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역은 힘든 길이다. 실제로 사역은 늘 어려웠다. 예수님께도 힘들었고 그의 대의를 위해 부름 받은 초대 교회 지도자들에게도 고난의 길이었다. 기억하겠지만, 그들은 전문적 훈련을 받지 못했고 학식이 높은 사람들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세상 사람들에게 주목받던 사람들도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앞날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전혀 짐작하지 못했다. 그 사람들에게 사역의 길은 분명히 장밋빛 미래가 있는 평탄한 길이 아니었다. 생각해 보라. 초대 교회 지도자들은 엄청난 물의를 일으킨 한 인물을 위해 일했다. 더구나 그는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이었다. 그들은 사역자라는 역할을 위해 가족과 직장, 자신들의 평판, 일상적 생활을 희생하도록 요구받았다. 게다가 여러 곳을 방문해 복음을 전파할 때 종종 그들은 조롱, 매질, 심지어 죽임을 당하기도 하였다.
마태복음 10장 16절에서 예수님은 열두 제자를 파송하시며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내는 것 같다고 토로하셨다. 이 말은 그들의 길이 험난할 것을 각오하고 대비하라는 뜻이었다. 나는 제자들이 그 모임을 마친 후 능력을 받기 위해 기도해야겠다는 간절함을 가지고, 후들거리는 다리로 돌아가는 모습이 눈에 그려진다.
내가 ‘이리 가운데 양’이라는 생각이 들면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간절한 기도가 마음속에 솟구치듯 터져 나온다. 분투의 시간 중 최악의 악몽은 그리스도와의 관계가 주는 풍성함의 약속을 실제로 체험하지 못하고 있음을 확인할 때이다. 주님께서 주시는 평강과 행복하고 거룩한 약속에 붙들리는 대신, 내 신앙 체험을 무시한 채 세상의 태도를 받아들이고 있음을 볼 때이다.
거룩한 불만을 키우는 데 방해가 되는 장애물이나 두려움을 극복하는 일에 마법의 총알 같은 건 없다. 하지만 막다른 길에 도달할 때,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항상 도움이 됨을 절대 잊지 말라. 그분은 온갖 일로 관심사가 분산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단 한 번도 가야 할 길에서 이탈하시지 않았다. 자신의 ‘한 가지 일’을 알고 사역 현장에서 매일 완벽하게 본래 목적에 충실하셨던 분,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시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이 세상에 자기를 보내신 유일한 목적이 진리에 대해 증거하는 것임을 아셨다. 그렇다 해도 주차장 부지 확장이나 선교 여행 바자회 같은 더 쉽고 영향력이 낮은 일들로 대충 때우실 수도 있었다. 하나님이 분명하게 부탁하신 한 가지 일을 추구하는 대신 사소한 사역들로 모든 시간을 날려버릴 수도 있었다. 여론의 압력과 할 일에 떠밀려 거룩한 분노를 결국 포기하고 말았던 수많은 목회자들과 지도자들처럼 본래 줄거리를 놓쳐버리실 수도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이 주신 줄거리를 놓치지 않으셨다. 부르심을 받고 준비하며 실행하도록 승인받은 사역을 끝까지 붙드셨다. 이 한 가지를 꼭 명심하라. 위험 부담이 높고 압력이 심하다 해도 결코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현재 하는 일이 그렇게 만족스럽지 않다 해도 하던 대로 그냥 하는 게 훨씬 쉽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나의 경우, 전에는 확실히 그런 식의 사고방식에 젖어 있었다. 그러나 현실 안주에 제동을 거는 건 항상, 언젠가 하나님 앞에 서게 될 날이 올 것이라는 엄중한 생각이다.
하나님의 우편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서 계실 것이다. 그분은 거룩한 분노를 외면하기를 단호히 거부하신 분이다. 다른 일들을 내려놓고 하나님이 내게 하라고 요구하신 그 ‘한 가지 일’을 좇지 않은 이유를 구차하게 변명하는 나의 모습은 상상만 해도 싫다!
