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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를 생각한다

파리를 생각한다

: 도시 걷기의 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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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09년 09월 04일
쪽수, 무게, 크기 268쪽 | 422g | 148*210*20mm
ISBN13 9788932019932
ISBN10 8932019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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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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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함과 낯설음이 공존하는 기억의 도시, 파리를 생각한다
정현경 (pencil@yes24.com)
2010-08-25
파리를 생각한다. 설렘보다 두려움이 더 컸던 스물한 살의 첫 해외 배낭여행, 가는 곳마다 한국 사람들이 득실거리던 여행사 패키지 일정, 그다지 마음이 맞지 않았던 일행들, 온몸을 축축 늘어지게 하던 뜨거운 7월의 햇빛. 그 서툴렀던 여행의 끄트머리에서 만난 낯설고도 익숙했던 도시, 파리.

모든 것에는 다양한 모습이 존재한다. 사람들이 자신이 처한 상황이나 만나는 대상에 따라 조금씩 다른 모습을 꺼내 보이듯, 여행지 역시 계절에 따라, 혹은 그 여행을 하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기억 속에 자리잡는다. 같은 시간 같은 곳을 걷고 있어도 각자가 기억하는 느낌과 잔상들은 다를 수밖에 없다. 모든 '기억'이 그러하듯, '여행' 역시 지독히 각자일 수밖에 없는 그 무엇이다.

『파리를 생각한다』는 사회학자 정수복이 파리에 대한 책들 속에서 찾아낸 사실과 정보들을 자신이 직접 파리를 발로 걸으며 느끼며 생각한 것들과 함께 녹여낸 인문한적 파리 산책기이다. 14년째 파리에서 살고 있는 그는 이 책에서, 그 동안의 산책을 통해 얻은 성찰과 사색을 바탕으로 문학과 예술, 역사학, 지리학, 인문학, 철학, 사회학 등의 학문의 경계를 넘나들며 파리를 이야기한다.

혼자 하는 여행과 누군가와 함께 하는 여행은 각각의 장단점이 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누군가와 함께 떠난 여행에서도 '혼자 걷는 시간'은 필요하다는 것이다. 여기서는 '혼자'와 '걷기' 두 가지 모두 중요하다. 자신이 여행하고 있는 도시의 겉모습만이 아닌 진짜 모습을 알기 위해서는 뚜렷한 목적 없이, 그저 도시의 흐름 속에 자신을 맡기고서 그때그때의 기분과 호기심에 따라 서서히 발길을 옮겨야 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그러한 걷기를 '플라느리(flanerie)'라 말하고, 플라느리를 즐기는 '플라뇌르(flaneur)'가 되어 파리를 걸을 때만이 진짜 파리를 볼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화려함을 좇는 이들에게 파리는 겉으로는 비위를 맞추지만 결코 자신의 속내는 드러내지 않는다. 그래서 이 책은 화려한 관광지로 가득한 파리의 중심부보다는 주택가가 모여 있는 파리의 주변부를 걸을 것을 권한다. 도시에서 홀로 걷는다는 것은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작은 것들까지 발견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갖는 것을 뜻한다. 그러한 플라느리를 통해 만날 수 있는 것은 그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이다. 시간의 구애를 받지 않고 그저 마음 가는 대로 걸음을 옮김으로써 그 곳의 사람들과 일상의 공간을 공유하게 되는 것이다.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의 표정, 가정집에서 새어 나오는 음식 냄새, 개 짖는 소리, 길가에 핀 작은 꽃 한 송이까지,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만나게 되는 모든 풍경이 그 도시이고, 그 곳 사람들이며, 또한 자기 자신이다.

