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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빈센토
2. 성탄절의 아이 3. 종달새 4. 드미트리오프 5. 집 보는 아이 6. 찬물 속의 송어 작품 해설-고요하고 광막한 모험, 가브리엘 루아 - 김화영 |
저가브리엘 루아
관심작가 알림신청Gabrielle R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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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김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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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고양이가 나무에 기어오르듯이 무릎으로 내 허리와 몸통을 차례로 감고 툭툭 밀며 내게로 기어올라왔다. 목에까지 이르자 그는 숨이 막힐 정도로 나를 꼭 껴안았다. 그는 내 얼굴에 온통 마늘과 라비올리와 감초 냄새가 마구 풍기는 축축한 키스를 정신없이 퍼부어 대기 시작했다. 내 뺨은 그의 침으로 뒤덮였다. 숨이 컥컥 막혀서 "자, 그만 해, 빈센토…" 하고 애원해보아야 소용없었다. 그토록 조그만 아이치고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힘으로 그는 나를 꼭 껴안았다…. 그가 나를 놓아주도록 하기 위해서 이번에는 내 쪽에서 그를 꼭 껴안고 등을 정답게 토닥거려주면서, 내가 그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듯이 그 역시 알아듣지 못하는 말이지만 애정이 서린 어조로 그에게 말을 하면서 차츰 차츰 그를 진정시키지 않으면 안 되었고, 이제는 나를 잃어버리면 어쩌나 하는 가슴 찢는 두려움에 시달리는 그를 안심시키지 않으면 안 되었다.
―「빈센토」중에서 나는 클레르 앞으로 갔다. 그의 속눈썹은 울음을 간신히 참고 있었다. 나는 그의 두 어깨를 꼭 잡아주었다. "너 나한테 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선물을 해주지 않으련?" 클레르는 내가 또 뭘 더 요구하는지 알 수 없지만 내가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해주고 싶다는 듯 머리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 선물이 뭔가 하면 말이지, 요 어린 학생이 나한테 아주 행복한 미소를 지어 보이는 선물이야." 아이는 그의 슬픔 저 밑바닥으로부터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의 두 눈에서는 굵은 눈물이 떨어지는데 그의 두 입술에는 다정하고 아주 참한 미소가 피어났다. ―「성탄절의 아이」중에서 그때 나는 파라스코비아 갈라이다가 닐에게 보낸 신호를 감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입을 꼭 다문 채 그녀는 그 아이 자신이 학교에서 그렇게 했던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그에게 음을 리드해주었다. 목구멍으로 내는 미묘한 음의 진동이 한동안 실처럼 흘러나왔다. 이윽고 그들의 목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한쪽이 처음에는 약간 망설이는 듯하더니 곧 좀더 자신있는 다른 쪽에 이끌려 따라갔다. 그러자 두 목소리가 높아지며 기이하고 아름아운 노래 속에 담겨 날아오르면서 서로 조화를 이루었다. 그 노래는 실제로 겪는 삶과 꿈속의 삶의 노래였다. 광막한 하늘 아래서 그 노래는 그 어떤 손길처럼 가슴을 움켜잡아 이리 돌리고 또 저리 돌리다가 마침내 잠시 동안 자유로운 대기 속으로 조심스럽게 놓아주는 것이었다. ―「종달새」중에서 그런데 바로 이때 아버지 드미트리오프가 그 과장된 필체의 글씨들 중 한 글자의 밑에 굵은 손가락을 갖다대고는 꼬마의 등을 떠밀었다. 막내둥이 드미트리오프는 즉시 실시했다. 아버지가 그 중 아무것이나 또 다른 글자 하나를 선택하자 이번에도 아이는 글씨를 썼다. 그러나 더욱 순수하고 소박하여 어딘가 고전적인 그 무엇이 느껴지는 그 나름의 독특한 글씨체였다. 서투른 손으로 그는 어린 아이의 어깨를 잡았다. 