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위해 죽으신 나의 주인님, 몸밖에 드릴 것 없어 이 몸 바칩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의 현실 목표와 이해득실은 깊이 생각하지만, 예수는 깊이 생각하는가? 그러나 기독교 역사상 참으로 예수를 깊이 생각한 인물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그리스도를 본받아』라는 저서로 유명한 토마스 아 켐피스이다.
그는 평생의 삶을 통해 그리스도를 깊이 묵상한 사람이다. 이 책(『주인님, 나를 바칩니다』)은 복음서 전체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삶에 대해, 특히 그리스도의 수난에 대해 깊이 묵상한 책이다. 한국에서는 『그리스도를 본받아』만 많이 알려졌지만, 그에 못지않게 그가 심혈을 기울여 저술한, 복음서를 놓고 그리스도의 생애를 묵상한 ‘그리스도의 삶 묵상’ 시리즈는 한국 기독교에 전혀 소개되지 않았다.
토마스 아 켐피스는 자신의 제자들에게 경건의 훈련을 시킬 때 두 가지 텍스트를 사용하였으니, 하나는 『그리스도를 본받아』이고 다른 하나는 ‘그리스도의 삶 묵상’이었다. 규장에서 ‘그리스도의 삶 묵상’ 시리즈 가운데 그리스도의 수난에 대한 묵상만을 묶어 『주인님, 나를 바칩니다』로 펴내어 한국 기독교에 처음으로 소개한다.
그런데 왜 우리가 그리스도의 수난을 깊이 생각(묵상)해야 하는가? 그리스도의 수난 사건은 나의 속죄(贖罪)를 완성하신 사건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수난을 묵상함으로써 바른 속죄론 위에 설 수 있다. 우리에게는 ‘바른 교리’(orthodoxy)가 필요하다. 그러나 ‘바른 교리’에만 그치고 말면 ‘죽은 정통’이 되기 쉽다. ‘바른 교리’는 반드시 ‘바른 실천’(ortho-praxis), 곧 ‘바른 삶’으로 우리를 인도해야 한다. 그러므로 오늘 한국 교회의 속죄론은 바른 교리에만 머물면 안 될 것이다. 속죄론은 반드시 자기를 부인(否認)하는 제자도(弟子道)의 삶을 제시해야 한다. 정통의 십자가 교리는 십자가를 지는 정통의 삶의 길로 우리를 인도해야 한다.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막 8:34).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갈 2:20).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갈 5:24).
토마스 아 켐피스의 이 책은, 그리스도의 수난을 묵상함으로써 주님의 은혜에 감격하여 매일 자기 십자가를 지는, 강력한 자기부인(自己否認)의 삶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그렇지만 이 삶이야말로 죽은 자 같으나 ‘사는 자’의 삶이고, 지는 것 같지만 ‘이기는’ 것임을 이 책은 강력히 확증한다.
이 책에서 예수님의 호칭인 ‘주’(主, Lord)를 “주인님”과 “주님”으로 병용했다. 특히 우리가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예수께 절대복종하는 신분에 있음을 잘 표현하기 위해서 “주인님”이라고 표기했다. 실제로 “주인님”으로 표기하는 것에서 오는 유익이 크다(이 책은 그리스도의 ‘Lordship’을 이해하는 데도 좋다).
우리가 왜 우리 ‘주인님’의 십자가 수난을 깊이 묵상해야 하는가? 우리 주인님의 마음을 본받아 아버지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함이다. 우리의 주인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아버지 하나님께 자신의 몸을 드리는 절대복종을 하셨다. 그렇다면 우리 주인님의 십자가 수난을 묵상하는 우리에게서는 어떤 열매가 나와야 하겠는가? 그리스도를 본받아 내 뜻보다는 아버지의 뜻에 복종하며, 나 자신을 매일 십자가의 산 제물로 바쳐야 할 것이다(롬 12:1 참조).
“제자가 그 선생보다, 또는 종이 그 상전보다 높지 못하다”(마 10:24)라고 예수께서 분명히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우리의 선생이요 주인님이신 예수님이 가시 면류관을 쓰셨으므로 우리도 가시 면류관이나 그보다 천한 것을 쓰기를 갈망해야 되는데, 오늘 우리가 너도나도 황금 면류관, 즉 세상 갈채의 면류관, 인기의 면류관을 탐하는 것은 웬일인가? 그러면서 정통의 교리, 정통의 속죄론을 주장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것은 ‘죽은 정통’이다. 바른 십자가 속죄론은 바른 십자가의 삶, 즉 자기 십자가를 지는 삶의 길로 우리를 인도해야 한다.
오늘 우리의 이런 현실에서 토마스 아 켐피스의 『주인님, 나를 바칩니다』는 우리를 우리 주인님께서 원하시는 바른 종의 길, 바른 제자도의 길로 인도해줄 것이다.
--- 편집자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