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은 선뜻 쉽게 다가서기가 힘든 음악 장르다. 튜바, 트롬본, 파곳, 콘트라베이스 같은 입에 쉽게 붙지 않는 악기 이름과 <페트루슈카>같이 발음하기 힘든 곡이름은 우선 그 생경함으로 우리의 기를 죽인다. 또 넥타이와 정장을 차려입은 신사 숙녀가 아니면 들어갈 수 없을 것만 같은 클래식 콘서트홀이 주는 부담감 역시 클래식 음악에 쉽게 다가서기 어렵게 한다. 클래식은 무언가 어렵고, 고풍스럽고, 귀족적인 무게감이 느껴져 여전히 특별한 소수만이 즐기는 음악처럼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쿠르트 아저씨와 함께하는 음악의 세계』는 특별하고 박제된 음악처럼 느껴지는 클래식을 귀여운 아이들의 재잘거림과 웃음소리 속에 담아 부담 없이 전달해준다. 재미있게 즐길 수 있게 동화처럼 꾸며져 있어 어린이와 청소년을 주 독자층으로 한 책으로 보이지만, 클래식 음악에 문외한이고 애정이 전혀 없다고 생각하는 성인들도 부담 없이 읽으면서 클래식에 한 걸음 다가설 수 있다.(성인에게는 1권보다 2권을 권한다.)
렌조라는 폭스테리어 개와 함께 사는 쿠르트 아저씨의 집에 어느 날 알렉산더와 클라우디아라는 아이들이 찾아온다. 그 아이들은 쿠르트 아저씨가 음악에 대해 쓴 책을 읽으려 했는데 너무 어려웠다면서 자신 같은 어린이들이 읽을 수 있는 음악 책을 써달라고 한다. 아이들은 쿠르트에게 계속 찾아오고 쿠르트는 아이들과 더불어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고 아이들이 돌아간 후에 그날 나눈 이야기를 기록한다. 저명한 음악 전문가인 쿠르트 팔렌은 어린이들을 위한 음악 책을 하나의 동화처럼, 재미있는 소설처럼 써놓았다. 아이들과 음악에 대한 따스한 애정이 느껴지는 책 안에는 아이들의 속살거림과 웃음소리, 그리고 아름다운 음악이 가득하다.
우선은 소리와 음, 박자 같은 기본적인 개념을 다룬다. 걸음걸이를 통해 박자를 설명하고, 빨리 걷고 느리게 걷는 것에 따라 템포가 달라진다는 식으로 음악에 대한 설명은 아주 이해하기 쉽게 펼쳐진다. 아이들이 모두 오페라 가수가 될 것도 아닌데 음악에 대해 그렇게 자세히 알려줄 필요가 있겠느냐는 반론에 쿠르트 아저씨는 아이들이 음악에서 얻는 즐거움을 누리려면 아이들이 음악을 쉽게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답한다.
“아이들의 노랫소리는 정원 뒤쪽까지 번져갔습니다. 마치 이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이 내 뚱뚱한 친구인 개구리가 노래를 시작했어요. 그 개구리가 지휘한 곡이 혹시 돌림노래가 아니었을까요?” 이처럼 책의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동화 같은 표현과 소설적 상상력은 음악에 대한 지식과 이해를 넓히는 것 외에 또 다른 재미를 준다.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비유와 설명은 책의 뒤로 넘어가면서 내용이 점점 까다로워질 때 더욱 빛을 발한다. 빠르고 흥분된, 종종 섬뜩한 악장을 뜻하는 스케르초, 악기제조 기술자를 뜻하는 뤼티에(luthier) 등 이 책에서 종종 접하게 되며 전문성을 띠는 어려운 음악용어마저, 쿠르트 아저씨와 아이들이 주고받는 이야기를 따라 읽다 보면 쉽게 이해된다. 아이들이 의사를 만나 우리 몸이 소리는 내고 듣는 신비를 듣는 부분에서는, 우리 양쪽 귀의 달팽이관 속에 2만 개에 이르는 현을 가진 하프 같은 기관이 있어 소리를 듣게 해준다는 가설이 나오는데 진위 여부를 떠나 상상력과 호기심을 자극한다.
음악에 대한 기본이론과 용어, 악기 등을 설명한 1권을 지나 2권의 페이지들을 넘기고 있으면 어느새 책갈피 사이에서는 음악의 향기가 들리는 듯하고, 작곡가들이 창작의 고통 속에 신음하는 소리가 긴 시간의 벽을 뚫고 나온 환청처럼 귀를 두드린다. “아이들은 마치 마법에 취한 듯 보였습니다. 이토록 아름다우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겠죠. 아이들의 시선은 아주 가끔씩 현실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면 잠깐 동안 지휘자를 응시했죠. 그의 차분한 동작은 마치 시냇물에게만 소박한 길을 안내하는 듯이 고요하게 허공을 누볐습니다. 그가 새들의 노래를 표시하는 것처럼 보였을 때 지휘자의 손은 생기 있게 넘실거렸어요” 같은 상상날개를 펼친 묘사는 클래식의 세계를 매혹적으로 드러내 보인다.
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술피리>를 보러간 아이들에 대해 두 개의 장이 넘는 지면에 걸쳐 그려낸 부분을 읽다 보면, <마술피리>가 다시 무대에 올려지는 순간이 기다려진다. 작곡을 거의 한번에 쉽게 해낸 모차르트나 슈베르트의 악보는 지운 흔적 없이 깨끗한데, 베토벤의 악보는 창작의 고뇌 속에 무수히 지우고 고친 흔적이 역력하다는 것과 더불어 슈만, 쇼팽, 바그너, 베르디 등의 작곡가에 대한 간단한 소개가 이어진다.
아이들과 하루하루 만나면서 있었던 일을 기록하는 일기 형식으로 이루어진 이 책의 마지막에서 저자는 아이들과 매 달 만나기로 약속하면서도 헤어지는 것을 아쉬워한다. 그와 즐거웠던 오후 음악시간을 함께 한 축구광 소년 파트릭에게는 그 스스로 전혀 예감하지 못했던, 그러나 그가 좋아하는 축구와 나란히 설 수 있게 된 또 하나의 매혹적인 세계가 새롭게 열렸다. 바로 음악이 주는 즐거움의 세계이다. 따뜻한 손을 아주 강하게 흔드는 파트릭과 악수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음악은 언제나 있었고 앞으로도 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이 세상이 지금과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계속 음악으로 가득 차 있는 한, 세상은 젊습니다. 그리고 증오와 적대감이 없는 미래, 즐거움과 음악이 가득한 그런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가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