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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를 바탕으로

실화를 바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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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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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6년 10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404쪽 | 502g | 137*197*30mm
ISBN13 9788934976295
ISBN10 8934976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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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이 출간되고 몇 달 후, 나는 글 쓰는 일을 중단했다. 그로부터 삼 년 남짓, 나는 글을 한 줄도 쓰지 않았다. 과장이 아니라 글자 그대로 한 줄도. 공문서에 대한 회답, 감사카드, 휴가지에서 보내는 엽서, 하다못해 쇼핑 목록 몇 줄조차 쓰지 않았다. 어떤 모양새든 형식을 갖춰 써야 하는 글이라면 한 줄, 한 마디도. 노트와 수첩과 메모지만 봐도 통증을 느꼈다. 점차 글을 쓰는 동작 자체가 겁이 나고 자신 없어졌다. 볼펜을 쥐는 일조차 갈수록 어려웠다. 시간이 더 흐르자 컴퓨터의 워드 파일을 열기만 해도 두려움이 밀려들었다. (…) 나는 더는 글을 쓸 수 없었다. 글쓰기, 그건 이제 불가능한 일이었다. --- p.7~8

오늘도 여전히, 우리 관계가 어떻게 그처럼 빨리 진전될 수 있었는지, 어떻게 단 몇 달 만에 L이 내 삶에서 그런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는지는 설명하기 어렵다. L은 나를 진정으로 사로잡았다. L은 나를 놀라게 하고, 유쾌하게 만들고,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나를 주눅 들게 했다. L은 독특하게 웃고, 독특하게 말하고, 독특하게 걸었다. L이 내 마음에 들려고 노력하는 기색은 전혀 없었다. (…) 그녀에게는 모든 것이 간단해 보였다. 그토록 자연스럽고 완벽하고 조화롭기 위해서는 손뼉 한번 치면 충분한 것처럼. 때때로 그녀와 함께 있다가 헤어지거나 긴 통화를 한 뒷면 그녀와 나눈 대화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기도 했다. --- p.68

그 무엇도 장애가 되지 않는 순간, 필요한 공간이 확보되는 순간, 모든 것이 제자리에 정연하게 분류되어 깨끗하게 옮겨 적히는 순간이 있다. 침묵이 되돌아오고, 쿠션이 의자 위 딱 좋은 위치에 놓여 있고, 컴퓨터 자판은 손가락이 두들겨주기만을 기다리는 순간이. 몰입해야 하는 순간, 리듬과 충동과 단호함을 되찾아야 하는 순간이 오는 법이다. 그런데 그것이 오지 않았다. (…) 이래서는 안 된다고, 이렇게 고통스러운 일은 아니었다고, 설령 고통스러웠다 할지라도 어느 정도의 기쁨은 배어 있었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니었다, 이건 그냥 실패일 뿐이었다. 나는 멍한 눈빛으로 컴퓨터를 마주 보고 있었다. --- p.134

“그게 진짜 이야기 혹은 ‘실화를 바탕으로’ 했거나 ‘매우 자전적인’ 이야기라고 네가 믿게끔 공들였기 때문이라는 생각은 안 들어? (…) 나는 현실만으로 충분하다고 믿진 않아. 현실, 그것이 존재한다면, 재구성할 수 있어야 해. 네 말대로 현실은 구체적으로 표현되고, 변화되고, 해석될 필요가 있어. 소설가의 시선과 관점 없이는 아무리 잘 풀려봐야 죽도록 지루하고, 잘 안 풀리는 경우엔 엄청난 불안을 야기하지. 그리고 어떤 재료에서 출발했든 그 작업은 언제나 픽션이라는 형태야.”
--- p.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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