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양소와 음식은 결코 같은 것이 아니다. 한때는 우리가 잘 아는 식품, 그러니까 달걀이나 아침 식사용 시리얼, 아니면 간식거리 따위의 친숙한 이름들이 통로를 가득 메운 형형색색의 포장 용기 위에서 자랑스럽게 반짝였지만, 이제 “콜레스테롤”이나 “섬유”, “포화지방”처럼 과학적 향기를 풍기는 새로운 용어들이 대문짝만한 크기로 인쇄되어 나오기 시작했다. 단순한 음식보다는 영양이 훨씬 중요해졌다. 이제 이런 보이지 않는 물질의 존재 또는 부재가 사람들을 건강하게 해 준다는 믿음이 널리 받아들여지게 된 것이다. --- p.27
모든 좋은 영양소에는 나쁜 영양소라는 짝이 있어야 한다는 게 영양주의의 법칙인 것 같다. 이에 따라 나쁜 영양소는 불안의 대상이 되고 좋은 영양소는 열정의 대상이 된다. 20세기 말에는 미국에서 단백질에 대한 반발이 일어났다. 존 하비 켈로그와 호레이스 플레처 같은 음식전문가들이 단백질이 장에 독성 박테리아의 증식을 야기해 소화에 해로운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하면서, 탄수화물을 보다 깨끗하고 유익한 영양소로 부각시켰다. 이런 재평가의 유산이 바로 아침 식사용 시리얼이다. 시리얼의 전략적 목표는 아침 식탁에서 동물성 단백질을 축출하는 것이었다. --- pp.40~41
영양주의 이데올로기는 새로운 온갖 종류의 가공식품을 만들고 판매할 수 있도록 합당한 논리를 제공하는 한편, 사람들에게는 가공식품을 마음대로 소비할 수 있는 권리를 허락한다. 게다가 영양학적 권장 사항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다이어트 책과 기사들을 쓰고 새로운 제품 생산 라인을 만들고 훨씬 더 건강에 이로운 새로운 식품을 한가득 먹어야 할 이유가 생긴다. 어떤 식품이 건강에 이롭도록 만들어지고 그 사실이 공식적으로 승인된다면, 그 식품을 많이 먹는 것이 건강에 이로울 게 분명하다. 그렇지 않은가. --- p.67
오늘날에는 암과 심장질환 그리고 또 다른 수많은 서구병이 현대 생활의 일부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 때문에 서구병이 항상 혹은 필연적으로 우리의 삶을 지배했던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기가 힘들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만성질환을 날씨처럼 삶에 주어진 기정사실로 생각한다. 그리고 만성질환은 날씨와 달리 최소한 현대 의학의 개입으로 고칠 수 있기 때문에 다행이라고 여긴다. 우리는 질병을 역사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의학적으로만 생각하고 있다. --- pp.116~117
종들은 그들이 먹이로 삼는 다른 종들과 공진화하며, 대개 상호의존의 관계를 발전시켜 나간다. “나를 먹고 대신 내 유전자를 퍼뜨려 줘!” 상호적응의 점차적인 과정은 사과나 호박 따위를 영양이 풍부하고 맛좋은 음식으로 바꾸어 놓았다. 세월이 흐르고 시행착오가 거듭되면서 식물은 맛이 좋게, 그리고 더욱 눈에 잘 띄게 변해 갔다. 동물의 필요와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였다. 한편, 동물들은 식물들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필요한 소화 수단(예컨대 효소)을 점차 발전시켜 나갔다. --- p.127
이 책은 일곱 개의 어절과 세 가지 규칙으로 시작된다. “음식을 먹되, 과식하지 말고, 주로 채식을 하라.” 이제 이 말을 풀어서 몇 가지 구체적인 조언, 금기 사항, 지시 등으로 제시할 것이다. 세 가지 주요 규칙은 각각 소제목 역할을 하고, 음식을 선택할 때 그다지 크게 신경 쓰거나 너무 깊이 생각하지 않고 따를 수 있는 세부 규칙들은 그 아래에 제시할 것이다. “건강 정보 표기가 있는 음식은 피하라.”는 간단한 규칙에는 음식을 고르는 과정을 좀 더 간단하고 보다 즐겁게 만들자는 의미가 담겨 있다. 영양학자들이 충고하듯 수치와 영양소를 꼼꼼히 따져 가며 먹으려 애쓰는 것보다는 그 편이 나을 듯싶다. --- pp.181~182
영양주의는 음식이 무엇보다 영양에 관한 것이고, 영양은 너무 복잡하기 때문에 전문가와 산업만이 제대로 공급할 수 있다는 신념이다. 이처럼 살아 숨 쉬는 음식―먹음직스런 과일과 야채, 고기―으로 요리를 할 경우에는, 음식을 상품이나 연료 아니면 영양소로 오인할 위험이 사라진다. 그렇다. 요리사나 뜰을 가꾸는 사람, 혹은 농부의 눈에는 이런 음식들이 정말로 무엇인지 보인다. 그것은 한낱 사물이 아니라 수많은 생명 사이에 이루어진 관계의 망이다.
--- pp.249~2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