저자는 파리의 좁은 골목길이나 언덕길들을 걸으면서 잃어버린 유년 시절의 기억을 떠올린다. 파리의 거리에는 지나간 시간들의 자취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반면 서울은 전쟁과 근대화의 과정에서 수많은 '기억의 장소'를 잃어버렸다. 오로지 편리하고 새롭고 현대적인 것만을 추구하는 서울에는 기억이 없다. 옛 것은 자취를 감추고 모든 것은 새 것으로 교체된다. 과거에서부터 현재까지, 그 세월의 이끼가 거리 곳곳에 남아 있는 파리가 기억의 도시라면 서울은 기억상실의 도시인 것이다.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는 서울에서 과거의 자신과 현재의 자신 사이에 커다란 단절을 느꼈던 저자는 낯선 파리의 거리에서 유년시절의 흔적을 발견한다. 그래서 그에게 파리를 걷는 일은 유년시절의 자신, 혹은 자기 내면과의 대면이다.


런던 인 파리 아웃. 파리는 한 달 가까이 계속되었던 스물한 살의 유럽 배낭여행 중 마지막 도시였다. 여행지에서 자신이 생각하거나 기대했던 것과 조금이라도 다른 모습이 발견되면 쉽게 실망하고 불평하던 일행들과 처음으로 헤어져 혼자서 걸었던 도시가 파리였다. 지금 생각하면 왜 진작 혼자서 여행하지 않았을까 싶지만, 그때는 그것이 꽤나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파리에서의 둘째 날, 좀 더 많은 것을 보기 위해 베르사이유 궁전에 가겠다는 일행들과 헤어져 전날 대충 둘러보았던 파리를 혼자서 다시 걷고 또 걸으면서 느꼈던 기분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윤상의 앨범을 들으며 이른 아침 인적이 드문 퐁네프를 건너고, 루브르 미술관에서 몇 시간이고 그림을 쳐다보고, 거리의 사람들을 구경하며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그런, 마치 평범한 일상과도 같았던 하루. 그 날의 파리는 다른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나만의 파리가 되어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어쩌면 파리에 대한 환상이 파리를 더욱 매력적인 도시로 느껴지게 하는 걸지도 모른다. 파리는 파리 자체이기도 하지만 수많은 이미지들의 집적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사람 사는 곳이 늘 그러하듯 파리에도 불평거리들이 넘쳐난다. 거리는 개똥이 많아 지저분하고 영어가 잘 통하지 않으며, 인터넷 속도는 한국과 비교할 수 없이 느리다. 하지만 파리에는 과거의 기억을 환기하는 장면들이 있다. 청계천과 피맛골의 흔적은 사라져가고 숭례문마저 불타버린 서울에서, 어린 시절 자신이 뛰어 놀던 놀이터나 골목길이 온전히 남아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몇 주 후면 나는 다시 파리로 떠난다. 수년 전 스쳐 지나가듯 잠깐 걸었던 그 거리를 걷고 또 걷기 위해 간다. 막상 파리에 가서 무엇을 할 거냐는 질문에는 뭐라고 답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내가 원하는 여행은 그저 낯선 곳에서 일상처럼 걷고, 음악을 듣고, 커피를 마시고, 책을 읽는 사소한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 모든 것들은 서울에서도 할 수 있는 일들이라는 것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낯선 곳 낯선 사람들의 일상 속에 불쑥 끼어들어, 그저 발길이 닿는 대로 그렇게 걷고 싶다. 그 걸음 속에서, 저자가 말한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파리의 멜랑콜리'를 만날지도 모른다. 어쩌면 파리 거리 한복판에서 기억상실의 도시 서울을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낯선 도시 파리,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그저 평범한 일상의 풍경일 도시 파리를 걸으며 나는 서울에 두고 온 나의 일상을 떠올리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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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보다도 파리를 많이 걷고 사랑했으며 파리를 독특한 시각으로 연구한 발터 벤야민에 따르면, “세계의 어떤 도시도 파리만큼 책과 내밀하게 연결된 도시는 없다. 왜냐하면 수세기 전부터 센 강에는 학문의 담쟁이덩굴이 붙어 있기 때문이다. 파리는 센 강이 가로지르는 도서관의 거대한 열람실이다. 〔…〕 가장 완성된 형태의 산책, 가장 행복한 산책은 책을 향한 산책이고 책 속으로의 산책이다.” 벤야민의 말대로 파리가 하나의 거대한 도서관이라면 파리를 걷는 일은 그곳에 들어가 마음에 드는 책을 꺼내 읽는 일과 같다. 파리에는 독자의 눈길을 기다리는 수많은 책이 배열되어 있다. 파리는 상상의 도서관이며 거대한 ‘기호의 공화국’이다. 건물, 길, 공원, 팻말, 카페, 광장, 골목길, 성당, 학교, 신문가판대, 공연장, 극장과 영화관, 박물관, 운동장과 체육관, 사무실, 동상, 버스, 지하철 그리고 거리를 지나가는 남녀노소가 모두 해석을 기다리는 독서의 대상들이다. 그래서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일과 파리를 걷는 일이 하나로 이어진다. --- pp.9~10, 「책을 열며: 이 책은 어떤 책인가」 중에서

