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아프리카를 동경한다. 그것은 아마도 때 묻지 않은 순수함과 원시의 아름다움 대한 그리움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프리카 여행을 꿈꾸는 젊은이에게 꼭 한마디 전해주고 싶다.
“되도록 가지 마라. 다만, 자신의 한계와 세상의 끝을 보고 싶다면, 그리고 그런 각오가 되어 있다면, 가라.”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하기 것’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로 가득 차 있다. 때문에 미지의 무언가를 찾아 헤맨다. 그런 사람들에게 아프리카만큼 적합한 곳은 없을 것이다. 아프리카는 여전히 우리에게 미지의 땅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프리카 여행은 반복되는 일상과 쉼 없이 밀려오는 일의 압박감을 훌훌 벗어던지고, 벌거숭이의 상태로 되돌아갈 수 있는 기회처럼 여겨진다. 끝이 없는 사막, 한번도 우리에 갇혀 본 적이 없는 맹수가 불쑥불쑥 나오는 초원 등 야생 그대로 '날것인 삶‘을 경험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오대양 육대주 중 아프리카만을 제외한 모든 땅과 물을 거쳐 왔던 나는, 육십의 나이에 유일하게 미답의 땅인 아프리카를 꿈꾸고 있었다.
멀고 먼 대륙 아프리카. 가고는 싶지만 쉽게 떠날 수 없는 곳. 그래서 언젠가는 꼭 가고야 말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품게 만드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아프리카는 인생의 희로애락을 모두 경험한 늙은 배우에게 태초의 쉼터가 되어줄 땅일 거라고 생각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하던가. 어디 가서 아프리카에 가고 싶다고 노래 부른 적도 없건만, 나의 남모를 열망이 우주의 기운을 한 데 모으게 했던지 EBS 세계테마기행 담당 PD가 연락을 해왔다. 여행지는 아프리카, 그중에서 아직 우리에게 낯선 나라인 ‘말리’라고 했다. 한참 인기 상종가를 치고 있는 드라마인 ‘대왕 세종’에서 비중 있는 역할을 맡고 있었지만, 아프리카라는 원시의 유혹에 흔쾌히 동행을 약속했다.
말리로 향하는 여정은 첫날부터 그리 순탄하지 않았다. 아프리카 대륙 중에서도 가장 오지라는 말리로 향하는 여행이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고, 그 정도의 각오는 하고 출발한 터였다. 게다가 아마존 밀림에서의 생활도 겪어봤던 나이기에, 돌고 돌아가는 여행길은 그저 사하라 사막이 국토의 반을 차지하고 있는 말리라는 나라가 지구 저편의 여행객에게 보내는 앙탈 정도로 생각하기로 했다.
하지만 그것은 너무나 안이한 생각이었다. 세상의 끝이자 아프리카의 오지라는 말리는, 고대 화려한 문명을 꽃 피웠던 나라라는 수식어가 무색하게, 육십 평생을 평범하지 않게 살아온 노배우의 상식으로도 감당할 수 없는 곳이었다.
보이는 것, 겪는 것, 어느 하나 쉬운 게 없었다. 끝이 날 것 같이 않은 힘든 노동을 하는 듯, 마음은 고통의 무게로 출렁거렸다. 그들의 삶에서 보이는 아련한 세월의 흔적과 아픔들이 나에게 욕지기 섞인 한탄으로 남겨졌다.
뼈만 앙상하게 남은 아이들, 무기력한 남자들과 노예처럼 일하는 아낙들의 퍽퍽한 삶. 그리고 여전히 민족간 분쟁이 끊이지 않으며, 점차 그 영역을 넓혀가는 메마른 사막과 가난이 지배하는 곳. 아프리카 말리는 모험가들이 동경하던 미지의 나라인 동시에 척박한 생활의 현장이었다.
말리 여행을 마치면서, 나는 아프리카에 대한 동경도 접었다. 야생 동물의 천국이라는 케냐, 세계 최고 휴양지 중 하나라는 튀니지, 아프리카의 유럽이라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햇살이 환히 비치는 땅이라는 뜻을 가진 아프리카, 그 달콤하고도 뜨거운 원시에 대한 열망은 척박한 삶의 현장 ‘말리’로 남았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참으로 묘하다.
