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 연구자 세 사람의 임상과 연구 경험 50년의 결과물로 나온 《생각만 하고 실행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변화 프로그램》은 아주 친절한 변화의 매뉴얼이다. 무조건 '하면 된다!'를 외쳐대는 대책 없이 낙관적인 변화 프로그램들도 많지만, 오로지 의지 하나에 기대어 이 악물고 덤벼드는 건 조금 무모하다고 지은이들은 말한다. 그러면서 변화의 과정은 어떤 단계들로 나뉠 수 있는지, 각 단계의 특징은 무엇이며, 단계별로 사용할 수 있는 기법으로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하나하나, 차근차근 설명해준다. 그러나 이 책만 있으면 어떤 변화든 식은 죽 먹기라고 호언장담하지 않는다. 변화는 어렵고, 도처에 난관이 도사리고 있으며, 언제든 재발할 우려가 있다고 솔직히 인정한다. 변화를 거부하는, 도전했다가 실패하는, 그리고 마침내 성공을 거두는 사람들을 현장에서 무수히 목격하고, 돕고, 상담해왔기에 지은이들은 실상을 너무나 잘 알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섣부른 약속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픈 몸 이끌고 병원에 갔는데 눈길 한번 주지 않고, 뭐라고 써 있는지도 모를 처방전이나 건네며 무조건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하라는 그런 의사 말고, 다정하게 눈 맞추면서 왜 아픈지, 어떻게 해야 낫는지, 지금 처방해주는 약은 어떤 건지 조근조근 설명해주는 의사를 만났을 때처럼, 참 꼼꼼하고 친절하게 방향을 일러주는 이 매뉴얼만 있으면 엉뚱한 길로 빠질 염려는 절대로 없을 것 같아 든든하다.
--- 옮긴이의 말
내가 조지를 만났을 때 그는 불행하고 뚱뚱한, 마흔 살의 알코올 중독자였다. 미움과 배신으로 얼룩진 비참한 결혼생활로 서로에게 상처만 주고 있을 대 심리치료를 처음 받게 되었다. 그러나 한두 번 진료를 받고 치료를 중단해버렸다. 그의 인생을 비참하게 만든 요인은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어머니는 그렝게 사랑을 주지 않았따. 매사에 수동적이던 아버지는 바람을 피우느라 그를 감정적으로 유기했다. 호전적인 형은 동생의 무능함을 놀리고 조롱했다. 커서 결혼을 했더니 이번에는 아내마저 그를 속였다. 그는 자신이 세상에 둘도 없는 바보처럼 생각되었다. 설상가상으로 회사마저 경영이 악화되어, 동료나 상사들은 조지의 문제에 관심을 가질 여력이 없었다.
그런데도 조지는 술을 끊겠다거나, 살을 빼겠다거나, 결혼생활을 개선하겠다는 어떤 소망도 갖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잘못이나 실패에 대한 비난을 모두 다른 사람에게 돌리고는, 자신은 할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무관심 단계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조지도 자신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이 변하기를 바랐다. 늘 화만 내고 자기 중심적인 아내가, 자신은 경험하지 못한 사랑스럽고 나긋나긋한 어머니로 변하는 것을 마다하지는 않겠지만, 아내가 변할 때까지 그는 술집에 낮아 친구들에게 신세한탄이나 늘어놓는 편을 택했다. 친구들은 조지가 불안정하거나 화가 났거나 우울할 때 어떻게 해야 그의 기분을 풀어줄 수 있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술을 더 많이 마시게 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그의 기분을 풀어줄 수 없는 게 분명했다. 그의 결혼 생활, 직장 생활, 아니 그의 삶 자체가 뒤죽박죽이었다. 그냥 이런저런 말로 적당히 설명하고 넘어갈 수는 없는 형편이었다. 그래서 나는 조지에게 결혼생활을 회복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솔직히 말했다. 그러나 두 사람이 노력할 마음만 있다면 최선을 다해서 돕겠다고 했다. 그리고 만약 인생을 되찾고 싶다면 술부터 끊어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조지는 술을 끊는 대신 심리치료를 끊었다.
전문가들은 알코올 중독을 '부정(否定)의 병'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알코올 중독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문제를 이렇게 마랄 수 있다. 무관심 단계에 발목이 잡혀있을 때, 우리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은 바로 부정하는 마음이다. 뭔가 잘못했을 때 책임을 부정하면 벌을 받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을 통해 배웠다. 특히 좋지 않은 행동으로 바람직하지 못한 즐거움을 누릴 때, 이런 마음이 강해진다. 또 다른 방법은, 그런 행동을 한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그럴 듯한 이유를 붙여 합리화하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흔히 스스로를 포기할 권리가 있다고 항변하는 이유 중에 하나이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떠나려 하지 않는 무관심 단계에는 어떤 매력이 있을까? 무엇보다 무관심 단계에 머물러 있으면 안전하다. 이곳에는 실패가 없다. 시간에 쫓길 일도 없다. 꼭 지금이 아니어도, 언제든 다른 때에 변할 수 있다. 그리고 죄책감에 시달리지 않아도 된다. 바람직하지 못한 습관에 대해 생각이나 고민 자체를 하지 않는데, 무슨 수로 죄책감을 느끼겠는가.
--- pp.83-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