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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종

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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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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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09년 03월 06일
쪽수, 무게, 크기 372쪽 | 446g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01091723
ISBN10 890109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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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여행.
이 두 단어를 타이프하니 멍청이가 된 듯한 느낌이다. 물론 지금은 거의 모든 사람이 신문 기사나 TV에서 방영한 준비 작업의 영상 따위를 통해 이번 실험에 관해 알고 있다. 그렇다. 시간 여행은 실제로 가능하다. 칭-메이 황이 이미 여러 번 시연해 보였듯이 말이다. 그녀는 2005년에 시간 여행의 기본 원리를 발견했고, 그로부터 불과 8년 뒤인 2013년에 실제로 작동하는 타임머신을 만드는 데 성공한다는 믿기 힘든, 정말로 믿기 힘든 위업을 이룩했다. 어떻게 그토록 빨리 그럴 수 있었느냐고 내게 묻지는 말아달라. 전혀 모르니까. 사실 칭-메이 자신도 이 현상에 관해 잘 모르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조차 있다. 그러나 타임머신은 실제로 작동한다. --- p.19

나는 고생물학자다. 공룡 연구가다. 브랜든 새커리, 마흔네 살. 조금 배가 나왔고, 머리가 허옇게 샜고, 빌어먹을 공무원 자격으로 박물관에서 큐레이터로 일하고 있다. 사실 시간을 뛰어넘는 이런 임무에 나 같은 과학자가 투입되는 것은 이치에 맞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모험가가 아니다. 나는 보통 사내이고, 굳이 이런 일에 지원하지 않더라도 해결해야 할 문제를 잔뜩 안고 있다. 병든 아버지에, 이혼에, 다음 지질시대가 시작될 즈음에는 어쩌면 전액 상환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주택 융자금에, 꽃가루 알레르기 같은 것들 말이다. 실로 일상적이지 않은가. --- p.20

아아, 정말로 흥분된다. 과거. 우리는 과거로 와 있는 것이다. 머리가 어지럽고 현기증을 느낄 지경이다. 공중에 둥둥 떠 있는 기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방망이질 치는 심장 고동이 워밍업을 시작한 드러머의 원투 리듬처럼 점점 빨라졌다. --- p.33

그렇다. 저건 누가 뭐래도 공룡이다! 두 다리로 서서 걷고 있다. 혹시 오리주둥이 공룡일까? 아니, 그보다 훨씬 더 자극적인 생물이다. 도쿄를 짓밟은 고질라처럼 뒷다리로 걸어 다니는 육식 수각아목.
“티라노사우루스야.”
나는 클릭스 쪽을 보며 경건한 어조로 말했다. 그가 대꾸했다.
“정말 추하고 볼품없구먼. 안 그래?”
나는 이를 악물었다.
“아름답잖아.”
사실이었다. 어둠침침한 탓인지 암적색으로 보인다. 마치 피부를 벗겨낸, 피에 젖은 근육 표본을 직접 보는 듯한 느낌이다. 두꺼운 목 위에는 혹투성이의 거대한 머리가 얹혀 있었다. 통 모양을 한 동체에, 조그맣고 거의 섬세한 느낌마저 주는 앞다리가 달려 있다. 영원히 이어지는 듯한 두터운 꼬리, 근육이 불거진 튼튼한 두 다리, 그리고 새처럼 발톱 세 개가 달린 발이 보인다. 완벽하게 설계된 살육기계다. -p.36

천천히, 조용히, 아무렇지도 않게, 두 번째 달이 첫 번째 달 뒤를 이어 떠오르기 시작했다. 더 작았다. 시각적으로는 첫 번째 달 직경의 3분의 1 정도밖에는 되지 않는다. 구체였고, 첫 번째 달과 마찬가지로 역시 철월凸月이었다. 마치 흰 젤리빈 과자 같다. --- p.46

내 몸은 위로, 위로, 난생 처음일 정도로 높이 올라갔고, 그런 다음에는 일찍이 경험한 적 없도록 천천히, 느리게 지면으로 내려와서 둔탁한 소리를 내며 착지했다.
“아니 도대체 이건`─`?”
“중력이야! 여기서는 중력이 약해`─`훨씬 약하다고.”
그는 이마의 땀을 닦았다.
“내가 보기에 내 체중은 원래의 반밖에는 안 되는 것 같아.”
“난 여기 도착한 이래 머리가 붕 뜨고 어지러운 느낌이었는데`─`”
“나도 그랬어.”
“하지만 단지 과거로 되돌아와서 흥분한 탓이라고`─`”
“단지 그뿐이 아니었던 거야, 친구. 중력이 약해. 빌어먹을 중력 자체가 약했던 거야. 맙소사, 마치 슈퍼맨이라도 된 듯한 기분이로구먼!”
그는 또다시 껑충 도약했다. 아까보다 더 높이. --- p.68