그는 거칠게 그 어깨를 한동안 주물러대더니 너무 난폭하게 다루지 않으려고 애를 쓰면서 아이의 머리를 자신의 두 팔 쪽으로 끌어당겼다. 꼬마는 아직도 채 긴장이 누그러지지 않았는지 뻗대고만 있었다. 마침내 그는 겁에 질린 작은 얼굴을 아버지의 옷소매에 묻은 채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겁에 질린 두 눈을 아버지에게로 쳐들었다. 그러자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위로 미소가 오갔다. 너무나 짧고 너무나 서투르고 너무나 망설이는 미소여서 아무래도 그 두 얼굴 사이에서 오가는 것으로는 정말 생전 처음인 것 같았다. ―「드미트리오프」중에서 나는 한 줄기 작은 오르막길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거기에, 아이들이 하늘 저 밑으로 가벼운 꽃장식 띠 같은 모양을 그리며 하나씩 하나씩, 혹은 무리를 지어 나타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었다. 매번 나는 그런 광경을 바라보면서 가슴이 뭉클해졌다. 나는 광대하고 텅 빈 들판에 그 조그만 실루엣들이 점처럼 찍혀지는 것을 볼 때면 이 세상에서 어린 시절이 얼마나 상처받기 쉽고 약한 것인가를, 그러면서도 우리들이 우리의 어긋나버린 희망과 영원한 새 시작의 짐을 지워놓는 곳은 바로 저 연약한 어깨 위라는 것을 마음속 깊은 곳에서 절감하는 것이었다." ―「집 보는 아이」 중에서 메데릭은 눈으로 정신없이 나를 찾기 시작했다. 그 시절, 기차를 탄 사람들은 때가 여름이었는지라 차창 문을 활짝 열어놓은 채 여행하곤 했다. 메데릭은 반쯤 창밖으로 내민 내 얼굴을 재빨리 알아보았다. 그는 손에 쥐고 있던 것을 공중으로 높이 쳐들더니 탄력을 받도록 두세 번 휘휘 돌리다가 이윽고 확실한 동작으로 나를 향하여 창문을 통해서 곧장 내 무릎 위로 집어던졌다. 그것은 엄청나게 큰 들꽃 다발이었다…. 나는 무릎 위에 얹어놓은 꽃다발에 눈길을 던졌다. 보드라운 풀줄기가 리본처럼 주위를 둘러 묶고 있어서 아직 풀어지지 않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내 뺨에 가져다 댔다. 섬세한 향기가 배어들었다. 그것은 태어나자마자 벌써 죽어가기 시작하는 젊고 연약한 여름을 말해주고 있었다. ―「찬물 속의 송어」중에서 『내 생애의 아이들』은 일견 사범학교를 갓 졸업한 풋내기 여교사와 초등학교의 어린이들 사이의 소박한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는 듯하지만, 실은 67세의 원숙한 대가가 쓴 감동적인 성장소설인 동시에 인생에 대한 찬미의 대서사시다. 이 작가의 작품세계를 특징짓는 환기력과 문체의 질감, 그리고 거기서 솟구쳐오르는 고즈넉한 감동이 어떤 것인가를 어느 작품보다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는 소설이다. 이 작품은 작가가 젊은 시절 마니토바에서 여교사로 지내던 시절의 구체적인 경험에서 영감을 얻은 이야기들을 여섯 편의 중·단편으로 나누어 배치하고 있다. 그러나 여러 중·단편들을 단순히 한데 묶어 내놓은 흔한 단편집이 아니라 자연스러우면서도 정교한 구조와 통일성을 갖춘 소설이다. 소설에서는 이름이 명시되지 않은 18세의 젊은 여교사가 화자로 등장하여 언뜻 보기에는 산만하게 분리된 듯한 여러 중·단편 전체를 관통하며 일관된 목소리로 조율한다. 여섯 편의 이야기들은 각각 빈센토, 클레르, 닐, 드미트리오프, 앙드레, 메데릭 등 한 명씩의 어린이가 주인공이다. 이 각각의 인물들은 어린 시절의 초상인 동시에 인간과 인생 전체의 초상이다. ― 옮긴이의 말 중에서 본문 중에서 |
이 책에 대하여
'캐나다 문학의 큰 부인'이라 불리며, 세 번의 캐나다 총독상 수상, 캐나다 작가 최초의 페미나상 수상 등의 화려한 수상 경력과 깊이와 감동을 겸비한 문학으로 캐나다 국내에서는 물론이고 영미문학권, 유럽문학권, 제3세계 문학권에서도 그 문학적 성취를 높이 평가받고 있는 가브리엘 루아의 대표작 『내 생애의 아이들』이 <현대문학>에서 출간되었다. 외국문학을 소개하는 데 지역적, 또는 문화적 편중이 심한 상황에서, 풍요로운 과실을 지닌 한 낯선 문학과의 만남은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반갑고 유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빈약한 일상과 자아를 하릴없이 긁어대는 건조하고 메마른 많은 외국소설들에 절은 입맛에, 그 첫 만남은 맑고 찬 샘물처럼 시원하고 감미롭기 그지없고, 감동의 울림과 의미 또한 두툼하고 크다. 