문득문득 타마(Tama, 서아프리카의 대표 타악기로 ‘따망’이라고도 부른다)의 흥겨운 북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커피숍에 앉아 잠깐 담배 한 모금을 빨아들이면, 누런 먼지를 뚫고 수천 마리의 소 떼가 장관을 이루며 달려오는 모습이 떠오른다. 반디아가라 절벽 아래 사라진 문명의 흔적 사이에서 코란을 외우던 아이들의 순박한 눈동자가 아른거린다.
한없이 싫고, 미워했지만, 다시 추억을 하게 만드는 땅, 아프리카 말리.
나는 지금 그곳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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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간 말리에 다녀온 뒤 도심의 빽빽한 빌딩이 외려 낯설다. 당장 다시 아프리카로 돌아가고 싶은 심정까지는 아니지만, 금빛 넘실대는 니제르 강과 깎아지른 반디아가라의 절경, 끝도 없이 펼쳐진 사하라 사막 등 여정 내내 대자연 속에서 생활하고 보니, 서울의 빌딩 숲이 몸과 마음을 답답하게 만든다. 말리에 다녀온 뒤 한동안 잿빛 가득한 콘크리트 빌딩이 지겨웠던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었던 것 같다.
감히 몇 마디 하자면 아프리카는 있는 그대로의 장엄한 자연이다. 또한 인간들의 태초의 보금자리이다. 날것이 주슴 생경함과 극한의 미개함이 공존하는, 그런 대륙이다.
그렇다면 나에게 아프리카는 무엇인가? 아프리카 대륙 중에서도 가장 오지라는 말리를 다녀온 뒤, 나는 솔직히 아프리카의 ‘아’ 소리도 듣기 싫었다. 지인들이 아프리카에 대해 물으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정도였다. 게다가 육십 평생을 통틀어 육체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여정이었기에, 도대체 내가 무엇을 위해 그곳을 가겠노라 마음먹었는지도 가물가물 할 정도다.
하지만 이번 여정이 단지 늙은 여행자에게 너무 무리였다거나 혹은 여행 마니아가 못되기 때문에 너스레를 떠는 것은 결코 아니다. 서아프리카 말리는 그야말로 모든 것이 발가벗겨지는 곳이다. 문명도, 삶도, 인간의 한계도, 이 모든 껍데기들이 완전하게 벗겨지는 오지 중의 오지이기 때문이다.
우스개소리를 덧붙이자면 세계 100군데 이상을 다녔던 분쟁지역 전문 사진기자가 ‘말리 여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 오르니 정말 눈물나게 행복하더라’는 말을 했을 만큼, 말리는 여행자들에게 고단하고 척박한 여행지이다. 젊은 사람들도 이처럼 손사래 치는 곳 일진데 환갑의 늙은 여행자는 오죽했을까?
평균 45를 웃도는 뜨거운 날씨. 언제 사고가 터질지 모르는 불안불안한 택시, 열악하다 못해 상식적으로 도저히 납득이 안 가는 척박한 생활 환경, 그리고 사막 한 가운데를 횡단하며 죽음의 문턱을 넘나드는 공포감까지, 말리 여행은 여행이라기보다는 차라리 고행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는 ‘아’ 소리를 꺼내지 않겠다던 나는, 이렇게 아프리카 말리이야기를 길게 늘어놓고 말았다.
사나이로 태어났으니 최소한 5대양6대주는 모두 밟아보자는 야무진 꿈도 꿈이었지만, 원시적인 동경을 품고 있던 지역이 바로 아프리카였기 때문이다. 고단하고, 척박하고, 황당하고, 두려운 길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한국의 옛 모습이 교차되는 묘한 향수. 그게 바로 내가 동경하던 미지의 대륙이자 또 누군가가 동경할 아프리카의 ‘오늘’이기도 하다.
내 나이 육십에 다녀온 아프리카 말리 여정을 떠올리며 나는 뒤늦게 이런 말을 하고 싶다. 징글맞고 척박하며 고단한 여정이니 두 번도 필요 없다고. 대신 생에 단 한 번만은 꼭 다녀오라고.
--- pp.276-278, 에필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