트로오돈은 여전히 내 좌우 손목을 움켜잡은 자세로 낮게 몸을 웅크리며 강력한 뒷다리를 구부렸고, 비옥한 땅을 박차며 도약했다. 나는 그 힘에 못 이겨 뒤로 넘어졌다. 돌이 등을 파고든다. 흥분한 파충류는 쓰러진 내 몸을 찍어 누르고 활처럼 고개를 젖히더니 입술이 없는 입을 한껏 벌리고 노란 칼날 같은 이빨을 드러내며`─`
꽝!
엘리펀트건을 되찾은 클릭스가 방아쇠를 당겼다. --- p.74

“너희 때 지구는 많이 바뀌었어?”
트로오돈이 물었다.
“많이 바뀌었지. 파충류가 아니라 포유류가 지배하고 있어. 기온은 더 낮고, 대륙들도 많이 분산되었고, 땅은 건조하고, 사계절 차이는 훨씬 더 뚜렷해. 그리고 가장 흥미로운 점은 중력이 지금 여기의 두 배쯤 된다는 사실이야.”
트로오돈은 기묘한 동작으로 목을 홱 돌렸다.
“방금 뭐라고 했어?”
“믿기 힘들지. 안 그래?”
내가 말했다.
“지구의 중력은 향후 6500만 년 동안 두 배로 늘어나게 돼.”--- p.120

카오스 이론에 의하면 중국에서 나비가 날개를 펄럭이는 행위가 나중에 뉴욕에서 비가 올지 안 올지를 실제로 결정해버린다고 한다. 그런 초기 조건의 민감한 여파를‘나비 효과’라는 이름으로 부르기까지 한다. 그러나 칭-메이에 따르면 우리는 그런 일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녀의 방정식에 의하면 우리가 여기서 무엇을 하든 간에 스턴버거는 출발점으로 돌아간다. 칭-메이에게서 들은 양자물리학의 다세계多世界 해석에 입각한 설명을 나는 반밖에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녀는 우리의 미래가 안전하다고 보장했다. --- p.152

복잡한 내장을 잠깐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파키케팔로사우루스가 온혈동물이라는 사실을 명명백백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일광욕으로 열을 흡수하는 것이 아니라 신진대사를 통해 스스로의 체온을 조절한다는 뜻이다. 총알이 박혀 있기는 했지만 심장은 정말 대단한 볼거리였다. 농구공만 한 심장은 포유류처럼 정밀한 4심방 구조를 갖추었고, 동맥과 정맥 또한 완전히 분리되어 있었다. --- p.156

그날 오후 늦게 우리는 스턴버거가 올라탄 크레이터의 밑동에서 모닥불을 피워놓고 파키케팔로사우루스의 몸에서 떼어낸 고급 스테이크 두 장을 구웠다.
클릭스는 구워진 고기를 잘라내더니 대뜸 입으로 가져갔다.
“어때?”
“특이하군.”
드럼헬러에 사는 자칭 미식가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좋다. 맛이 지독할 경우에 대비해 입가심을 할 수 있도록 잔에 미리 물을 따라놓은 다음 조심스레 한입 베어 물었다. 지금까지 나는 파충류 고기조차도 먹어본 적이 없지만, 공룡 고기는 닭고기 맛과 그리 다르지 않으리라 예상했다. 그러나 실제로 먹어보니 구운 아몬드 맛이 났다. 다시 먹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지만, 그리 나쁘지는 않다`─`기분 좋게 씹어 먹기에는 너무 질겼지만. --- p.168

나는 눈을 가려 강렬한 빛을 막으며 서치라이트의 정체를 알아보려고 했다. 빛은 우리 머리 위에 조용히 떠 있는 직경 60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구체에서 나오고 있었다. 그것이 지면으로 하강할 때 갈라진 진흙땅이 서치라이트 빛을 반사한 덕택에 황갈색과 베이지색이 어지러이 섞인 표면을 알아볼 수 있었다. 지면에 접근하는 구체 바로 아래에서 발생한 작은 회오리바람에 휘말린 낙엽과 흙먼지가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 p.172

