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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에 비겁하지 않기

내 삶에 비겁하지 않기

: 히말라야에서 철인까지

리뷰 총점9.3 리뷰 3건 | 판매지수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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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09년 08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288쪽 | 516g | 153*224*20mm
ISBN13 9788958610953
ISBN10 895861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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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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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은 ‘지리(Jiri)’라고 불리는 작은 마을에서 시작되었다. 버스가 갈 수 있는 가장 깊은 마을이다. 우리는 지리로 가기 위해 카트만두(네팔의 수도)에서 새벽 5시 40분에 일어나 택시를 타고 터미널로 향했는데 9시 30분 이전에 출발하는 버스는 모두 매진이었다. 미리 예매를 하지 않은 게 불찰이었다. 3시간 넘게 터미널에서 시간을 보낼 수는 없었다. 표를 끊은 뒤 근처 공원으로 갔다. 엉덩이를 붙일 만한 곳도 없는 터미널에서 기다리는 것보다는 그게 나을 듯싶었다.
날씨가 흐린 게 비가 올지도 모르겠다. 비가 오지 않기만 기도했다. 만약 비가 온다면 방수용 배낭 덮개를 빠뜨리고 온 것을 후회하게 될 것이다.
뿌연 안개로 덮인 공원에는 이른 아침부터 공을 차는 아이들과 크리켓 볼을 즐기는 남자들이 보였다. 조깅을 하는 사람도 더러 있었다.
일행은 나를 포함해 셋이었다. 동갑내기 친구인 Y와 우리보다 두세 살 위인 미진 씨. Y와 내가 에베레스트 트레킹 준비에 한창일 때 포카라(네팔 제2의 도시)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미진 씨를 숙소에서 처음 만났다. 우리의 트레킹에 관심을 보인 그녀가 함께 하게 되었다. --- p.18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 모든 고통은 스스로 선택한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알 수 없는 유혹에 이끌려 에베레스트로 향하고 있었고, 철인3종 경기에도 도전하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철인3종 경기를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표현은 나에게 썩 마뜩찮은 표현이다. 철인3종 경기는 자신과의 싸움이 아니라 ‘자신과의 동반주’다. 225킬로미터가 넘는 긴 거리를 뛰다보면 자기 자신은 싸워서 이겨야 하는 상대가 아니라 함께 보듬고 가는 상대라는 걸 깨닫게 된다. 뛰고 있는 자신과 그런 자신을 믿고 따라와주는 또 다른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긴 레이스 속에서 이원화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라고나 할까. 그것은 어쩌면 평생을 나 하나만 믿고 힘든 길도 마다하지 않고 동행해준 아내 혹은 남편을 바라보는 시각과 비슷한 것일 게다. 그래서 ‘그’가 한없이 고맙고 더 사랑스러워지는 것, 그것이 철인3종 경기다. --- p.77

세상에서 가장 높은 에베레스트는 세계의 지붕이기도 하지만 세상의 끝이기도 하다. 마치 거대한 장벽처럼 세상 가장 깊숙한 곳의 막다른 길이다. 그래서 버스가 갈 수 있는 가장 마지막 마을인 지리에서부터는 허망한 길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다.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설령 트레커보다 발이 빠르다고 해도 세상에 나오기 위해서는 그들 역시 여행자가 갔던 며칠의 길을 고스란히 걸어야만 가능하다. 내가 골절상을 입고 쓰러졌다면 누군가의 도움으로 며칠을 거슬러 나와야 하는 것처럼, 그들도 어딘가 아파서 도시의 큰 병원을 찾아가야 한다면 며칠이고 그 길을 걸어야만 가능하다. 응급환자가 발생하면 휴대폰을 열고 1, 1, 9 딱 세 개의 번호만 누르면 몇 분 안에 사이렌 소리와 함께 앰뷸런스가 도착하는 우리의 삶과는 전혀 다른 세상의 삶이다. 그 자체만으로 세상과의 단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디로든 한쪽으로만 가야 하는 길은 나에게는 분명히 불편하다. 만약 며칠을 걸어야 병원을 만나고 버스를 탈 수 있는 마을을 만난다고 해도 그 길이 여러 갈래였다면, 그래서 이쪽으로도 갈 수 있고 저쪽으로도 갈 수 있는 가능성들이 놓여있었다면 나는 갑갑증이 아니라 불편함만 느꼈을 것이다. --- p.151

이윽고 끝날 것 같지 않던 경기도 종착역이 보였다. 멀리 골인 지점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나를 알아본 진행요원들은 환호성을 울리며 서둘러 결승 테이프를 펼치고 있었고, 나 역시 그날의 마지막 구간을 힘차게 달려서 최대한 멋진 자세로 결승 테이프를 끊었다. 그렇게 그날의 긴 여정은 끝이 났다.
그날 내가 세운 기록은 14시간 15분 31초였다. 펑크로 1시간 40분을 허비하기는 했어도 애초의 목표였던 11시간 15분과는 거리가 먼 기록이었다. 물론 목표 기록을 달성하지 못한 것에는 경기의 흐름이 깨진 것도 주요한 원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챌린지컵 제1차전에 이어 제2차전 역시 1위로 마침으로써 승점 50점을 확보했다는 점이다. 이제 남은 것은 9월 추분에 열리는 ‘100킬로미터 아웃리거 카누’와 12월 동지에 열리는 ‘100킬로미터 스키 크로스컨트리’다. 남은 종목은 경험이 부족하여 힘든 경기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나는 최선을 다할 것이다. 남들이 못해서 차지하는 우승보다 설령 꼴지를 하게 되더라도 열심히 노력한 결과라면 그것이 더욱 가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는 도전을 통해서 그런 스포츠 정신을 조금씩 깨닫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 p.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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