여행은 외적인 순례에서 발견하는 의미와 신호를 토대로 내면을 알아 가는 과정이다. 두 여행 중 하나만 해도 되지만 둘 다 하는 것이 제일 좋다” -토머스 머튼, 1964 --- ‘머리말’의 인용문
1971년 1월 16일 금문교 밑에서 일어난 기름유출 사고는 내 가슴에 깊이 박혀 내 삶에 돌이킬 수 없는 변화를 일으켰다. 한국 태안 앞바다의 허베이 스피리트 호 기름유출 사건 역시 한국인들의 가슴에 깊이 각인되어 있을 것이다. 나의 여정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이 책의 한국어판을, 한국 서해안의 위기를 극복하려고 애써온 태안의 주민과 자원봉사자들께 바친다. 그들의 아름다운 여정에 함께 동참하는 사람이 보내는 지지와 공감의 표시로 받아들여 주길 바란다. --- ‘한국의 독자들에게’에서
이처럼 별로 소용없는 노력을 기울이는 장면은 보기에도 괴로운 스냅사진으로 남았다. 보리나스 늪가에서는 머리카락이 허리까지 내려오는 젊은 여자가 목 깊이까지 오는 시커먼 물속에 들어가 불쌍한 새들을 꺼내 주려 했다. 하지만 새들은 그녀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려고 흠뻑 젖은 날개를 펄럭이다 수면 아래로 더 멀리 미끄러져 가 버렸다.
해변에서는 삽과 갈퀴를 든 일꾼들이 헬리콥터와 소형 비행기로 기름 위에 투하한 짚을 모았다. 한 노인이 모래 위에 무릎을 꿇고 우는 사이 시커멓게 변한 농병아리 한 마리가 그의 손 안에서 죽었다. --- 제1장 ‘기름과 물’에서
첫 도보여행을 떠날 때는 발이 편한 운동화를 신고 가벼운 배낭을 가져가라. 하루에 걷는 거리를 늘리려거나 무거운 짐을 들어야 한다면 발에 가해지는 압력을 견디고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등산화를 구입해라. 옷을 여러 겹으로 입고, 물과 열량이 높은 과자와 작은 손전등을 가져라가. 어쩔 수 없이 생길 물집을 가라앉히는 데 쓸 반창고도 몇 개 챙겨라. 즐거운 여행이 되길! --- 제1장 ‘기름과 물’에서
운전을 하지 않겠다는 결정을 어떻게 생각하시냐고 여쭤 보니, 어머니는 괜찮다고 대답한다. 그러면서도 나를 위해서라기보다는 어머니 스스로를 안심시키기 위해 이렇게 덧붙인다. “걱정 마라. 다시 차를 타게 될 테니까. 너는 잠깐 그러다 말게다.”
다음날 길가에 있는데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차 한 대가 지나갈 때마다 세상이 나를 뒤로 하고 휙휙 지나가는 기분이다. 혹시 내가 순전히 내 고집 때문에 다시는 차를 타지 않고 걷기만 하려는 것은 아닐까? 걷기 시작한 지 두 달쯤 되었는데도 벌써 지쳐 간다. --- 제2장 ‘길에서 살기’에서
주위를 둘러보며 걸어라. 지금 있는 곳이 어디인지 따져보고 전에는 어디에 있었는지 돌이켜보라. 현재의 매 순간에 변화를 위한 기회의 씨앗이 있다. 당신의 삶은 모험이다. 마음껏 즐기면 살아라. --- 제2장 ‘길에서 살기’에서
어느 날 나는 시험 삼아 내년 생일이 돌아올 때까지 침묵을 연장하기로 결심한다. 침묵의 장점을 많이 생각해 보고 내린 결정이며, 쉼 없이 되풀이되는 내면의 투쟁을 끝내기 위한 결정이다. 또한 침묵을 이성적인 결단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이기도 하다. 아직도 머릿속에는 천 개도 넘는 미완성의 대화와 풀리지 않는 의문이 요동친다. 입을 다물기만 하면 신비로운 마음의 평화와 행복이 찾아오리라는 생각은 저절로 사라진다. 나 자신의 생각조차 불협화음을 이루는데 더 말해 무엇 하랴. --- 제3장 ‘대나무와 침묵’에서
걷기와 침묵은 나를 구원해 주었다. 걷기와 침묵은 속도를 늦추어 다른 사람들을 쳐다보고 그들에게 귀를 기울이게 해 주었다. 그리고 나 자신을 바라보고 나 자신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기회를 준다. --- 제3장 ‘대나무와 침묵’에서
아버지는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며 직접적으로 이야기한다. “굳이 네 목에 무거운 돌을 매달지 않아도 흑인으로서 세상을 살아가는 일은 녹록치 않아. 그런데 넌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거냐? 얘야 이 바보 같은 짓을 제발 그만둬라. 다시 운전을 하고 뭐라고 말을 좀 해 봐라. 지금 이 순간에도 너는 아무 말 안 하고 있잖니.” --- 제7장 ‘반성의 학교’에서
