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지주들은 의회를 조종해 자신들을 보호하는 법안을 만들었고, 그 법안에는 곡물수입 규제가 포함돼 있었다. 곡물가격은 치솟았고 빵값은 비싸졌다. 노동자들이 생활고에 시달린 것은 물론이다. 마침내 임금이 하락하고 빵값이 폭등하자 노동자들의 분노는 폭발했다. 1819년 8월 16일, 분노한 시민들은 세인트 피터스 광장에 몰려들었다. 시위대 숫자는 순식간에 6만 명으로 늘었고 미처 집회장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 노동자 3만여 명은 광장의 외곽을 돌았다. 민중봉기를 두려워했던 영국 정부는 병력을 동원했다. 6,000명의 일반 병사와 1,500명의 왕립포병대가 이들을 포위했고, 왕립 포병대는 시위대를 향해 발포했다. 광장은 시민들이 흘린 피로 붉게 물들었다. --- ‘빈민을 위한 나라는 없다’ 중에서
로베스피에르에 의해 프랑스혁명의 정신적 우상이 되었던 볼테르와 루소는 ‘평등한 사회’에 대한 각기 다른 생각으로 격렬하게 대립했다. 두 사람은 프랑스혁명의 정신인 ‘자유, 평등, 박애’를 인류의 유산으로 남겼지만, 평등에 관해서만큼은 죽기 전까지 의견을 좁히지 못했다. 생계를 위해 자식들을 고아원으로 보내야 했던 루소의 문장은 부자들의 탐욕을 지적할 때 더욱 빛을 발했지만, 볼테르의 글은 자본주의의 정신을 찬양할 때 유난히 반짝였다. 그도 그럴 것이 볼테르는 주식투자와 부동산투자, 고리대금업을 통해 당대의 부유층 대열에 끼어 있었다. --- ‘평등의 빵 만들기는 너무 어려워’ 중에서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은 유대인들을 박해했지만 네덜란드만은 그들에게 자유를 보장했다. 종교적 폭압에 진저리를 내던 유대인들은 자유로운 상거래가 가능한 땅 네덜란드로 몰려들었다. 동인도회사를 설립한 후 네덜란드 정부는 더 많은 유대인 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해 암스테르담에 선물거래소를 만들었다. 시장을 항상 깨끗하게 청소하는 회사, 즉 파산처리를 도와주는 파산처리사무소도 암스테르담 주식거래소 앞에 몰려 있었다. 17세기 중반 네덜란드는 유럽에서 가장 많은 기업이 활동하는 곳이었으며, 동시에 세계 무역의 절반을 책임진 도시였다. 제국주의가 횡행하던 시대, 네덜란드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에 비해 식민지에 대해 덜 잔혹했고 곳곳에 거래와 상인정신을 선물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식민지 내의 반란에 대해서는 가차 없는 폭력성을 발휘했다. 반란은 곧 자신들의 주머니를 약탈하는 행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자본주의의 상징, 네덜란드’ 중에서
산업혁명은 농촌 사람들을 도시 공장노동자 혹은 탄광노동자로 내몰았다. 노동자가 된 사람들은 기계처럼 더 많은 생산을 강요받았고, 이처럼 인간의 존엄성보다 생산이 더욱 중시되는 상황 속에서 소외를 경험하는 노동자를 보며 마르크스는 자신의 사상을 정립했다. 마르크스는 죽기 전에 “당신은 혁명가로 남고 싶은가 아니면 사상가로 남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받았다. 그는 “나는 한 번도 혁명가를 꿈꾼 적이 없다”고 대답했다. 죽기 전에 자신은 도덕철학자로 남고 싶다고 이야기했다는 애덤 스미스의 이야기를 연상시키는 일화다. 그러나 애덤 스미스를 누가 철학자로 생각할까? 그는 경제학의 아버지가 아니던가. 마르크스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사상가로 남고 싶었겠지만, 역사 속에서 마르크스는 항상, 어쩔 수 없는 혁명의 아버지였다. --- ‘예수의 경제학, 마르크스의 경제학’ 중에서
1929년 10월 24일, 검은 목요일. 11시가 되자 주식시세표는 잠시 멈췄다. 폭락하는 숫자를 표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11시 30분, 갑자기 객장에서 비명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12시, 몇 명의 투자자들이 자살했다는 소식이 급보로 전해졌다. 검은 목요일은 계속되는 붕괴의 시작이었다. 주가는 계속 하락해 두 달 만에 주식가치는 반 토막이 났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항상 이런 말을 했다. “자, 이제 주식을 사세요! 아주 좋은 타이밍입니다. 최저점에서 산 사람들은 얼마 있다가 엄청난 이익을 볼 거예요.” 1930년 3월 당시 미국의 대통령이던 후버도 “주식을 사라”고 말했다. 그러나 얼마 뒤 주가는 또 다시 곤두박질쳤다. 최저점은 아직 오지 않았던 것이다. 거리에는 뉴욕의 호텔 직원들이 투숙객들에게 “주무실 건가요, 뛰어내리실 건가요?”라고 묻는다는 말이 나돌았다.
--- ‘1929년 가을 미국의 풍경’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