오랜 파리 산책의 열매인 이 책은, 두 가지 의미에서의 파리 산책기라고 할 수 있다. 먼저, 이 책은 내가 파리라는 도시 공간을 발길 가는 대로 산책하면서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한 것들을 적은 것이다. 그런데 파리를 걸으면서 파리와 친숙해질수록 파리를 더 잘 알고 싶었다. 그래서 파리를 주제로 한 역사와 문학, 철학과 사회과학 분야의 책들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 책에는 파리에 대한 책들 속으로 산책하면서 내가 찾아낸 사실과 정보들이 파리를 직접 내 발로 걸으며 느끼며 생각한 것들과 함께 녹아 어우러져 있다. 그러니까 이 책은 말하자면 ‘파리 걷기’와 ‘파리 읽기’가 상호작용을 하며 만들어낸 사회학자의 인문학적 파리 산책기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에는 내가 파리를 걷게 된 개인적 내력(「파리를 걷는 사회학자」)과 걷는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를 생각해본 글(「걷기의 철학」)에서 시작하여 파리의 형성과정을 역사적으로 기술하며 파리의 현재를 객관적으로 기술한 글(「지도 속의 파리 읽기」)과 파리가 아름다운 미학적 이유를 나 나름대로 이해하고 해석해본 글(「파리의 도시미학」)이 실려 있다. 나는 이 책에서 파리를 남다르게 걸었던 사람들의 계보를 추적해보기도 했고(「파리 산보객의 계보학」) 오늘을 사는 파리지앵들이 파리라는 도시 공간을 일상의 삶 속에서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가를 알아보기도 했다(「파리지앵들의 파리」). --- pp.11~12, 「책을 열며: 이 책은 어떤 책인가」 중에서

그래서 나는 파리의 스무 개 구를 스무 개의 도시처럼 생각하며 매일 다른 도시로 여행을 떠났다. 파리를 내 두 발로 걷는 일은 언어와 이론, 추상과 관념으로 치우친 나의 생활을 감성과 육체, 구체와 현실 쪽으로 이동시켜 삶의 균형을 찾는 일이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걸었다. 파시에서 벨빌로, 몽파르나스에서 뷔트 오 카이로, 에콜 밀리테르에서 몽마르트르 언덕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때로는 맑은 정신으로, 때로는 흐릿한 정신으로, 때로는 호기심에 차서, 때로는 겁먹은 마음으로, 때로는 명랑한 마음으로, 때로는 화가 나서, 때로는 어리둥절해서, 때로는 가라앉은 마음으로, 때로는 가벼운 마음으로 파리 시내 스무 개 구의 경계를 발길 가는 대로 넘나들며 파리 전체를 샅샅이 누비고 다녔다. 그러다가 언제부터인가 파리의 모든 길이 다 나오는 12,000분의 1 지도 위에 그날 내가 다닌 곳을 초록색 형광펜으로 표시하기 시작했다. 날이 갈수록 지도는 초록색으로 변해갔다. 그렇게 7년 넘게 걷다 보니 파리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 어떤 거리나 동네 이름이 나와도 모르는 곳이 거의 없게 되었고, 파리를 배경으로 한 영화나 소설에 나오는 파리의 거리, 카페, 공원, 묘지 등 웬만한 장소는 거의 다 알아볼 수 있게 되었다. 프랑스 사람들의 표현 방식을 따르자면, 파리를 점점 더 호주머니 속처럼 알게 되었다. --- pp.32~33, 「파리를 걷는 사회학자: 내가 파리를 걷는 이유」 중에서