“박사님에게 보여드리고 싶은 글이 있습니다. 실은`─`실은 제 일기예요. 문제는 제가 그걸 쓰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그게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냥 컴퓨터에 들어 있더군요.”
나는 마른 침을 삼키고, 참고 있던 말을 한꺼번에 털어놓았다.
“그 일기는 중생대 말기로 가는 여행에 관해 묘사하고 있습니다. ‘황 시간적 위상전이 거주 모듈’이라는 장치를 써서 말입니다.”
나는 그녀가 한순간 눈을 크게 뜨는 것을 보았다.
“그 장치를 만든 사람은 칭-메이 황이라고 명기되어 있습니다.” --- p.190

“하지만 그 충돌은 지구의 생물권에 정말로 큰 영향을 끼쳤을 게 틀림없어.”
“그렇지도 않았어. 저 크레이터 자리에 살고 있던 식물과 동물은 물론 모두 파괴되었지만, 그것이 행성 전체에 끼친 영향은 미미했어.”
녀석은 잠시 침묵했다가 말을 이었다.
“너희나 우리나 다 같은 너저분한 태양계의 주민이야. 설마 운석 충돌이 왕왕 일어난다는 사실을 모르는 건 아니겠지. 그래도 생명은 멸망하지 않고 계속되는 법이야.” --- p.203

하느님의 아들을 자처하는 예수가 태어나는 것은 지금으로부터 적어도 6500만 년 뒤의 일이다. 신은 미래가 어떻게 될지 알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황 효과는 그의 전지함마저도 능가하는 것일까? 사랑하는 아들 예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미리 얘기해줘야 할까? 아니면 이미 알고 있을까? 인간들이 신의 아들을 거부하는 것은 필연일까? 나는 망설이다가 결국 입을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p.222

그리고 계곡에는 공룡이 잔뜩 있었다.
그것은 고생물학자의 꿈이었으며, 그 밖의 대다수 사람들에게는 악몽이었을 것이다. 두 마리`─`아니 세 마리의 트리케라톱스가 보인다. 작은 티라노사우루스가 역시 세 마리 있고, 어제 오후에 클릭스와 함께 목격했던 괴물보다 한층 더 덩치가 큰 티라노사우루스 렉스가 한 마리 있다. 타조를 닮은 오르니토미무스의 무리에, 오리를 닮은 주둥이를 가진 하드로사우루스가 네 마리. --- p.224

“물리학자와 고생물학자. 어떤 의미에서는 양쪽 모두 시간 여행자라고 할 수 있어요. 둘 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모든 것의 기원을 찾아보려고 하니까. 물리학자인 ?는 우주가 어떻게 태어나게 되었는지를 이해하고 싶어요. 고생물학자인 당신은 생명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궁금해하고.” --- p.243

우리는 30초쯤 서로를 빤히 바라보았다. 포유류는 민첩한 검은 눈으로 내 눈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내게는 특별한 순간이었다. 몇백만 세대 전의 조상님일지도 모르는 존재와 대면하고 있는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얘기지만, 이 조그만 원시 원숭이 또한 같은 포유류인 나에게 특별한 유대감을 느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 p.256

원래는 내 펜탁스 카메라를 가지고 오려 했지만, 보험회사 사람에게 6500만 년 전 과거로 개인 소지품을 가지고 갈 경우 보험이 적용되느냐고 묻자 담당자라는 위인은 즉각 이렇게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새커리 씨. 그럴 경우 손실된 보험 대상물에 대한 보상은 계약 기간을 벗어난 것으로 간주됩니다.”
--- p.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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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발한 상상력, 흥미로운 이야기, 맛깔 나는 문체
공룡과 시간여행에 관한 가장 재미있는 SF!
정재승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멸종』은 내가 처음으로 읽은 과학소설이다. 공룡의 멸종을 다루는 내용이었기에 관심을 끌었다. 등장하는 주인공 공룡학자를 비롯해 백악기말의 배경과 공룡에 대한 묘사, 그리고 현재까지 밝혀진 공룡에 대한 이론들이 잘 반영되어 흥미로운 스토리와 맞물려 전개된다.
공룡 멸종의 원인을 전혀 새로운 시각으로 풀어나가는 작가의 무한한 상상력에 경의를 표하며, 과학소설이라는 장르가 가지는 도전적인 생각과 창작의 자유성에 박수를 보낸다.
이융남 (공룡학자, 한국지질자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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