『내 생애의 아이들』은 비평의 찬사와 대중의 열광을 동시에 얻은, 가브리엘 루아 만년의 걸작으로, 캐나다의 빈한한 소읍과 작은 시골마을들을 전전하며 8년 동안 교사로 일했던 젊은 날의 체험을 토대로 씌어진 것이다. 여섯 편의 중단편을 묶은 이 소설집에서 특히, 마지막 편인 「찬물 속의 송어」는 그의 가장 아름다운 작품으로 알려져 있는데, 과연, 그러한 평가가 빈말이 아니다. 광활한 평원에 둘러싸인 가난한 이민자들의 마을에 18세의 앳된 여교사가 부임해온다. 부모를 따라 러시아, 프랑스, 이탈리아 등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아이들은 평원에 방목해놓은 듯 거칠지만 그만큼 길들여지지 않아 순수하고, 이 떠들썩한 천사 무리와 여교사 간에 일대 아름다운 난장이 벌어진다. 고양이처럼 선생님에게 매달리며 학교라는 낯선 세상에 대한 두려움과 막무가내의 사랑과 기쁨을 호소하는 꼬마 빈센토, 선생님에게 줄 크리스마스 선물을 마련하지 못해 애를 태우다 눈보라 속을 헤치며 손수건을 들고 찾아오는 곱고 어린 영혼 클레르, 감미롭고도 우수에 찬 아름다운 노래로 절망에 빠진 사람들의 지친 영혼을 위무하는 어린 천사 닐, 검은 불덩어리 같은 열정으로 글씨쓰기에 몰두하는 엉뚱한 아이 드미트리오프, 먼 곳으로 오래 일 나간 아버지를 대신해 어린 동생과 만삭의 어머니를 돌보는 애어른 앙드레, 앳된 여선생님에게 연정을 느끼며 어쩔 줄 몰라 하는 수줍고 야성적인 소년 메데릭. 이 사랑스럽고 때로는 어른보다 더 성숙하고 사랑이 깊은 아이들과 여교사 사이에는 교사와 학생이라는 구분을 넘어 깊고 애틋한 교감이 오가고, 여교사는 이 아이들에게서 성장의 고통과 강인한 고독, 용기와 헌신의 미덕, 예술과 아름다움이 지닌 놀라운 치유의 힘, 사춘기 특유의 감각적 떨림, 그리고 저항할 수 없는 사랑의 힘과 고통을 발견한다. 그리고 놀랍게도 여교사의 이러한 통찰을 통해, 소설은 단순하고 소박한 외면을 넘어서고, 아이들은 인간과 삶 전체의 초상으로 화한다. 이 소설집에서 가장 길고 아름다운 이야기인 「찬물 속의 송어」는 각별히 감동적이다. 자연과 야성의 고집스러운 대변자인 메데릭과 어떻게든 질서와 이성을 옹호하려는 여교사 사이에 오가는 미묘하고 애틋한 교감을 기조로, 이 소설은 어린 시절에서 성년으로 옮아가는 시기의 고뇌와 수줍은 마음의 떨림을 이를 데 없이 섬세하고 여운이 긴 필치로 그려 보이고 있다. 이 소설의 고즈넉한 감동은 각기 다른 개성과 심성을 지닌, 그러나 한결같이 선하기 그지없는 아이들의 말과 행동에서도 오지만, 이 아이들을 바라보는 작중화자인 여교사의 따뜻하고 애정 어린 시선에서도 온다. 그 자신 이제 방금 '청소년기의 몽상에서 벗어나 아직 성년의 삶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형편'인 어린 여교사는 아이들에게서 자신이 막 지나온 고통과 혼란을 느끼고 아울러 그들의 어린 야성을 길들여야 하는 자신의 입장에 대해 종종 회의에 빠진다. "이른 아침 교실에 서서 내 어린 학생들이 세상의 새벽인 양, 신선한 들판 위로 그 모습을 드러내는 모습을 바라볼 때면, 학교라는 함정 속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로 달려가서 영원히 그들의 편이 되어야 옳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 것이었다." 여교사는 아이들 입장에 서서 학교를 '함정'으로까지 느끼지만, 역설적으로 바로 이러한 그녀의 시선 때문에, 평원 곳곳에 있는 아이들의 집을 찾아다니면서 아이들의 가난과 시련의 속사정을 들여다보고 어떻게든 아이들을 보호하고 구하려는 그녀의 헌신 덕분에, 학교는 비로소 진정한 '가르침'과 '배움'이 오가는 자리, 새로운 인식의 터전, 각기 다른 문화와 빈부, 신분 등 사람들 사이를 갈라놓는 모든 차이가 화합을 이루는 참된 의미의 '교실'이 된다. 이러한 측면 때문에 이 소설은, '감동'이라는 문학의 상수를 훌륭하게 복원한 미덕 외에, 여전히 표류하고 있는 우리 교육 현실에 많은 시사가 될 수 있는 또 하나의 미덕을 거느리게 된다. 작가 나이 67세인 1977년에 씌어진 소설이니, 이 소설도 제법 나이를 먹었다. 소설에 등장했던 아이들은 어느새 중년의 고달픈 어른들이 되어 있겠지만, 손에 쥐어도 움직이지 않는, 의심을 모르는 저 '찬물 속의 송어'는 야성과 순결 외에는 알지 못하는 우리 삶의 한 시기에 대한 선연한 상징으로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