그런데 이상하게도 파리의 좁은 골목길이나 언덕길들을 걷다 보면 나도 모르게 아득하게 사라져버린 유년의 장소들이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내는 경우가 있다. 〔…〕 내가 살지 않은 공간이 내가 살았던 공간을 생각나게 하는 까닭은 바로 그 시간의 흔적에 있었다. 나의 유년의 기억이 식민지 근대 도시의 잔해 위에 이루어진 것이었다면 파리는 그런 도시 공간에 나타나는 근대성의 원형일 것이다. 그러니까 파리 속에 스며들어 있는 19세기 말, 20세기 초의 근대적 도시의 분위기가 나에게 서울에서 보낸 유년의 기?을 환기시키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부정할 수 없는 방식으로 내 몸속에 정서적 감수성으로 남아 있는 식민지 근대성을 어떻게 청산할 것인가? 식민지 근대성의 부정은 나의 개인적 체험을 부정하는 일은 아닌가? 파리를 걸으면서 혹시 식민지 근대성의 원형인 유럽의 근대성에 매몰되어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 파리를 걷다 보면 이런 복잡한 문제가 제기되기도 한다. 이런 질문들은 지식인이라는 존재의 고치기 힘든 고질병적 증세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파리를 걸으면서 그런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어쩌면 나는 파리의 땅을 걸으며 여전히 서울의 하늘 밑을 걷고 있는지도 모른다. --- pp.55~57, s파9리를 걷는 사회학자: 내가 파리를 걷는 이유」 중에서

“어찌 되었든 한 가지 사실은 확실하다. 그것은 내가 리스본에서보다는 파리에서 훨씬 더 많이 걸었으며, 파리라는 도시에서 걷고 있는 동안은 결코 피곤을 느끼지 않는 특별한 현상이 있다는 사실이다. 파리의 건축물들과 파리만의 조화가 제공하는 눈의 즐거움이 다리의 무게를 잊게 만든다. 파리에는 언제나 우리를 앞으로 나가게 하는 무언가가 있다. 그것은 길모퉁이일 수도 있고, 공원 한구석일 수도 있으며, 센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일 수도 있다. 보이지 않는 힘에 끌려 파리를 걷다가 밤이 되어 집이나 호텔에 들어오고 나서야 그날의 노고를 느낄 수 있다.” 나도 포르투갈 리스본 출신의 시인처럼 서울보다 파리에서 훨씬 더 많이 걷는다. 그리고 걸으면서 피로감을 느끼지 않는다. 피로를 느끼는 시간은 그와 마찬가지로 집에 돌아와서 저녁식사를 마치고 나서이다. 그러나 피로감이 다 나쁜 것은 아니다. 두 다리를 움직이며 걸으면서 생긴 피로감과 컴퓨터 화면 앞에서 누적된 온몸이 찌뿌드드한 피로감은 질적으로 다르다. 파리의 분위기에 취해 나도 모르게 이곳저곳을 하염없이 걷다 돌아온 날 저녁의 피로감은 기분 좋은 행복한 피로감이다. 걷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그대는 꿈도 꾸지 않고 깊은 잠을 잘 것이다. --- pp.84~85, 「걷기의 철학: 걷는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 중에서