언젠가 우리 모두 예수님 앞에 설 것이다. 하나님이 사역으로 부르신 이유에 대해 본래 줄거리를 놓치지 않으셨던 바로 그분 앞에 설 것이다. 우리는 그의 신부인 교회를 얼마나 지혜롭게 섬겼는지 직접 보
고하라는 요구를 받을 것이다. ‘모든 성실함으로’ 얼마나 사역을 잘 감당했는지 직고하라는 지시를 받을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 마음에 두신 그 한 가지 일을 얼마나 잘 감당했는지 답해야 할 것이다.
나는 마지막 날에 그리스도의 눈을 바라보며 사역 전체가 내 적성에 맞지 않았다고 인정하는 모습을 상상하기도 싫다. 성령의 함께 하심, 평강과 안식과 풍성함의 약속, 그리고 사방 어디서나 얻을 수 있는 놀라운 리더십 발전의 기회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했다고 변명하기 싫다. 당신도 역시 그런 모습을 상상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거룩한 분노를 발전시키는 과제에 본격적으로 나서 보자.
-'1부. 좋은 사역자는 거룩한 불만이 있다' 중에서
예수님을 따른 최초의 사람들은 고기잡이를 업으로 삼던 사람들이었다. 예수님은 그들이 자신의 뜻을 따르게 하기 위해, 자기를 따라오면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고 말씀하셨다. 그?의 상상력을 사로잡고 최고의 에너지를 이끌어낸 것은 한 가지 사명이었다. 그 일에 관해서라면 너무나 잘 알고 또 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열정은 바로 고기를 낚는 것이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의 전체 비전을 그들의 개인적 열정과 연결시키셔서 그들이 사역에 참여할 수 있도록 통로를 제공하셨다.
우리는 우리가 섬기는 사람들에 대해 예수님과 동일한 수준으로 한눈에 파악할 능력이 없다. 그들을 움직이도록 만드는 원동력이 무엇인지 핵심을 파악하려면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사람들로 거룩한 불만을 느끼는 영역이 어딘지 찾아내도록 돕는 건 가능하다.
사역자가 팀원들의 가장 깊은 내면에서 끓고 있는 거룩한 불만을 들추어내는 과정에 즐겁게 동참하는 것은 예수님이 그들의 생각과 마음에 역사하시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거룩한 불만을 발견하도록 돕고자 애써 오면서 세 가지 지침이 항상 큰 도움이 됨을 알게 되었다.
.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라.
. 대화의 주제를 살피라.
. 시운전을 해 보라.
- '2부. 좋은 사역자는 공동체를 살린다' 중에서
어떤 리더도 억지로 변화를 만들어내려고 하지는 않는다. 다시 말해서 변화란 전형적으로 오직 결과론적으로 변화라 불리는 것이다. 사역 리더십과 관련될 때는 특별히 더 그러하다. 사역과 관련해 리더의 모든 세계는 우리 머리로는 알 수 없는 신비로운 하나님의 방법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그래서 변화가 일어나려고 할 때 그것을 포착하기가 어려울 수 있다.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고자 애쓰는 사람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최고의 조언은, 알아야 할 게 있다면 내주하시는 성령님께서 적시에 그것을 알려주실 것을 신뢰하라는 것이다. 나의 리더십이 논리적 논증이나 체계화된 접근 방법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의 거룩한 격려하심’에 응답하는 것으로 채워질 때가 얼마나 많은지 알면, 사람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할 것이다.
하나님의 일을 청지기처럼 맡아 관리할 자세를 갖추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적극적이며 의욕적인 기도 생활이다.
느헤미야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확실한 방법으로 그의 세대를 변화시킬 도구로 사용되기 전, 하늘의 하나님 앞에서 애통하고 금식하면서 기도했다(느 1:4 참조). 모세 역시 마찬가지였다. 약속의 땅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기 전, 그는 하나님의 명령에 충실하게 순종했다. 빌리 그레이엄은 어린 시절에 농장에서 많은 오후 시간을 보냈고, 그곳에서 성경을 읽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지냈다. 마더 테레사는 사역 기간 내내, 묵상하며 안식하는 충분한 시간을 가졌다. 당신과 나 역시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기 전 쓰임을 받을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어야만 한다.
- '3부. 좋은 사역자는 끝까지 쓰임받는다' 중에서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