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베가스 스트립의 카지노들은 네온사인을 이용해 “설득을 위한 건축물”을 세웠다. 패스트푸드점을 제외하고는 건물들 대부분이 길가의 대형 광고 간판 또는 광고탑과 널따란 주차장 뒤쪽에 자리 잡아 잘 보이지도 않는다. 길가 정면의 대형 네온사인들이 이 라스베가스 스트립의 성격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건축물이다. …옛 교회 건물들의 정면 첨탑이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을 시사했듯이 라스베가스의 거대한 네온사인들은 카지노라는 구렁텅이의 허상을 전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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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을 보면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소비하는 것을 보기 전까지는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를 경우가 많이 있다. 욕구란 감기처럼 전염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크리스마스 때마다 포켓몬이나 양배추 인형처럼 동이 나버리는 장난감이 생기고, 어떤 영화는 제작비보다 마케팅 비용이 더 많이 들며, 또 어떤 대학이 다른 대학들보다 인기가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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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상점, 저 상점의 점원들의 표정을 보면서 비록 그들이 입 밖으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이런 말을 하는 것을 알아들었다. “큰 로고는 졸부 같은 사람들에게나 어울리는 것이고, 명품에 눈을 뜨기 시작한 아가씨를 위해서라면 작은 로고가 어울립니다.” 나는 그런 수준의 차이를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런 수준의 차이를 나타내는 표식은 그야말로 개를 부르는 호루라기와 같다. 사치 호사품의 세계가 이제 바야흐로 예술의 경지에 접어든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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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돈이 들지 않는 소소한 일상용품에 대한 호사 욕구가 보편화되었다. 그런 호사품들을 소비하면서 사람들은 일종의 독립감 내지는 어떻게 해볼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자신의 경제력에 대해 약간이나마 자신의 의지대로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런 호사품들은 자유를 느끼게 한다. 경제력에 한계가 있는 사람들 즉, 가난한 사람들이나 스스로 돈을 벌지 못하는 십대들에게는 음료수나 립스틱, 영화 잡지, 캔디 바 같은 것들이 그런 호사품이 된다. 생활이 안정되어 가는 중류층 사람들에게는 주방용기나 가전 제품들이 호사품이 되며 부자들에게는 그 때까지 사용하던 것들보다 더 고급 제품들이 호사품이 될 것이다. 구태여 없어도 살 수 있는 작은 호사품들이 심리적 필수품으로 바뀌고 있다. - 피터 드러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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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사품의 소비는 결국 실망만을 남길 뿐이라는 주장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사고 싶다는 욕망에서 출발하여 사서 써 보고 실망하고 그리고 또 다시 사고 싶다는 욕망이 생기는 이 과정은 되풀이되는 것이 틀림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 순환고리를 따라 움직인다. 그것은 그 반대의 순환고리(즉, 우울함에서 비참함으로 이어지는)가 더 나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바꾸어 말하면 확실한 정신적 가치를 물려받지 못한 이 세계에서는 겉만 번지르르한 물건을 비싸게 사서 쓰는 것이 아무 것도 소비하지 못하는 것보다는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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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는 합리적이다. 소비자들은 대부분 자신들이 제품 자체보다는 그 제품에 관련된 이미지, 스테이크 자체보다는 고기 구울 때 나는 지글거리는 소리, 물질보다는 그에 관련되어 있는 의미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다. 학자들이 물어보기를 꺼리는 질문을 사람들에게 해 보라. 그들은 분명히 대답을 할 것이다. 자신들은 나이키의 로고, 폴로의 조랑말, 게스 상표, 도나 카렌의 로고 때문에 그 제품들을 산다고 할 것이다. 그들은 광고나 포장, 브랜드, 유행, 제품 등에 현혹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제품과 결부되어 있는 지위를 추구하고 그것을 즐기는 것인데 젊은이들일수록 이런 경향은 더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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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요커의 광고를 연구하다 보면 1960년대에 일기 시작한 변화가 1980년대의 상황과 너무나 흡사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광고에서 호사품이라고 주장하는 물건들을 보면 예전의 보석, 식기, 가방, 크리스탈, 시계, 향수 등에 국한되지 않고 일상 용품인 공산품들 거의 모두를 호사품이라고 떠들고 있다. 술은 이미 신분의 상징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제 사교를 위한 물건일 뿐이었다. 담배도 그 영광을 상실했고 모피 또한 그랬다. 여성복은 디자이너들의 이름과 결합되기 시작하였고 고급 남성복 광고는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림 설명) 뉴요커지 2000년 3월 20일 표지. 잡지의 주요 광고주인 디자이너 브랜의 이녀셜들로 온몸을 감싼 남녀를 풍자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과연 독자들더러 보라는 것인가? 아니면 광고주들더러 보라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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