완벽한 산보객은 눈앞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무엇이든 열광적으로 관찰하는 사람이다. 그는 길거리에서 집에서처럼 편안함을 느끼는 사람이다. 그는 군중 속에 묻혀 있는 익명의 개인이면서 동시에 모든 사람을 관찰하는, 세상의 살아 있는 중심이다. 파리를 걸으며 관찰하는 산보객은 변장을 하고 궁성을 빠져나와 도시의 모든 것에 황홀해하는 왕자와 같다. 파리를 사랑한 작가와 시인, 예술가들은 모두 그런 산보객들이었다. 그들은 군중의 흐름 속에 자신을 잃고 파리를 걸으며 아이디어를 얻고 영감을 받고 다시 작업실로 돌아와 시와 소설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작곡을 하였다. 그들은 방향도 없고 목적도 없이 그저 파리를 기분 나는 대로 걸으며 도시의 풍경에 매료되었고, 우연히 다가오는 수많은 볼거리들의 흐름에 저항하지 않고 순순히 자신을 바쳤다. 그들은 물고기가 바다를 헤매고 새가 하늘을 날듯이 파리를 걷는 사람들이었다. 파리를 걸으며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그렇게 파리를 걸었던 사람들의 긴 계보의 끝자락 어디쯤에 있을 것이다. --- pp.138~139, 「파리 산보객의 계보학: 파리를 남다르게 걸었던 사람들」 중에서

1968년 5월운동 이후 새로운 도시 건설을 위한 유토피아적 꿈들이 용솟음치면서 도시문제는 비판적 사회과학의 중심 주제가 되었다. 자본주의적으로 재편된 도시 공간의 질서를 비판하고 루이 14세에서 나폴레옹 3세를 거쳐 드골과 퐁피두 대통령 시기에 이르기까지 프랑스의 권위주의적 권력체제가 만들어놓은 도시의 질서에 자유의 분위기를 불어넣을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전통의 계승보다는 전통과의 단절 그리고 새로운 미래 창조가 강조되었다. 파리의 거대한 광장들과 그곳에 들어선 좌우대칭의 건물들, 일직선으로 뚫린 대로와 대로 양쪽에 줄지어 선 획일적 건물들은 질서를 강조하는 절대주의 체제의 건축적 표현이라고 비판받기 시작했다. ‘파리의 위장’이라고 부른 보부르의 농수산품 시장을 철거하고 그 빈자리에 새로 지은 퐁피두센터는 전통을 거부하는 현대 건축의 파격적 이정표가 되었다. 파리의 이곳저곳에 기존의 구속을 벗어나는 새로운 건물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 그렇다고 해서 새로 지은 건물들이 파리의 기존의 건물들이 이루는 질서와 완전히 단절된 것은 아니다. 세월의 이끼가 누적된 시간대, 침전된 흔적들과 기억의 지속을 존중하며 미래를 여는 자유로운 건물들이 들어섰다. 새로운 세대의 건축가들은 하나의 건물은 다른 건물과 분리되어 홀로 존재할 수 없으므로 주변과 맥락을 고려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건축을 추구했다. 기존의 스타일에 적응할 뿐만 아니라 기존의 공간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대담한 공간 실험들이 일어났다. 새로 지은 건물들은 기존의 건물들에 화답하면서 파리를 오랜 전통을 지닌 역사도시이면서 동시에 미래로 열린 활기찬 분위기의 도시로 만들고 있다. --- pp.170~171, 「지도 속의 파리 읽기: 파리는 어떤 도시인가」 중에서

