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 됐든 순희의 일상은 내 스마트폰을 통해 24시간 생중계된다. 빡세는 나에게 그것들을 면밀히 관찰한 뒤, 순희에 대한 보고서를 하루 한 번씩 자신의 책상 위에 가져다 놓으라고 했다. 차라리 반성문을 100장 쓰는 게 나을 것 같은, 아주 지루한 관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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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구나 지금 내 낡은 컴퓨터와 감색 옷장 위에는 오래된 먼지가 뿌옇게 얹혔습니다. 나는 그 먼지들을 일부러 닦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 속에서 지내야 하는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내 시간은 작년 크리스마스이브에서 멈춰져 있습니다. 다들 제 생일을 맞은 듯 온 도시가 떠들썩했습니다. 그때 우리 모두는 행복했던 것 같습니다. 단, 몇 사람만 빼고 말입니다. 나는 나를 그 시간에 가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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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발은 현관을 향해 달렸다. 화면 안의 순희가 칼에 손목을 가져다 대고 있었다. 안 된다. 아직은 살아야 한다. 개봉조차 못한 프로젝트를 이대로 망칠 순 없다. 내 퇴학 철회의 꿈은 과연 이대로 날아가는 것인가. 나는 순희네 집 대문을 부서져라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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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 한 명 자르는 게 뭐 그렇게 어려운 일이냐고요. 그 애 때문에 우리 애 복학 못 하면 박 선생이 책임질 거예요?”
산처럼 커 보이던 빡세도 그 아줌마 앞에선 툭 건들면 으스러져 버릴 모래성 같았다.
“이사장님, 아직 기한이 남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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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는 미성년자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 교묘하게 보호받을 수 있는 나이. 녀석이 저지른 짓은 내가 치는 말썽과는 차원이 다른 범죄다. 그건 분명한 범죄였다. 부모의 능력이 자신의 미래를 결정하는 현실에 분노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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