나는 느긋하게 출발한다. 처음에는 세차게 쏟아지던 빗줄기가 점점 가늘어져 소나기처럼 된다. 하늘은 연한 푸른색으로 바뀌었다가 다시 회색으로 변한다. 나는 초원을 가로질러 천천히 걸어간다. 때로는 높이 천 미터가 넘는 산을 오르고 내 앞에 놓인 길을 따라 걷는 것만으로도 더없이 기분이 좋다. 때로는 진흙탕이 된 길에서 젖은 풀잎과 자주색, 황금색 야생화를 스치면서 강행군을 해야 한다. --- 제9장 ‘북쪽으로 가는 길’에서
“나는 요즘도 매일 널 위해 기도하지만 네 걱정은 점점 줄어든단다. 네가 하나님께서 주신 일을 하고 있든가 아니면 하나님께서 너를 통해 일을 하고 계신다고 생각해. 아, 물론 처음엔 나도 네가 미친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지.” --- 제10장 ‘라 자바’에서, 어머니가 한 말
당신의 감정을 파악하라. 기쁜 마음뿐 아니라 두려움도 살펴라. 길 위에서 생기는 두려움은 내면의 여행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신호일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고 두려움에 완전히 사로잡혀서는 안 된다. 두려움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최대한 용기를 내고, 떨리는 가슴 속에 감춰진 교훈에 귀를 기울여라. 두려움이 사라지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라. --- 제14장 ‘옐로스톤과 평원’에서
길을 걸을 때 우리는 자신과 대면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가서는 우리가 편을 갈라 싸울 필요가 없고, 국가의 적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과 말다툼을 벌일 필요도 없음을 깨닫는다.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죽음뿐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이 좁은 행성에서 이 귀중한 순간을 평화롭게 살아갈 기회가 아직 열려 있다. 걷기만 한다면 가능한 일이다. --- 제20장 ‘OPA 90’에서
1971년 샌프란시스코 만에서 일어난 기름유출 사고를 목격한 후 존 프란시스의 삶에는 돌이킬 수 없는 변화가 일어났다. 그는 방제작업을 돕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우리가 사는 지구를 건강하게 만들 독자적인 방법을 모색했다. 결국 그는 전통적인 방식과 다른 답, 그리고 상당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 답을 찾아냈다. 기름으로 움직이는 모든 동력운송수단 이용을 포기하고 어디든 걸어다니기로 한 것이다. 몇 달 후에는 침묵의 맹세까지 했다. 가족과 친구들은 그의 정신건강을 염려하기까지 했지만, 유려한 문장으로 쓴 이 회고담이 보여 주듯 이러한 과정은 지혜를 얻기 위한 30년간의 순례에서 첫 단계에 불과했다.
이 책은 독특한 충동에 이끌려 놀라운 결단력과 신념으로 자기희생을 감내하는 여행을 떠나기로 했던 한 남자의 이야기다. 존 프란시스는 22년 동안 걸어다니며, 산을 오르고 메마른 사막을 건너고 태평양에서 대서양까지 미국을 구석구석 살폈다. 나중에는 쿠바와 브라질을 도보로 횡단하고 알래스카와 남극까지 방문했다. 여행 중 대학 공부를 마치고, 석사학위와 토지자원 분야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1년 UNEP(유엔환경계획)의 세계 풀뿌리 공동체를 담당하는 친선대사로 임명되어, UNEP의 홍보와 환경교육을 위한 프로그램을 개발하였다. 22년이라는 세월을 거치며 존 프란시스는 환경 분야의 권위 있는 학자가 됐고, 교사가 됐고, 지도자가 됐다. 프란시스는 이 흥미롭고 감동적인 이야기를 통해 더 건강한 지구와 지금보다 덜 이기적인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 일에 우리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기여할 수 있다는 희망을 불어넣어 준다.
--- 뒤표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