1960년대에서 1970년대로 이어지는 나의 청소년기에 1950년대의 파리는 암울하고 답답했던 한국과 서울의 현실을 벗어나 다른 곳으로 떠나고 싶던 환상 속의 여행지였다. 현실에서는 파리는커녕 제주도도 갈 수 없었던 시절이었지만 상상 속에서는 자유롭게 파리를 떠다녔던 것이다. 작고한 대중문화 평론가 이성욱의 다음과 같은 말은 청소년기 나의 처지를 정확하게 대변해준다: “지금의 ‘파리’와 그때의 ‘빠리’는 한참 다르다. 지금이야 웬만하면 갈 수 있는, 그런 만큼 우리의 일상적 감각의 사정권 내에 들어와 있는 범상한 파리이지만 그때는 오로지 대중문화를 경유해야만 닿을 수 있는 환상과 가상의 공간이었다. 파리가 왜 환상의 공간인가? 간명하다. ‘보통 사람’이라면 절대 가볼 수 없는, 따라서 현실의 실감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그 시절, 파리는 단지 파리 그 자체를 의미하지는 않았다. 파리는 다다를 수 없는, 그러나 꼭 가보고 싶은 그 어딘가의 대표적인 환유였다. 서구문화에 대한 열망, 이국정서에 대한 강렬한 호기심, 하지만 그것을 만질 수 없는 현실. 그 괴리와 틈을 봉합해주는 것이 유행가 속의 파리였다.” --- p.188, 「파리의 도시미학: 파리의 아름다움은 어디에서 오는가」 중에서

그러나 파리는 화려함만 있는 곳이 아니다. 거기에는 어디에서 오는지 알 수 없는,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적당한 정도의 멜랑콜리가 스며들어 있다. 파리의 화려함 뒤에는 알게 모르게 옷을 적시는 가랑비처럼 천천히 그리고 부드럽게 영혼에 스며드는 달콤한 멜랑콜리가 숨어 있다. 그런 분위기는 자신에 차고 현재에 만족감을 느끼며 힘차게 앞으로 나가는 느낌을 주는 상승기의 신흥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다. 파리는 정점에 도달했다가 하강기에 들어서서 세속적 영광의 허무함을 알게 됐고, 지나간 과거를 장기적 관점에서 뒤돌아보는 시점에 있는, 그렇지만 아직도 무시할 수 없는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도시다. 파리에서는 아직도 빛을 발하고 있지만 점차 희미해지는 과거의 영광, 아련한 노스탤지어, 이루어지지 않은 꿈, 무너져버린 환상의 허무함, 무언지 모를 결핍감, 안타까운 상실감이 느껴진다. 저돌적인 힘으로 앞으로 돌진하는 도시 분위기에서는 내면을 들여다보는 분위기가 형성되기 힘들다. 그런 도시에서는 무언가 새로운 것, 이익이 될 만한 것을 찾아 부리나케 빠른 속도로 움직여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렇지 않으면 뒤처지고 낙오자가 될 것만 같다. 그러나 파리에서는 그렇지 않다. 오래된 세월의 이끼가 낀 곳곳의 기념비적 건물과 센 강변과 공원의 산책로와 골목길 속에는 인간 삶의 유한성과 허무함을 일깨우는 멜랑콜리한 분위기가 스며들어 있다. 적당한 양의 멜랑콜리와 약간의 소외감 속에서 자기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장소가 파리다. 〔…〕 화려함 속의 우울, 우울 밖의 화려함. 파리의 매력은 공존할 수 없는 그 두 요소가 서로 뗄 수 없는 관계로 얽혀 있는 모순된 조화의 상태에서 만들어진다. 파리에는 세상에 대한 긍정과 세상에 대한 부정, 삶의 기쁨과 삶의 무의미, 화려함 속의 쾌활과 고독 속의 우울이 공존하며 때로 갈등하며 때로 조화를 이룬다. 그것이 바로 파리 도시미학의 정수다.
--- pp.227~229, 「파리의 도시미학: 파리의 아름다움은 어디에서 오는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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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금 환불 및 환불 지연에 따른 배상금 지급 조건, 절차 등은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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